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책 한 권이 세상에 등장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브랜드들의 이면에 숨겨진 아동노동 착취, 전쟁, 환경파괴 등의 어두운 그늘을 조명한 서적이다. 거대 기업의 파렴치한 행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이 책에는 독재 부패정권을 기반으로 기업들이 어떤 모습으로 더러운 유착관계를 맺는지 보여준다. 환경과 사회를 보호하는 관련법을 저지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것만 같은 유명 브랜드 회사가 국제단체와 어떻게 협업하는지도 밝혔다. 인권을 묵살하는 파렴치한 기업, 전자산업 내에 드리워진 아동노동의 그림자, 의약품 업계에 자행되는 실험용 모르모트 인간, 석유업계의 환경오염 실태 등 기업이 만드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과거에는 한두 번 욕 먹고 금방 잊힐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ESG를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 투자기관 입장에서 이른바 ‘나쁜 기업’은 투자 배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투자 분야에서는 ‘죄악주(罪惡株)’라고 불리는 업종과 종목이 있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건강에 해를 끼치거나 사회적인 통념상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류, 담배, 도박, 무기, 성상품, 대부 업종에 속하는 주식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죄악주는 ESG 투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윤리적, 종교적 신념 또는 환경·인권 보호와 같은 사회적 동기를 고려해 투자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ESG와 같은 비재무적 요소가 장기적으로 기업의 재무적 가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투자 전략 관점이 더 크게 작용한다.
우리는 종종 ESG를 고려해 투자한다면서 카지노 기업의 지분을 늘렸다든지, 석탄발전 관련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다소 비판적인 기사를 접하곤 한다. 급격히 늘어난 ESG 펀드나 ESG 채권이 실제로는 기존 투자 포트폴리오와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많다. 지난해 기준 세계 주요 대형 상위 20개 ESG펀드 중 12개 펀드가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을 포함하고 있고 ESG 펀드 전체로는 미국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이들이 ESG 경영을 잘해서 보유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ESG 등급 결과에 따르면 이 두 기업 모두 ‘BBB’ 등급으로 ESG 측면에서 매우 우수한 기업이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실제로 죄악주 또는 ESG 수준이 낮은 기업의 주가는 어떨까?
이와 관련해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의 프랭크 파보지 교수는 2008년 한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파보지 교수는 1970년부터 2007년까지 주식시장을 분석한 결과 주류, 담배 산업 등 죄악주가 시장대비 초과 수익률을 올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환경과 사회적으로 건전한 평가를 받기 어려운 비즈니스 업종이 실제로는 주가상승폭이 더 컸던 것이다. 죄악주는 시장으로부터 낮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이 연구에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여러 이유로 투자자들이 죄악주를 멀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평가 돼 있는 상태가 많고 상대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죄악주가 가진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자본시장에서 새로운 자금을 수혈하기가 어렵거나 정부의 규제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산업이 많고 사회적 해자(social moat)가 존재해 다른 산업군에 비해 경쟁이 낮다. 이에 상대적으로 이익률은 높은 경우가 많다. 이처럼 죄악주가 오히려 더 높은 주가상승력을 갖는 일명 ‘죄악주 딜레마’인 ‘죄악주 프리미엄’이 있다는 것이다.
파보지 교수는 2017년 다시 한번 ‘죄악주의 재검토’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는 2016년까지의 주식시장을 분석해, 여전히 죄악주가 시장보다 더 좋은 성과를 냈음을 확인했다. 죄악주에 투자해서 수익을 얻은 것에 대해 ‘잘했지만 좋은 건 아니야(doing good but not well)’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죄악주 프리미엄이 존재하는 것일까? 파보지 교수는 “이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10년 전과 비교해 발달한 분석기법과 글로벌 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해보니 죄악주라서 상승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다. 다른 연구자가 소형주와 대형주 사이의 수익률을 제어하는 파마-프렌치 모델을 기반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죄악주 대부분이 소형주였기 때문에 상승한 것이지 죄악주 프리미엄 때문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ESG가 중요해지면서 이제는 투자 포트폴리오 안에 죄악주를 담는 것은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 됐다. 죄악주가 더 많이 주가가 오른다는 죄악주 프리미엄이라는 달콤함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한 투자자가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죄악주 딜레마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오히려 최근에는 ESG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 장기적인 수익률에도 도움이 된다는 증거도 나오고 있다. EU의 경우 2018년 5월 ‘EU집행위원회의 지속가능금융에 대한 행동계획’에서 투자목표에 환경, 사회 또는 지속가능성을 고려한다고 명시한 금융상품에 대해서는 환경·사회적 기준이 어떻게 충족되고 있는지를 공시하도록 했다. 무늬만 ESG투자인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명확하게 투자의 이유를 밝히도록 한 것이다.
최종 결정은 투자자가 선택할 일이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요구받듯 투자자도 정의로운 투자의사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오늘의 논문
-FJ Fabozzi, KC Ma, BJ Oliphant (2008), “Sin stock returns”, The Journal of Portfolio, Fall 2008, 35 (1) 82-94.
-D Blitz, FJ Fabozzi (2017), “Sin stocks revisited: Resolving the sin stock anomaly”, The Journal of Portfolio Management, Fall 2017, 44 (1) 105-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