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비영리, 이젠 임팩트다-①] 학교만 보내면 끝? 아프리카 소녀들의 ‘진짜’ 변화를 측정한다..세이브더칠드런 ‘스쿨미’ 캠페인 5년

눈물 콧물 짜는 이미지, 기부자들은 지쳤습니다. 감동적인 사연도 좋지만, 그 이상이 궁금합니다. 단체들도 답답합니다. ‘마음이 동해야만’ 기부자들 움직입니다. 사업 뒷단의 치열한 고민, 기부자들 몰라줍니다.

더나은미래는 ‘비영리, 이젠 임팩트다’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무엇을 했는지’보다, ‘무엇을, 어떻게, 왜 바꾸려는지’를 소개합니다. 감성적인 스토리 대신, 프로그램의 효과성을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시리즈의 첫 편은 아프리카 소녀들의 ‘진짜’ 변화를 고민해온 세이브더칠드런의 ‘스쿨미(School Me)’ 캠페인입니다. 

 

“아프리카 소녀들을 학교에 다니게 하자”

꼬박 4년을 매달렸다. 학교도 짓고, 여교사도 키웠다. 학교 밖 소녀들도 학교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또다른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학교에만 다니면, 여자 아이들의 삶이 정말 달라질까?’

2012년에 시작된 세이브더칠드런의 ‘스쿨미(School Me)’ 캠페인. 4년의 노하우를 더해 지난해 3월, ‘스쿨미 2기’를 론칭했다. 새롭게 가다듬은 목표는 두 가지. 첫째는 여자아이들의 ‘내면의 힘’을 길러주자, 둘째는 그 변화를 ‘제대로’ 측정해보자는 것. 스쿨미의 시작부터 함께해온 김현주<사진> 해외사업부 사업운영 3팀장에게 한층 더 정교해진 스쿨미 2기 이야기를 들었다.

ⓒ세이브더칠드런
ⓒ세이브더칠드런

◇교육이 삶을 바꾸려면

2012년 시작한 스쿨미, 서쪽 끝 코트디부아르·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에서부터 동쪽 우간다까지,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열악한 곳들부터 골랐다. 시스템은 취약하고 원조도 선뜻 안오는 나라들, 아프리카 소녀들에게 ‘안전한 학습 환경 인프라’부터 만들어 주는게 급선무였다. 장애물을 없애고 부족한 부분은 채웠다. 학교를 짓고, 여자 화장실도 마련했다. 등하굣길이 먼 곳엔 기숙사도 세웠다. 여교사도 양성하고, ‘딸 학교 보낼 돈 없다’는 부모에겐 종잣돈도 줬다. 

하나씩 쌓아간다 싶었는데, 2년 후 에볼라가 서아프리카를 덮쳤다. 국가는 마비되고 1년간 휴교령이 내려졌다. 스쿨미도 올스톱됐다. 1년 후, 학교는 재개됐지만 다시 원점이었다. 그 사이, 시에라리온에서만 임신한 10대가 1만4000명.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먹을 게 없어 돈을 받고 성관계를 가진 아이들도 있었다. 정부는 ‘다른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걸 막았다. 김 팀장은 “이런 환경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학교란 뭘까’ 고민이 됐다”며 “하면 할수록, 학교에 보내는 것 자체가 ‘최종 종착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ㅡ학교가 ‘최종 종착지’가 아니라는게 어떤 의미인가. 

“시작할 땐 여자 아이들의 ‘졸업률’을 높이는 게 목표였다. 학교에 계속 다니면서 제 학령기에 맞는 교육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딛고 있는 환경 자체가 쉽지 않더라. 나라는 가난하고, 재난에 취약하다. 18살도 안돼 결혼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환경에서 ‘초등학교를 다닌다는 게 어떤 의미여야 할까’ 고민이 됐다. 스쿨미가 하고 싶은 건 아이들의 삶을 바꾸는 것이지 학교에 보내는 자체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여아 졸업률이 높아지면 아동의 영양이 좋아진다’는 식의 거대한 수치는 여아 교육의 ‘효용’을 먼 미래에서 찾는다. 그런데 그런 접근으로는 당장 아이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어보였다.”

ㅡ그래도 학교에 다니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현장에서 만난 한 아이가 ‘본인이 손재주가 있는 걸 알았을 때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라 느껴졌다’고 하더라. 교육의 의미를 거기에서 찾았다. 학교에 다닌다는 건 ‘나’로 살아보는 경험이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키우고 힘을 기르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런 경험을 줄 수 있을 때, 아이가 설령 졸업을 하지 못한다 해도, 불치병에 걸렸다 해도 교육이 의미를 갖는다.”

지향점을 가다듬었다. 스쿨미 2기의 목표는 ‘소녀들의 역량강화(임파워먼트∙empowerment)’. 소녀들 ‘내면의 힘’ 키우기,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높여 변화의 씨앗을 심어주기. 김 팀장은 “여자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높여주고, ‘진짜’ 학교에 다니게 하려면, 깔려있는 젠더(gender)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ㅡ학교 프로그램을 잘 짜서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면 되는 게 아닐까. NGO가 지역의 ‘젠더’ 문제까지 다룬다는 게 거대하게 느껴지진 않았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4시간 남짓, 학교 밖에서 20시간을 보낸다. 학교에서 아무리 ‘남녀가 똑같다’고 해도, 학교만 딴 세상이다. 아이들을 둘러싼 세상이 주는 메시지는 전혀 다르다. 집안일은 여자 아이들 몫이고, 10대 조혼 비율도 높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경우도, 성폭력을 당해 임신한 친구도 많이 보게 된다. 학교 역시 지역사회 안에 있다. 교사들이 가진 인식이 말과 태도로 드러난다. 남자 아이들만 발표를 더 시키기도 하고, 성관계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10살 남짓 된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의 시각이 이미 내재화됐더라. 여자 아이들은 스스로를 ‘평등하게’ 안 본다. 아이를 바꾸려면 주변이 바뀌어야 했다.”

◇주변이 바뀌어야 소녀가 바뀐다

자기성찰부터 시작했다. 지난해, 스쿨미 1기를 담당했던 4개 나라 현지 직원들을 한 곳에 모았다. 모아놓고 보니 전체 직원 중 여자는 단 두 명. 지난 스쿨미 1기를 리뷰하자고 하니 직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안 그래도 장학금을 여자아이들만 주는 게 납득이 안됐어. 마을 사람들이 ‘왜 여자애들만 주냐’고 물어보면 ‘도너가 시켰다’고 말하고 넘겼어’. 김 팀장은 “아차 싶었다”고 했다.

스쿨미 2기, 직원들 ‘양성평등 개념 탑재’ 부터 시작했다. 지난해 2기를 시작한 이후 4개월간, 직원들에게 ‘양성 평등 트레이닝’을 이어갔다. 현장에서 스쿨미 직원을 뽑을 때 지켜야 하는 ‘젠더 가이드라인’도 새롭게 짰다. 남녀 직원 비율 조건도 만들었다. 목표는 남녀 비율을 50대 50으로 하고, 관리자급엔 여성 최소 한 명을 두는 것. 김 팀장은 “가장 먼저 시작한 시에라리온에서 관리자급 여성을 임명하기까지 5개월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이제는 여자 직원이 절반이 넘는다. 

ⓒ세이브더칠드런
지난 2월, 시에라리온에서 있었던 직원 젠더 트레이닝 현장. 앞에서 오른쪽 김현주 팀장. ⓒ세이브더칠드런

ㅡ직원 트레이닝은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수개월간 직원 교육에 매달린 이유는 무엇인가.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는 직원에게 달렸다. 이들이 핵심 전달자다. 진심으로 가치를 전해도 주민들이 바뀔까 말까다. 그런데 직원들부터 ‘양성평등’ 인식이 부족했다. 현지 직원들을 한 곳에 모으니, 남자 직원들이 처음에는 커피도 자기 손으로 따라 마시지 않더라. 에볼라 현장에 긴급구호를 갔을 때도, 낮 동안 일하고 저녁에 숙소에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여자 직원이 밥하고 남자들은 먹기만 했다더라. 팀 내에 성비도 맞지 않았다. 스쿨미가 정말로 여자아이들에게 힘을 주고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우리 직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봤다.”

ㅡ트레이닝은 어떻게 했나.

“시에라리온부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국제 NGO 직원이라고 하면 현지 엘리트다. 젠더 이슈를 물어보면 ‘남녀가 평등하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하루 일과를 낱낱이 적어보게 하면 진짜 생각이 드러난다. 본인의 행동, 하루 일과, 습관 등을 상세하게 적어보면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자기 반영(self-reflection)’ 방식을 적극 활용했다. 그러면서 양성평등이나 젠더에 대한 교육도 함께 진행한다.”

ㅡ생각을 바꾼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변화가 있었나.

“시에라리온의 프레데릭 하딩이라는 한 직원은 ‘조카 둘을 데리고 사는데, 그 동안 빵 사오는 것이나 샤워할 물을 데우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자 조카한테 시켰다’고 하더라. 본인이 스쿨미 사업을 담당해서 ‘여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으면서도, 스스로 여자 조카의 공부할 시간 빼앗고 고정된 성 역할관념을 심어줬다는 사실은 몰랐다는 거다. 집에서 ‘내 세숫물은 내가 데우고 빵도 내가 사겠다’고 선언을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했다. 하루 아침에 바뀌진 않지만, 인식하면 차차 바뀐다. 그런 변화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지역의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기존에 존재하는 주민 조직을 활용하기로 했다. 시에라리온에 스쿨미가 들어간 커뮤니티 30곳. 그 안에 ‘아버지모임∙어머니회∙아동클럽∙학교운영위원회’ 등 존재하는 클럽만 120개에 달했다. 각각의 클럽에서 몇 명씩 추려, 커뮤니티별로 ‘핵심 그룹’을 꾸렸다. 직원이 ‘핵심그룹’과 양성평등 트레이닝을 하면, 이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가 이웃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하도록 했다. 직원에서 ‘핵심 그룹’으로, 그들이 다시 ‘이웃’으로, 이웃이 다시 ‘주변’으로 양성평등 메시지를 퍼뜨리는 일명 ‘다단계’ 방식. 효과는 어땠을까. 

ㅡ올해 2월에도 시에라리온 현장에 가서 주민들 트레이닝을 참관했다고 들었다. 분위기가 어땠나.

“트레이닝 방법은 비슷하다. 자기 삶의 젠더 문제를 꺼내보게도 하고, 시간대별로 남녀의 일과도 적어본다. ‘나도 학교 다니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남자 형제들만 보냈다’,’오렌지 팔면 학교 다닐 수 있다고 했는데 결국엔 일찍 결혼해야 했다’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처음에는 ‘뭐가 문제냐’는 이들도 내 이야기로 연결되면 생각이 조금씩 바뀐다. 그럼 핵심 그룹은 자기가 느낀 내용을 지역에 가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한다. 이번에는 마을 주민들을 모아놓고 ‘연극’을 하더라. 아내가 꼭두새벽부터 집안일 하랴, 아이들을 돌보랴 정신이 없는데, 그 와중에 밥이 탔다고 남편한테 맞는 내용이다. 사람들이 깔깔대고 웃으면 ‘이게 과연 옳은가’라며 질문을 던진다. 외지인이나 직원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만로는 생각을 바꿀 수가 없다. 그러나 이웃에게 전해듣는 방식, 스스로를 곱씹어보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시에라리온, 젠더 트레이닝을 받은 '핵심그룹' 사람들이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일상의 젠더 문제를 녹여낸 '연극'을 선보였다. ⓒ세이브더칠드런
시에라리온에서 젠더 트레이닝을 받은 ‘핵심그룹’ 사람들이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일상의 젠더 문제를 녹여낸 ‘연극’을 선보이는 모습. 김 팀장은 “본인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자기 반영(self-reflection)’ 방식을 통해 일상에 녹아있는 젠더 문제를 끄집어낸다”고 했다. ⓒ세이브더칠드런

◇보이지 않는 변화, 손에 잡히는 수치로

‘소녀들의 역량 강화’, ‘사람들의 성인식 변화’

목표야 멋지지만, 진짜 변화가 나타날까. 그 변화를 증명할 수 있을까. 최근 스쿨미 2기는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보이지 않는 변화를 손에 잡히는 결과로 설명할 평가 도구를 만들었다. 일명 ‘스쿨미 임파워먼트 평가도구’. 3년간 진행될 스쿨미 2기는, 소녀들이 어떻게 변화했고, 사람들의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세심하게 추적한다. 정확한 ‘임팩트’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ㅡ생각과 태도의 변화, 정말 측정이 가능할까.

“국제개발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생각과 태도, 인식의 변화다. 스쿨미 성과를 물으면 “이걸 했다”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아이들 삶의 태도가 변했다”고 말하는 게 목표다. 사람 한 두 명의 사례 대신, 정확한 수치와 결과치를 들어 설명하고 싶었다. 입학률, 문해율, 졸업률 같은 수치로는 그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아이들의 역량강화를 수치로 제시할 수 있는 연구 자료는 없더라. 온갖 문헌을 뒤지고 머리를 맞댔다. 평가도구를 잘 개발할 수 있으면 다른 사업에서도 적용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ㅡ역량 강화를 어떻게 측정하나.

“소녀들의 ‘역량 강화’를 무엇으로 볼 지가 관건이었다. 여러 문헌을 참고해, ‘소녀와 지역의 변화 과정 자체’를 역량 강화로 잡았다. 문해율, 산술능력 같은 ‘학습 역량’에, 스스로에 대한 신뢰(자기효능감), 사회적인 측면까지, 크게 3가지 요소로 잡았다. 각각에 맞는 상세한 질문들도 뽑았다. ‘힘들 때 도움을 구할 사람이 있는지’,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같은 질문들을 묻는다. ‘여자가 잘못하면 맞아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남자가 여자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지’ 같이 ‘성 인식’을 묻는 질문들도 포함시켰다. 평가 질문을 짠 뒤에도 현지화 작업에만 3주가 걸렸다. 직원과 질문 하나 하나를 짚어가며, 현지에 맞는 방식으로 단어나 형태를 바꿨다.”

ㅡ평가는 어떻게 진행되나.

“지난해, 60개 학교 1413명 아이들과 보호자 1413명을 대상으로 기초 조사를 마쳤다. 이들을 3년간 추적한다. 학교 60곳 중 절반이 스쿨미가 들어간 곳이고, 나머지 30개는 통제군이다. 정확한 평가를 위해 현지 직원이 구글 지도에 학교 주소를 일일이 넣어보며 다른 NGO 활동에서 영향이 없는 학교를 통제군으로 골랐다. 스쿨미에서 하는 ‘임파워먼트 평가’와는 별도로 독립 연구진도 들어왔다. 윤세미 교수가 이끄는 언더우드대학 지속가능발전전공에서는 사람들의 ‘젠더’ 인식 변화 추이를 연구한다. NGO는 현장을 제공하고, 연구진이 독립적으로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협력이 이뤄진 셈이다.”

스쿨미 캠페인 이전, 김현주 팀장이 담당했던 일은 ‘아동 권리 옹호’. 그는 “‘여아 교육이 필요하다’는 한 줄짜리 문장을, 현장에서는 수 백줄로 풀어서 나눠 쓰는 느낌”이라고 했다. 한 평생 ‘국제개발’만 파고들었을 것만 같던 그의 전직은 ‘온라인 서점 MD’. 정치외교를 전공하고선 책이 좋아 온라인 서점에 갔고, 사회과학∙인문학 책 읽고 소개하다보니 빈곤의 원인이 궁금해졌단다. 서른 넘어 ‘빈곤과 불평등’ 공부하러 영국에 유학을 떠났고, 돌아와 세이브더칠드런에 합류한 지 올해로 6년째다. 그가 섬세하게 골라낸 수 백줄의 문장들이 쌓여 ‘스쿨미’라는 책을 그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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