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발자국 계산해보니
환경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농업 분야에서 2130만t의 탄소가 배출됐다. 승용차 약 4910만대가 연간 발생시키는 탄소 배출량과 맞먹는 규모다. 대부분 비료나 농약 등 농자재를 사용하거나 온풍기와 경운기 등 기계를 작동할 때 발생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14년부터 농산물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저탄소 농축산물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다. 농식품부가 자체 개발한 ‘탄소 저감 기술’을 이용해 재배한 농산물에 인증 마크를 달아주는 제도다. 사과·배·포도·감자·고구마·옥수수 등 51개 품목이 인증 대상이다.
최근 저탄소 농산물 인증제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줄였지만 유통·소비 과정에서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된다는 주장이다. 저탄소 인증을 받은 농산물들은 소비자들에게 고급 농산물로 인식된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는 저탄소 인증 농산물에 ‘프리미엄’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마케팅을 벌이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용기나 비닐 포장재로 낱개 포장한 저탄소 농산물의 모습은 환경을 위한다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농지에서 도시로 농작물을 운송할 때 발생하는 탄소량도 만만치 않다. 저탄소 농산물, 진짜 저탄소가 맞을까.
탄소로 포장되는 저탄소 농산물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4952개 저탄소 인증 농가가 총 7만7769t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했다. 저탄소 농가 인증을 가장 많이 받은 품목은 ‘사과’다. 1414개 사과 농가가 저탄소 인증을 받았다. 저탄소 농법을 사용하지 않는 일반 농가의 경우 사과 1㎏을 생산할 때 평균 400g의 탄소를 발생시킨다. 반면 저탄소 인증을 받은 농가는 같은 양을 생산할 때 약 284g의 탄소를 발생시킨다. 3㎏짜리 사과 한 박스를 기준으로 보면 일반 사과는 생산 과정에서 1200g의 탄소를, 저탄소 사과는 852g의 탄소를 발생시킨다.
더나은미래는 경북 의성의 A농가에서 생산된 저탄소 사과 한 박스(3㎏)가 서울 중구에 있는 백화점에서 판매되기까지의 탄소 배출량을 계산해봤다. 문제는 포장 단계에서부터 발생했다. 도시의 마트나 백화점으로 가는 저탄소 농산물은 유통 과정에서의 손상을 방지하고 값을 더 높이 받기 위해 포장에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A농가가 백화점에 납품하는 저탄소 사과도 마찬가지였다. 12개의 사과를 낱개로 하나씩 비닐 포장한 뒤 골판지 재질의 상자에 담았고, 상자 안쪽에는 제품 손상을 막기 위한 스티로폼 완충재도 깔았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KEITI)이 제공하는 배출 계수를 참고해 해당 포장재의 탄소 배출량을 각각 계산해보니 스티로폼 완충재는 90g, 비닐 포장지 112g, 박스 87g이었다. 포장 단계에서만 약 289g의 탄소가 발생한 것이다.
유통 과정에서도 탄소가 발생한다. 경북 의성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약 260㎞. 경유를 사용하는 1t 트럭을 기준으로 사과 한 박스를 경북 의성에서 서울까지 보낼 경우 약 270g의 탄소가 배출된다. 경북 의성에서 생산된 3㎏짜리 저탄소 사과 한 박스가 서울 백화점에서 유통될 경우 생산(852g)·포장(289g)·유통(270g)을 거쳐 총 1411g의 탄소가 배출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약 이 사과가 백화점 대신 유통·포장 과정을 최소화할 수 있는 로컬푸드 매장에서 판매된다면 어떨까. 경북 예천의 로컬푸드 매장에서 판매될 경우를 가정해 다시 계산했다. 의성에서 예천 매장까지의 거리는 약 16㎞. 사과 3㎏을 운송하는 데 발생하는 탄소량은 약 73g이다. 사과를 가판대에 쌓아놓고 판매할 경우 포장 단계의 탄소 발생량이 ‘0’이 된다. 서울에 있는 백화점에서 저탄소 사과를 판매할 때보다 탄소를 476g 줄일 수 있다. 이 계산대로라면 일반 사과를 로컬 매장에서 판매하는 게 저탄소 사과를 서울 매장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훨씬 더 친환경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저탄소 농법으로 줄일 수 있는 탄소량(348g)이 포장·유통 과정에서 줄일 수 있는 탄소량(476g)보다 적기 때문이다.
포장·유통 과정까지 챙겨야 ‘진정한 저탄소’
전문가들은 ‘저탄소 농축산물 인증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생산뿐 아니라 포장·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량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만철 농촌과자치연구소장(청운대 사회적기업학과 교수)은 “저탄소 농축산물 인증제가 생산 과정에 대한 탄소 감축만 측정한다는 것은 분명한 한계”라며 “탄소 저감 효과를 보려면 로컬 마켓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생산·유통·소비 전체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환 농식품신유통연구원장(안양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은 “농산물이 생산·운송·소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의 정도를 나타내는 ‘푸드 마일리지’ 등을 저탄소 인증제에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로컬 매장에서 판매하는 농산물에 저탄소 인증을 주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저탄소 인증은 파종부터 수확까지 생산 단계의 전 과정을 평가하고 있지만 향후 유통·소비 단계의 탄소 감축을 위한 기준도 추가할 계획”이라며 “탄소 감축을 위해 농산물의 유통 거리를 줄이고 로컬푸드 마켓을 활성화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2050 농업분야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강명윤 더나은미래 기자 my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