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아프간 탈레반, 여성의 NGO 활동까지 금지… 국제구호 중단 위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이 여성의 NGO 활동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지난해 8월 정권을 잡은 후 줄곧 NGO 활동을 감시해 온 탈레반이 여성의 참여까지 공식적으로 막은 것이다.

AP·AFP·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24일(현지 시각) 탈레반 정권이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구호단체에 경제부 장관 이름으로 이 같은 명령을 담은 서한을 보냈다고 이날 보도했다. 명령을 따르지 않는 단체에는 활동 허가를 취소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구호단체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히잡 착용에 관한 이슬람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는 이유다.

25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이 비정부기구(NGO)로부터 식량 지원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AFP 연합뉴스
25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이 비정부기구(NGO)로부터 식량 지원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AFP 연합뉴스

추운 겨울을 앞두고 아프간 주민이 큰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아프간은 복지를 거의 NGO 지원에 의존한다. 인구의 절반인 약 2400만명이 NGO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여성, 아동, 장애인이 주요 지원 대상이다. 특히 여성, 아동을 지원하는 사업에서는 여성 활동가를 대부분 고용하기 때문에 현지 여성 활동가 없이는 사실상 인도주의적 지원이 불가능하다.

탈레반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NGO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탈레반 집권 전에는 긴급 상황의 경우 아프간 정부로부터 활동 허가를 받은 NGO는 추가 승인 없이 각 지역에서 사업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탈레반 정권은 모든 사업에 대해 각 지역에서 주정부 허가를 받은 후 수도 카불에서 경제부의 추가 승인을 받도록 했다. 사업별로 일일이 승인을 받아야 하는 데다가 절차까지 복잡해져 수행 속도가 지연됐다.

2000년대에 아프간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했던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은 탈레반 정권이 NGO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이유에 대해 “해외에서 들어온 NGO 활동가 중 여성이 많다는 사실이 탈레반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여성이 여성의 자립과 역량강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NGO와 함께 일하다 보면 사회활동에 대한 열망이 커질 것을 염려한 조치라는 것이다.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하는 NGO들은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노르웨이난민협의회(Norwegian Refugee Council), 케어인터내셔널(CARE International) 등 국제구호단체 3곳은 25일 공동성명을 통해 “여성 직원 없이는 구호 대상인 곤경의 아프간 아동, 여성 및 남성들과 효율적으로 연결될 수 없다”며 당분간 지원을 끊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제구조위원회(IRC)도 “아프간에서 고용 중인 직원 8000명 중 3000명 이상이 여성”이라며 여성이 일하지 못하면 구호활동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는 이유로 활동 중단 의사를 밝혔다. 아순타 찰스 아프간월드비전 회장은 중단 계획을 발표하면서 “아프간 지도부의 이번 결정은 명백히 아프간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국민의 아프간 입국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국적의 직원은 현지에서 활동하지 않는다. 현지에 직원을 파견한 NGO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원격으로 사업을 관리한다. 허지혜 한국월드비전 국제구호·취약지업사업팀 과장은 “우선은 지원을 전면중단하고, 정책과 여론을 고려해 대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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