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5일(화)

비영리 단체의 잠재력은 무궁무진… 영리와 만나면 깨어나

‘SVP 서울’ 방문한 폴 슈메이커
서로 요구에 맞는 비영리·영리 단체 연결
유통에 어려움 겪던 ‘아이랩스’ 전문가와 연결하니 매출 3배 늘어

폴 슈메이커. /SVP 인터내셔널 제공
폴 슈메이커. /SVP 인터내셔널 제공

매년 소셜벤처·비영리단체에 조건 없이 투자하고, 조직경영·마케팅·IT·인사관리 등 무료 컨설팅을 진행하는 전문가 그룹이 있다. 세계적인 벤처 자선기관 ‘소셜벤처파트너스(Social Venture Partners·이하 SVP)’의 파트너들이다. 미국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저스, 전(前) 마이크로소프트 CEO 스티브 발머 모두 SVP 파트너다. 이렇게 활동 중인 전 세계 파트너만 3000여명에 달한다. 설립 2년 차를 맞은 ‘SVP 서울’을 축하 방문한 폴 슈메이커(Paul Shoemaker ·사진) SVP 인터내셔널 이사를 만났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영리 50인’으로 꼽히기도 한 그는 15년간 마이크로소프트, 네슬레 등 영리 기업에서 마케팅·비즈니스를 총괄하다가 1998년 미국 시애틀에 SVP를 창립, 15년간 이끌어왔다. 폴 슈메이커는 자신을 “영리와 비영리를 연결하는 매치메이커(Match Maker·중매인)”라고 소개했다.

―소셜벤처파트너스(SVP)를 창립한 계기가 궁금하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마케팅 총괄 매니저로 일할 때 ‘트리피플(Treepeople)’ ‘시애틀 아동연합’ 등 비영리단체들의 비즈니스 전략 자문에 응할 기회가 있었다. 비영리단체가 가진 아이디어와 잠재력은 무궁무진하지만, 조직 경영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영리 쪽에서 쌓아온 사업 전략, 조직 경영, 예산 실행 등의 노하우가 비영리단체에 접목됐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경험하고부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당시 내 주위엔 누군가에게 재정적·기술적인 도움을 주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SVP는 재원과 기술이 있는 전문가들을 어떻게 파트너로 영입했나.

“매년 최소 5000달러(약 500만원) 이상 SVP에 투자하면 누구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SVP와 함께 투자할 소셜벤처·비영리단체를 선정하고, 본인의 시간과 지식·기술을 나누면 된다. 창립 때부터 SVP의 취지에 공감한 캘로그 재단, 휼렛패커드(HP) 컴퍼니 재단, 서드나(SURDNA) 재단 등 대형 재단들이 25만달러(약 2억5000만원)씩 기부했고, 10만달러(약 1억원) 이상 기부한 익명의 자산가도 상당수였다. 그후엔 프로보노에 한번 참여해본 파트너들이 자발적으로 소문을 내고, 지인들을 파트너로 영입하면서 SVP는 단기간에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현재 SVP 지부는 서울을 비롯, 캐나다, 콜롬비아, 호주, 일본 등 전 세계 38개 도시로 확대됐다.)

―서로 요구에 맞는 사람과 단체를 연결하는 것이 관건일 것 같다.

“전문가와 비영리단체를 연결하는 건 ‘채용’ 과정과 비슷하다. 세 살 이하 아이들의 뇌를 연구하는 비영리기관 ‘아이랩스(ILABS)’는 좋은 아이디어와 제품이 있는 반면,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 마케팅 매니저와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Expedia) 직원을 연결해줬다. 이들이 비즈니스·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이사회 설립과 기금 마련을 돕자, 2년 뒤 아이랩스의 직원 수가 2배, 매출은 3배로 늘었고, 미국 유명 대학교 및 주지사들이 이곳을 찾을 만큼 유명해졌다.”

―한국에도 기업가들과 비영리단체를 연결하는 프로보노가 확산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애로 사항과 갈등도 발생되고 있다. SVP는 영리와 비영리 영역 간의 갭(gap)을 어떻게 좁히고 있는가.

“물론 미국에도 SVP 파트너들의 컨설팅을 거부하는 소셜벤처들도 있다. 10대 청소년들의 중·고등학교, 대학교 진학을 돕는 소셜벤처 ‘레이니어 스콜라스(Lainier scolars)’는 소셜벤처 설립자가 조직을 성장시킬 수 있는 후계자를 키우지 않다가, 성장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SVP 파트너들의 진단 결과 막혀있는 뚜껑을 열어줄 ‘기폭제 리더’가 필요했다. ‘비영리 조직은 다르다’면서 컨설팅을 거부하던 설립자도 1년간 소통과 설득 끝에 마음을 열었다. 설립자에겐 단체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대사(대외협력)’ 역할을 찾아줬고, 새로운 리더를 세우고 조직 경영을 컨설팅했다. 1년 후 직원 수가 5배, 매출이 6.5배 늘어날 정도로 성장했다. 이처럼 영리와 비영리 간의 틈을 좁히려면 충분한 시간과 소통, 이를 받쳐주는 세밀한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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