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나의 꿈, 사진(My Dream, photo) 개막식에서 조세현 사진작가를 만나 얘기를 나눴습니다. 조 작가는 지난 1년 동안 삼성의 후원을 받아 소외 계층 청소년을 위한 사진 교육 프로그램 ‘조세현의 그린프레임’을 통해 200명의 아이를 만났습니다. 조 작가는 개막식 인사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고 말했습니다.
내막을 들어봤습니다. 조세현 작가는 삼성의 지정기탁금으로 이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조세현 작가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교육시키려면 좋은 카메라도 사야 하고 찍은 사진을 맘껏 프린트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야 하는데, 모금회는 아직도 아이들 빵 사주고 학용품 사주는 것만 복지인 줄 알고 있어서 이런 부분을 일일이 설득하기가 힘들었다”며 “유명 사진작가인 내가 이 정도인데, 이름도 없는 복지기관은 오죽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생산자나 소비자보다는 이 둘을 이어주는 ‘유통’이 권력이 되고 있습니다. 콘텐츠 생산자인 종이신문은 갈수록 사정이 어려운데, 온라인 콘텐츠 유통망을 쥔 네이버는 승승장구하듯이 말입니다. 복지 분야로 눈을 돌려봐도 비슷합니다. 개인·기업의 기부금을 많이 거둬, 꼭 필요한 복지 현장에 이 기부금이 잘 쓰이도록 도와야 할 모금회는 어느새 복지 유통망의 ‘갑(甲)’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을(乙)’인 복지기관은 어떻게 하면 모금회 규정에 따라 사업을 잘 평가받아서 다음 연도 사업이 잘리지 않게 눈치 보느라 ‘할 말’을 못합니다. 자체 모금액이 수백억이 넘는 대형 NGO에선 “모금회 사업하려면 너무 피곤해서 아예 제안서를 내지 않는다”며 배짱을 부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풀뿌리 소규모 NGO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비현실적인 규정을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 결과는 바로 ‘단기 계약직·비정규직 사회복지사’의 양산입니다.
물론 “깐깐한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으면, 배분사업을 둘러싸고 칼부림나기 십상”이라는 모금회 관계자의 말처럼, 모금과 배분사업의 투명성을 위해 5중 감사를 받는 모금회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모금액을 어떻게 하면 더 늘릴 수 있는지보다, 어떤 방법이 수혜자를 위해 도움이 될지 현장과 함께 고민하고 정부와 사회를 설득하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국내 3위의 잘나가는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최근 국제구호개발NGO의 홍보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분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문직과 (복지)서비스직은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이렇게 사회적 대우가 다른지 깜짝 놀랐다.” 사람의 ‘삶’을 다루는 사회복지 분야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인데, 아직 우리 사회는 ‘좋은 일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직업적 가치를 저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복지 선진국은 결코 쉽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