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오전 9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새벽 5시 반에 일어납니다. 비장애인은 10분이면 갈 거리도 휠체어를 타면 1시간은 걸리기 때문이죠. 웬만한 건물에서는 엘리베이터 한 번 이용하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출근 시간처럼 붐빌 때는 엘리베이터를 몇 번이나 올려 보내고 나서야 겨우 탈 수 있죠. 오늘 나온 제안들이 실현된다면 저도 운전하며 어디든 갈 수 있지 않을까, 꿈꿔봅니다.”(휠체어 장애인 오지영씨)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 관계자와 장애인 당사자, 전문가들이 장애인 이동권 향상을 위한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30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이동편의증진 특별위원회(이하 특위) 제안 설명 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주제는 ‘모두를 위한 이동의 자유’였다.
이날 장애인 이동편의를 높이려면 인프라만큼 ‘정보’가 중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이동하기 전 휠체어로는 어떤 경로를 이용할 수 있는지, 방문할 장소에는 경사로가 설치돼 무리 없이 접근할 수 있는지, 장애인 화장실은 마련돼 있는지 등에 대해 미리 확인할 수 있어야 궁극적으로 이동권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특위에 위원으로 참여한 홍윤희 무의 이사장은 “관련 정보가 각 정부부처, 지자체 등에 분산돼 관리되고 있다”면서 “민간에서도 정보 수집이 이뤄지고 있지만 각자 진행하는 탓에 데이터 품질이 일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홍 위원은 “국가가 데이터 정책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관련 정보를 국가 중요 공공데이터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이동수단의 기술 발전을 위한 법 체계 개선에 대해서도 논의됐다. 도로교통법 시행령 제2조에 따르면 수동휠체어, 전동휠체어, 의료용 스쿠터는 의료기기로 분류된다. 이로 인해 인증을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우리나라 절차는 유독 복잡하다. 최신 기술의 장비가 개발돼도 국내 장애인이 실제로 이용하기까지는 길게는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상용화된 최신 장비가 있어도 국내에서는 구식의 장비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특위는 장애인 욕구에 따른 유연한 지원, 기술 개발을 위한 인증제도 개선 등을 제안했다.
이번 토론회를 마련한 특위는 지난해 9월 출범했다.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 자녀의 부모, 법·의료·사회복지 전문가 등 10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공급자 중심의 정책 제공으로 발생한 지원 사각지대를 확인하고, 실질적인 불편 해소를 위한 과제들을 정립했다. 4개월 동안 17차례의 정례회의를 열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주요 제안들을 보고했다. 방문석 장애인이동편의증진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특위 활동이 장애인이 겪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더라도, 이동권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장기적으로 그려보려 했다”며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을 때 우리나라가 경제선진국을 넘어 문화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특위는 대중교통뿐 아니라 휠체어, 렌터카, 자가용 등 다양한 이동수단으로 논의 범위를 넓혀 이동 환경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했다. 유니버설 버스정류장 개발, 도시철도 내 환승 동선 확보, 장애인 자가 차량 구입·개조 지원 확대, 보행 장애물 관리 강화, 대중교통 종사자 대상 서비스 교육 강화, 시민 인식 개선, 장애인콜택시(특별교통수단) 확충 등을 중점으로 정책을 제안했다.
한지아 위원은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당연히 보장돼야 하는 장애인 이동의 자유가 부정적으로 비치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권리에 대한 인식이 특정 사안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국민 인식 속에 깊이 뿌리내리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특위 보고를 받으면서 장애인의 권리는 공동체의 품격과 인권의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고 했다. 또 “특위가 마련한 제안이 장애인의 공정한 기회를 찾는 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며 “단순 제안에 그치지 않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국민통합위원회에서도 부처별 후속 계획을 점검해 대통령께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