2022년 9월 27일(화)
민간 중심 투자 ‘크라우드펀딩’… 한국에선 언제쯤 제 역할 하려나

크라우드펀딩 실태와 방안
SNS·인터넷 매체 통해 아이디어로 공감대 얻고 대중에게서 자금 모으는 ‘크라우드펀딩’ 투자
아이팟나노 손목시계 등 해외 성공 사례 있지만 국내선 아직 인식 낮아
관련 法 활성화되려면 투자보다 기부 형태로 영리·비영리 포괄해야

미상_그래픽_크라우드펀딩_글로벌크라우드펀딩자금영역별비중_2013

#1. 2010년 12월 미국 디자인 회사 미니멀(Minimal)은 애플의 ‘아이팟나노(MP3 플레이어)’를 손목시계로 만드는 연구를 시작했다. 이를 손목시계로 만들면 편리할 거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미니멀은 소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Kickstarter)’에 해당 아이디어를 등록하고, 모금을 시작했다. 시제품 제작을 위해 한 달 동안 1만5000달러(1713만원)를 목표로 잡았는데, 첫날에만 8만달러(9136만원)가 모였다. 한 달 후 전 세계 후원자 1만3512명이 투자한 돈은 무려 94만2578달러(약 10억원)에 달했다. 아이팟나노 손목시계, ‘틱톡+루나틱(Tik Tok+LunaTik)’은 이듬해 애플스토어에 입점했다.

#2. 국내에도 지난해 만화가 강풀의 웹툰인 ’26년’을 영화화하기 위한 모금이 시작됐다. 부족한 제작비 10억원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아름다운재단 소셜펀딩 사이트 ‘개미스폰서’는 999만원을 목표액으로 잡고 소셜펀딩을 시작했다. 10시간 만에 모금이 종료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지만, 추가 모금은 할 수 없었다.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때문이었다. 1000만원 이상을 모금하려는 비영리단체는 사전에 반드시 목표액, 방법, 기간 등을 안행부 장관이나 지자체장에 등록해야만 한다. 사전 등록 없이 1000만원 이상을 모금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지정 기부금 단체 등록도 취소될 수 있다.

정부나 관 주도의 임팩트 투자가 아닌, 민간이 중심이 된 투자는 없을까. 바로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이다. 크라우드펀딩이란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뜻으로, 소셜미디어(SNS)나 인터넷 등의 매체를 활용해 자금을 모으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임팩트 투자의 허점과 틈새를 민간 차원의 크라우드펀딩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디어와 공감대로 성장하는 크라우드펀딩

2000년 이후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크라우드펀딩은 지난해까지 조성된 자금 규모만 무려 30억달러(약 3조4260억원)에 이른다. 미국의 대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는 지난해만 177개국의 220만명으로부터 약 3억2000만달러(약 3654억원)을 모았다. 호주의 소셜벤처 ‘후 기브 어 크랩(Who Gives A Crap〈이하 WGAC 〉)’은 저개발국 물·위생 문제 해결을 위해 2010년 설립됐다. WGAC는 수익의 50%를 국제 구호 단체 워터에이드(Wat erAid)에 기부한다. WGAC는 지난해 미국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인디고고(In dieGoGo)’에 ‘친환경 재생 화장지를 생산하자’는 아이템을 올렸고, 50시간 만에 1333명의 펀딩을 이끌어내 6만6548달러(약 7600만원)를 모금했다. 품앗이 금융 기업 ‘팝펀딩’의 신현욱 대표는 “지금까지는 ‘시청 앞에 움직이는 태권브이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기업에 투자할 곳은 없었지만, 앞으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서라면 이것도 가능하다”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사람들로부터 공감대·신뢰를 얻으면 사회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실현된다”고 설명했다. 윤민섭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실 법학박사는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이들은 지속적으로 기업을 들여다보게 되므로 낮은 비용의 ‘소문 마케팅’이나 홍보가 가능하다”면서 “집단 지성을 통해 자연스러운 업체 검증이 이뤄지기 때문에 건전하고 자생력 있는 벤처나 사회적기업을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식 수준과 투자 규모부터 밀려… 국내 크라우드펀딩 업체 실패 사례 늘어

2011년 이후 국내에도 크라우드펀딩 업체가 증가하고 있다. 텀블벅, 개미스폰서, 유캔펀딩, 굿펀딩 등 10여개 업체가 지금까지 18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모금했다. 올해 5조원 모금을 전망하는 글로벌 크라우드펀딩 업계에 비하면 아직 시작 단계다.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해 1년 이내에 망하는 업체들도 속출하고 있다. 성진경 오마이컴퍼니 대표는 “국내는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기 때문에 펀딩 금액도 크지 않다”면서 “대부분 모금액의 5~10%를 수수료로 받아 운영하는데 워낙 규모가 작으니 수수료로 먹고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사이트들은 한 프로젝트당 1억원이 모금되는 반면, 국내에서 안정적이라 꼽히는 텀블벅조차 한 달 최대 1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성사시켜야 1억원이 겨우 모금된다.

사이트에 올라오는 아이디어가 ‘번뜩이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김아란 아름다운재단 모금국 캠페인 회원개발팀장은 “의미 있는 활동이거나 차별화된 아이디어가 없으면 모금에 실패할 수 있다”면서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서 개미 스폰서를 통해 진행한 두 사례를 비교했다. “소아암 아동을 위한 일회용 항균 마스크를 선물하자는 아이디어에는 164명이 참여해 600만원을 모금했는데, 단순히 소아암 아동에게 기념 메달을 선물하자는 아이디어에는 14명이 참여해 17만4800만원 모금에 그쳤다”는 것. 온라인·SNS 모금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성진경 오마이컴퍼니 대표는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이 알아서 모금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염재승 텀블벅 대표는 “미국의 킥스타터는 매일 네티즌들의 건의 사항을 받아들여 사이트 체계를 수정하고 있다”면서 “프로젝트의 사회적 가치와 구성원들의 스토리를 잘 담아서 적극적으로 마케팅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Under 30 CEO 제공
Under 30 CEO 제공

 

◇생태계 조성 위한 인식 개선과 법안 마련 시급

민관이 협력해 크라우드펀딩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 2월 크라우드펀딩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이를 활성화하는 제도 도입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 현재 금융위는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는 쪽으로, 중기청은 새로운 벤처 육성을 위한 투자 쪽으로 각각 법안을 제출, 일정 금액을 기준으로 크라우드펀딩 규제 및 운영을 이원화할 예정이다.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텀블벅 염재승 대표는 “크라우드펀딩은 자본의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꽃필 수 있도록 대중의 힘을 모으는 것인데, 현재 법안은 다시 수익을 강조하는 지분 투자 형식의 크라우드펀딩을 강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윤민섭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실 법학박사는 “당장 지분 투자형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기부 또는 후원 형태의 크라우드펀딩부터 먼저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기업 및 기부를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글로벌 크라우드펀딩에서 가장 많은 자금이 모이는 영역은 ‘사회적 기부(Social Causes)’로 전체의 27.4%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금융위나 중기청이 집중하는 ‘투자 및 창업 자금(Business and Enterpreneurship)’은 16.9%에 불과하다. 양동수 재단법인 동천 상임변호사는 “국내엔 비영리 형태의 사회적기업이 많기 때문에 상법상 법인으로 제한하면 사회적기업 53%가 크라우드펀딩 활용이 불가능해진다”면서 “영리와 비영리를 포괄하는 크라우드펀딩의 전체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문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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