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모두의 칼럼] 내 휠체어 건들지 마라

유지민(서울 강명중 2)
유지민(서울 강명중 3)

세상엔 특정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에 드는 비용들이 있다. 여자는 생리대, 남자는 면도기, 학생에겐 교복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장애인에게는 장애 비용이 있다. 장애 비용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휠체어·보청기 등 보조기구 비용, 병원 외래·입원·약 처방 등의 의료 비용, 마지막으로 생활 비용이 있다.

첫 번째, 보조기구 비용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내 경우에도 휠체어, 보조기, 재활 기구 등의 구입비와 유지비가 상당히 많이 든다. 장애의 정도가 심하거나 중첩될 경우 비용은 끝도 없이 늘어난다. 특히 휠체어, 보청기 등 개인에 따라 미세한 조절이 필요한 것들은 주문 제작 형식을 거치기 때문에 부담이 더 늘어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내 휠체어를 함부로 만지고 장난치는 친구들에게 “이 휠체어 고장 나면 너희 가족 휴대폰을 다 팔아야 한다”고 하면 모두 장난을 멈췄던 기억이 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비용을 물어줘야 한다는 게 핵심은 아니었다. 휠체어는 장애인에게 몸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중요한 물건이니 함부로 만지면 안 되는 것을 납득시키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두 번째, 의료 비용은 셋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루 날 잡아 대형병원의 여러 과를 돌며 진료를 받으면 최소 3만원. 당일 실시된 처방, 검사에 따라 몇 십만 원이 드는 날도 있다. 진료가 끝나고 가만히 영수증을 볼 때마다 먼 훗날 혼자 아르바이트나 취업해 돈을 벌 때는 이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나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매번 처방받는 약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국의 건강보험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이런 비용이 부담이 되어 ‘나는 외국에서는 못 살겠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약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병원과 담을 쌓고 사는 내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많다.

마지막으로 생활 비용은 조금은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장애로 인해 생기는 아주 사소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출이다. 예를 들어, 혼자 바지를 갈아입기 어려워 사이드에 지퍼가 달린 바지를 조금 더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다거나, 지하철역 휠체어 환승 경로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람에 환승 인정이 안 돼 돈을 한 번 더 내게 되는 등의 경우다. 위의 두 가지 비용과 다른 점은 굳이 안 내도 될 것 같은 비용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는 것이다. 만약 세상의 모든 바지가 누구나 쉽게 입고 벗을 수 있게 제작된다면? 지하철역에서 휠체어로 30분 이내로 환승할 수 있게 경로를 재정비한다면?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우리 사회가 아직은 장애인에게 불친절한 사회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장애 비용은 장애인에게 큰 부담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실제로 장애인들은 연간 1인당 127만 5000원에 달하는 ‘장애 비용’을 낸다. 그런데 비장애인들은 이런 비용이 들어간다는 걸 잘 모른다. 심지어 자신들이 누리지 못하는 장애인 복지를 ‘손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휠체어를 싣고 내리기 위해 넓은 공간을 배정하는 ‘장애인 주차구역’이 대표적이다. 장애 비용은 평범한 가정을 가난하게 만들고, 가난한 가정을 더 가난하게 만들기도 한다.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비장애인이 함께 관심 갖고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다. 세상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곳’이라면 말이다.

유지민(서울 강명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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