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3일(월)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설치하고 고장 난 채 방치… 왜 원조하나요

제가 처음 국제구호개발 현장을 가본 것은 2006년입니다. 월드비전과 함께 케냐 투르카나 지역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보고 난 후 병원 건물 뒤편에서 한참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이는 두 손가락으로 팔을 감싸니, 한 마디가 남을 만큼 앙상했습니다. 케냐에서 또 한 번 놀란 현장은 드넓게 펼쳐진 ‘소람(Sorgho

m·옥수수의 일종)’ 농장이었습니다. 수십년의 역사를 지닌 월드비전은 이들에게 농사를 가르치고, 지역개발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작년 초, 저는 태양광 전등이 필요한 라오스 현장을 취재 갔다가 다소 민망한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라오스 싸이냐부리의 한 소학교에서 수십 명의 선생님이 점심만찬을 차려놓고 저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저를 안내한 분이 2년 동안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지낼 때 지은 건물이었는데, 코이카가 이 지역의 봉사단 파견을 돌연 없애면서 컴퓨터실은 무용지물이 돼버렸습니다. 그녀는 “너무 미안하다”며 매년 자비를 들여 라오스를 찾아 자체 애프터서비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원조하는 나라(공여국)’의 첫발을 내디딘 초보자에 불과합니다. 코이카가 생긴 지 22년 됐지만, ODA 규모가 늘어나고 개발협력과 관련한 관심이 높아진 건 10년도 안 됩니다. ODA 예산이 증가하면서 국내사업을 하던 NPO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해외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국제본부로부터 매뉴얼을 전수받을 수 있는 일부 초대형 NPO를 제외하면, 코이카와 토종 NPO, 기업, 대학, 병원 등 많은 곳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태양광이든, 수세식 화장실이든, 학교 컴퓨터실이든 지어주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라오스에 가보면 중국인들이 뿌려놓은 태양광 패널이 고장 난 채 방치된 걸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원조 1.0시대’에는 일방적이고, 주는 사람 위주의 원조방식이 주를 이뤘고, ‘원조 2.0시대’에는 수혜자를 고려하는 양방향 원조방식이 부각됐습니다. 이제 세계는 ‘원조 3.0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원조 3.0시대는 원조받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원조의 부가가치와 영향력을 높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반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원조를 하는지’ 말입니다. 유상원조 비율을 줄이면 안 된다는 분들에게 세이브더칠드런 홈페이지에 있는 ‘A FAR CRY’라는 동영상을 한번 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1959년 부활절 날 영국 BBC방송에 나온 10분짜리 동영상입니다. 피란민들로 가득한 빈곤국 대한민국의 모습과 그들을 돕는 국제구호 NPO(세이브더칠드런)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 다큐멘터리 끝 무렵, 이런 멘트가 나옵니다. ‘언젠가는 이런 상황이 바뀔 날이 올까요?(…) 이 아이들이 성장하고 난 뒤 세계 여러 나라가 자신들을 걱정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무상원조의 비율을 높이고, 30개가 넘는 부처에는 제각각 실시하는 원조를 통합해 시너지를 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코이카가 제 역량을 해야 할 텐데, 현장 NPO 23곳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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