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비효율, 이중규제… 이제 그만 내려놓으세요

기자 초년병 시절 가장 이해가 안 됐던 것은 공무원의 명함이었습니다. 같은 부처임에도 부서별로 명함의 모양과 디자인이 제각각이었습니다. “기관의 첫인상이나 마찬가지인데 통일하지 않으면 외부에서 어떻게 보겠느냐”고 했지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한 서울대 교수와 식사 자리에서 이 문제에 관한 흥미로운 해석을 들었습니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렇게 해야 간판업자도 먹고살고, 명함 파는 업자도 먹고산다. 과학기술 R&D 예산이 다 쪼개져서 나눠 먹기식으로 배분되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정부 부처도 비효율적인 걸 알지만 그 비효율 때문에 많은 사람의 일자리가 생긴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지만 꽤 그럴듯한 논리였습니다.

정부의 비효율과 중복문제는 해묵은 주제입니다. 한 NPO 고위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들어 청와대에서 ‘나눔문화를 정부 시책으로 삼겠다’며 정부 고위 관계자가 도와달라고 하기에 ‘이제 겨우 NPO가 스스로 자리잡았는데, 왜 정부가 나서느냐. 제발 관심 좀 끊어달라’고 말해서 불편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말했습니다. 한 기업 고위 임원은 “정부가 기업 팔을 비틀어 진행하는 사회공헌은 효과성도 낮고, 장기적으로 기업이나 사회에 모두 도움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실제 현 정부에서 부처별로 경쟁하듯 기업의 손길에 기댄 사회공헌성 프로그램이 많았습니다.

지난 11일 한국NPO공동회의와 한국비영리학회가 공동주최한 포럼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입법 예고한 ‘나눔기본법’에 대해 참석자들은 “목적별·대상별·부처별로 분산된 나눔 관련 업무를 총괄하지 못하면 또 하나의 이중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반발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박두준 아이들과미래 상임이사는 “국세청에서 이미 자산 10억원 이상, 수입 5억원 이상의 공익법인에 대해 회계공시를 하고 행안부에서도 포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중삼중으로 보고하는 체계는 불필요한 행정비용을 초래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민관 협력을 지원하기 위한 나눔문화재단 설립에 대해서는 “나눔국민운동본부 등 비슷한 기관이 이미 존재하는 데다 나눔문화재단이 직접 사업을 수행해 기존 민간 단체와 중복 사업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정부가 효율적인 민간을 따라잡기란 힘듭니다. 쓸 수 있는 예산도 한정돼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에서 내려오고, 밑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정책 과제를 실현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면 무리하게 민간을 옥죄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정부야말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임팩트 있는 정책을 펴야 합니다. NPO의 투명성을 높이고 싶다면, 소규모 NPO들이 쉽게 쓸 수 있는 회계프로그램을 지원해주고 NPO직원들의 회계교육을 도와주면 됩니다. 기업사회공헌을 활성화시키고 싶다면, 사회공헌을 잘하는 기업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면 됩니다. 이제 정부부처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부처가 주도적으로 다 하겠다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진짜 국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공무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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