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해외 진출 기업과 NGO를 위한 윈윈은?

#1. “한국의 한 유명 선박제조업체가 인근 지역에 조선소를 지으려고 하면서 지역 주민과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지난 19일 필리핀 출장길에서 만난 존 레이 티앙고 나보타스 시장과의 인터뷰 말미에, 통역을 도와준 하트하트재단 임문희 지부장님은 “개인적으로 여쭐 게 있다”며 시장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 그건 한국 기업이 아니라 중국 기업으로 아는데요.”

알고 보니, 지역 주민과 갈등을 겪는 것은 중국 기업인데 어찌 된 일인지 현지 주민들에겐 그게 한국의 H기업이라고 소문이 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2. 내친김에 임 지부장에게 “이곳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의 CSR 활동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최근 대형음료회사를 인수한 국내의 한 대기업 관계자와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CSR 활동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기업 관계자는 “가난한 필리핀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려고 예산을 뽑아본 결과,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고 말했답니다. 필리핀에서 23년째 선교사로 지내고 있는 임 지부장이 이 예산 내역을 보니, 사립대학교 입학을 기준으로 뽑은 것이었습니다. 임 지부장은 “필리핀은 빈부 격차가 심해서, 사립대학 학비는 공립대학의 12~13배다”라며 “사립대학에 갈 정도의 경제적 수준이면 굳이 장학금을 줄 필요가 없는 경우도 많다”고 조언했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대기업 관계자는 “올해는 사업 계획이 잡혔으니 내년쯤 다시 의논해보자”고 했다고 합니다.

두 가지 사례를 접하며, 오는 4월 10일 ‘더나은미래’가 주최하는 ‘해외 진출 기업의 글로벌 CSR’ 콘퍼런스와도 맥락이 닿아있어서인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필리핀 빈민촌임에도, 취재를 하러 간 기자에게 이름도 잘 모르는 한류 스타를 꼬치꼬치 캐물을 정도로 유튜브 등을 통한 글로벌화는 훨씬 진전된 상태였습니다. 이는 기업엔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 주민을 위한 좋은 CSR 프로그램으로 기업 호감도를 높일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애플의 하도급업체 공장 폭스콘에서 벌어진 대규모 노동자 자살 사태처럼 순식간에 반기업정서가 확대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지 CSR의 중요성은 높아지지만, 아직 프로그램은 시작 단계입니다. 현지 사정을 잘 알면서 기업의 CSR 요구도 만족시켜줄 파트너를 찾기도 어렵습니다. 저를 포함한 ‘더나은미래’ 기자들은 1년에 몇 차례씩 국제개발협력 NGO들과 함께 해외 현장 취재를 다니다 보니 가끔 이런 얘기를 합니다.

“현지에서 CSR을 하고 싶어하는 기업과 현지에 정착해 개발협력사업을 해온 NGO끼리 정보교류를 하면 훨씬 더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

기업과 NGO가 같은 나라에 진출해있음에도, 서로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어디서 어떻게 알아봐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알음알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돈 되는 일이 아니니, 이런 정보교류와 네트워크 사업을 주도하는 곳도 별로 없습니다. 진출 국가, 지원하고 싶은 대상, 원하는 사업 프로그램이 매칭 가능한 기업과 NGO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거나 이런 정보를 상담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불필요한 초기 정착 시행착오도 줄이고 기업과 NGO 모두를 위한 ‘윈-윈’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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