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단체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 건 처음입니다.”
지난 28일 서울 영등포구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다문화가정 지원기관 포커스그룹 인터뷰(FGI)’에서 박승호 포천하랑센터장이 운을 띄웠다. 이날 인터뷰는 이랜드재단이 다문화가정 지원기관 관계자들에게 현장의 어려움을 듣기 위해 마련했다. 박 센터장은 “당사자를 가장 가까이서 돕는 사람끼리 정보를 주고 받으면 더 효율적인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랜드재단은 다문화가정 등 새로운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플랫폼 구축에 나선다. 사각지대의 당사자를 돕는 단체들이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참석자는 다문화가정 지원기관 8곳 관계자 11명이었다. ▲박승호 포천하랑센터장 ▲김한수 할렐루야 교회 사회복지부 팀장 ▲이미화 수원성교회 권사 ▲임연희 수원성교회 집사 ▲김성기 서울예수마음교회 목사 ▲정종원 프래밀리 대표 ▲김성은 프래밀리 대표 ▲박옥식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 이사장 ▲권은주 광주이주민나눔센터 대표 ▲조혁래 광주이주민나눔센터장 ▲황선영 글로벌한부모가족센터 대표가 한 자리에 모여 의견을 나눴다.
다문화가정은 내국인과 외국인이 결혼해 이룬 가정을 뜻한다. 여성가족부 ‘2021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결혼이민자·귀화자는 30만5064명이며, 이 중 82.5%가 여성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가구 비율은 6.4%로 2015년 5.1%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김혜연 이랜드재단 팀장은 “결혼이주여성의 42%는 가정폭력을 경험했으며, 경제 생활과 자녀 교육 등에서도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며 “다문화가정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선에서 이들을 돕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관계자들은 지원이 가장 필요한 대상으로 중도입국자와 다문화 한부모 가정을 꼽았다. 박승호 포천하랑센터장은 “부모의 결혼으로 중도입국하는 청소년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적인 충돌을 겪거나 학교폭력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황선영 글로벌한부모가족센터 대표는 “다문화 한부모 가정에서는 부모가 일하러 나가면 아동이 집에 홀로 남아 방치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미등록 아동 문제도 주요 사안으로 논의됐다. 한국에서 체류 자격을 갖추지 못한 미등록 아동들은 본국에 소환되거나, 위기 상황에도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종원 프래밀리 대표는 “다문화가정에서 부모가 아동을 폭행한 정황이 발견돼 학교 선생님이 신고했더니, 아이가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라서 본국으로 소환된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만 15세까지는 의무 교육 대상자이지만, 그 이후에는 학습권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민간에서 시행되고 있는 효과적인 프로그램도 소개됐다. 권은주 광주이주민나눔센터 대표는 “일방적인 교육보다는 같은 국적이나 문화를 가진 또래 멘토링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권 대표는 “센터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던 5세, 7세 베트남 남매가 찾아왔는데, 먼저 센터에 다니던 베트남 학생이 함께 놀아줬더니 2주도 안 돼서 마음의 문을 열고 적응했다”고 말했다.
현장 관계자들은 다문화가정 지원단체 간 네트워크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효과적인 지원 방식이나 프로그램 공유가 어려워 지속성도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박옥식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 이사장은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돌봄 기능이 가정에서 사회로 이동했지만, 다문화와 관련된 기관 사이의 정보 교류는 부재했다”며 “아동과 부모의 정서적 유대를 만들어주기 위해 각자 노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장관계자끼리 참신한 아이디어를 공유해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일 이랜드재단 대표는 “이랜드재단은 현장 관계자들과 연대해 이 시대 가장 소외된 이웃을 발굴하고 돕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관계자들이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