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강 임팩트 투자와 기업 금융의 이해
“정부가 공공사업을 수행할 때, 사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세금을 지출합니다. 반면, 사회성과연계채권(Social Impact Bond·이하 SIB)은 민간의 투자로 먼저 사업을 수행하고, 사업이 성공했을 때에만 정부가 예산을 집행해 상환해주면 됩니다. 실패한 사업엔 예산을 쓰지 않고, 성과에 집중할 수 있겠죠. 투자자 입장에선 어떨까요? 정부와 국민이 껴안았던 공공사업의 리스크가 투자자에게 옮겨 가고, 투자자는 사회공헌 사업에 소모하던 예산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상환금이 돌아오니 손해볼 게 없는 일이 됩니다. 사회공헌 자금, 임팩트투자자도 들어올 수 있는 ‘자금의 선순환’이죠.”
지난 11월 14일, 한양대 제2공학관에서 열린 ‘스쿨 오브 임팩트 비즈니스’ 현장. 서울시 제1호 SIB의 운영기관인 팬임팩트코리아의 곽제훈 대표가 직접 SIB의 개념과 사례를 소개했다.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한 곽 대표의 설명에 100여명 수강생이 귀를 기울였다. 팬임팩트코리아는 SIB를 활용한 공공사업(사회성과보상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지난 2015년 설립된 기관이다. 2016년 개시된 서울시의 SIB 사업은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다.
스쿨 오브 임팩트 비즈니스는 2017년 10월 24일부터 11월 16일까지 진행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CSV(공유가치창출) 전문가 양성과정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주최로 산업정책연구원과 임팩트스퀘어가 개최했으며,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미디어 파트너로 함께 했다.
◇아시아 최초 SIB는 ‘경계선지능 아동 교육’ 사업…곽제훈 팬임팩트코리아 대표
“정부의 고민은 공공복지사업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는데, 정부의 재정이 부족해 예산에 제약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이나 비영리법인의 경우, 사회공헌에 대한 요구는 높은데 역시 쓸 수 있는 재원에 한계가 있었죠. 사회적 측면에서는 세금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이지 않는 것, 공공에 투입된 재원이 처음 의도한 성과와 목표를 달성했는가를 알기 어렵다는 것 등이 문제였습니다. 2010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던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SIB를 발행, 사회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봤습니다.”
SIB의 발상지는 영국 피터버러(Peterborough)시. 교도소 내 단기 재소자들의 재범률을 낮추는 것이 세계 최초의 SIB 사업이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태동한 SIB는 현재 미국, 캐나다, 호주, 독일 등 주요국에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전 세계 80건 이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프랑스, 뉴질랜드, 남아공 등에서도 SIB를 시작할 뜻을 공표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곽제훈 대표는 “미국 뉴욕시는 청소년 재소자들의 재수감률 감소를, 독일에서는 미취업 청년의 취업률 향상을, 이스라엘 텔 아비브(Tel Aviv)시 등에서는 대학생들의 중퇴율 감소를 SIB로 시행하고 있다”며 “특히 영국에서는 동시에 10개 사업이 시작해 전부 성공했을 정도로 청년 실업 문제와 관련한 SIB가 유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SIB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까. 곽 대표는 “기존에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등 방식으로 사업수행기관과 직접 계약을 맺었다면, SIB 사업 구조에는 ‘투자자’와 ‘운영기관’, ‘평가기관’이 추가된다”며 서울시의 경우를 예로 들어 소개했다. 그는 “정부가 ‘특정 사회문제를 민간이 해결해주면 일정 예산을 집행하겠다’는 계약을 운영기관과 체결하면, 운영기관이 계약을 근거로 민간 투자자를 모집하고 NGO 등 사업수행기관을 선정한다”며 “이후 계약 당시에 정해두었던 성과 지표에 따라 평가기관이 사업 결과를 측정하고, 이에 따라 정부가 예산을 집행하거나 하지 않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SIB 사업은 서울시 아동복지시설 내 경계선지능 아동을 대상으로 한 ‘경계선지능 아동교육’ 사업입니다. 지능지수가 평균 70 이하면 지적장애, 85 이상은 정상 수준입니다. 71~84점은 장애로 분류가 안돼 수급비나 특수교육 등 도움을 받지 못하는데, 이들이 방치되거나 학습이 안 돼 지적장애가 되면 일생에 걸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갑니다. 통계상 수급자가 되는 비율도 15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분명히 예방의 효과가 있는 대상이고, SIB가 아니면 도움을 못 받는 사각지대 아동들입니다.”
서울시 SIB는 11.1억원의 민간투자를 유치, 2019년까지 3년간 지속된다. 대상 아동 100여명 중 34%의 지능지수가 정상 범주에 들어야 성공으로 본다. 계약 당시 명시한 2개 성과척도(웩슬러 아동지능검사, 아동·청소년 행동평가척도)에서 모두 충족돼야 한다. 사업이 최대 목표치를 달성하면 서울시가 총 13.91억원(인센티브 등 포함)을 상환한다. 곽 대표는 “SIB는 대부분 예방적 사업에 집중하기에 사후에 드는 것보다 적은 비용으로 사회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며 “‘객관적·정량적 성과지표가 존재’하고, ‘총 사업비보다 추정되는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가 더 커야’만 SIB 사업을 했을 때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1. SIB는 실제 채권인가?
=아니다. 이름만 채권(Bond)일뿐, 실제로는 ‘투자 계약’에 가깝다. 다만 채권이라는 이름을 남겨두자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채권처럼 만들어야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2. 정부가 사업비 외에 투자자 인센티브, 운영비 등을 지급하면 비용 부담이 증가하지 않나?
=아니다. 지금껏 정부는 실패한 사업에도 100% 예산을 집행했지만, SIB는 실패한 사업에는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다. 한 사업이 성공해 예산을 집행했다면 정부가 손해를 본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계속 하다 보면 성공과 실패가 발생하면서 특정 확률에 수렴할 것이다. 또한, SIB는 총 사업비보다 추정되는 절감효과가 클 경우에만 시행한다. 기획단계에서 이미 절감효과를 계량화하고 시작하며, 이후 이를 정량화해 성과기준을 만들 수 있다. 성과기준에 따라 원금과 이자 등을 지급해도 절감된 세금이 더 크며, 성공해도 실패해도 손해보는 것은 없고 더 많은 사회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SIB는 근본적으로 성과 중심 사업이다.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3. 운영기관이 필요한 이유는?
=운영기관이 없으면, 수행기관과의 직접적 계약이나 관리 등을 누군가 해야 하는데, SIB의 핵심은 운영기관이 이를 대행함으로써 정부가 책임을 면하게 되는 것이다. 운영기관이 없으면 투자자는 누가 모집할까. NGO는 법적으로 투자 모집이 어렵고, 작은 기관들은 투자 역량이 모자르다. 참고로, 캐나다에서 임팩트투자자 74명에 설문한 결과, 전원이 “운영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4. 민자사업 VS. SIB
=실제로 ‘공공복지사업에 민자사업을 끌어들인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민자사업 투자자들이 이익을 내기 위해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요금을 올리는 등 공공성을 훼손하는 경우가 있었다. 반면 SIB는 투자자가 이익을 창출하려면 더 많은 사회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동기부여 체계 자체가 다른 것이다. 둘은 성질 자체가 다른, 완전히 반대의 동기부여 체계를 가지고 있다.
5. 사업이 실패하면 SIB의 확산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청년 재소자의 재수감률을 낮추기 위한 미국 뉴욕의 SIB 사업은 실패했다. 약 100억짜리 사업이었는데, 투자사 골드먼삭스가 많은 돈을 잃었다. 그런데도 뉴욕시 관계자는 이를 실패로 보지 않았다. 당시 뉴욕시 부시장은 “뉴욕시는 SIB를 통해 납세자의 세금을 소모하지 않고 해당 교도소의 프로그램이 효과적이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 혁신적 구조를 앞으로도 다양한 지역 발전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SIB 사업 이전에도 유사한 제도가 적용되고 있었는데, SIB가 아니었다면 효과 없는 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막대한 세금이 들어갔을 것이라 한다. SIB가 사업 프로그램을 검증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정부는 사업이 실패해도 프로그램 효과 검증, 이를 통한 개선이나 중단, 또는 새로운 프로그램 도입 등을 할 수 있다. 즉, 실패해도 유익이 있다. 사업의 실패는 있어도, SIB 자체의 실패는 아니다.
◇세상 바꾸는 ‘임팩트 투자’의 세계…이덕준 D3쥬빌리 대표
“여러분,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가 무엇일까요?”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이덕준 대표가 수강생들에 ‘임팩트 투자’의 정의를 물었다. 이 대표는 G마켓의 CFO(Chief Financial Officer) 출신으로, 슈로더, 시티그룹, 크레딧스위스 등 투자은행 등을 두루 거친 국내 임팩트투자 전문가다. 현재 임팩트투자사 D3쥬빌리를 이끌고 있다. 몇몇 수강생들의 답변을 들은 이 대표는 “임팩트투자에 대한 개념 정의는 느슨한데다 여러 가지”라며 “공통적으로 재무적 수익과 함께 ‘사회적 임팩트’를 의도적으로 추구하고, 이를 재무적 수익 극대화에 비해 최소한 동등하게, 또는 더 많이 추구하는 새로운 투자 행태를 ‘임팩트 투자’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금융이 차지하는 힘이 엄청 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주류 금융의 규모가 커지면서, 금융이 사회적 문제와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2008년 금융위기를 큰 변곡점으로, 사회적 가치와 금융 시스템이 부합하지 않는 현상에 의문을 품은 일부 개인투자자, 작은 가족재단들을 중심으로 임팩트 투자가 시작됐습니다. 사회적, 생산적 가치, 금융이 해야 하는 본질적 역할을 추구하는 투자 패턴입니다.”
이덕준 대표는 임팩트 투자를 ‘넓이’와 ‘깊이’의 두 차원으로 설명했다. 넓이는 ESG 투자(환경·사회·지배구조를 고려하는 투자), 기업 사회공헌 등 가벼운 임팩트(light impact)를 추구하는 기관 투자자를, 깊이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 직접적 투자를 추구하는 개인 및 가족 단위 투자자들까지 포함한다. 이 대표는 “둘을 합치면 임팩트 투자의 규모는 상당히 큰데, 최근 글로벌임팩트투자네트워크(GIIN)에 따르면 전 세계 임팩트 투자 규모는 1140억달러(약 122조원)”라며 “우리나라는 아직 ESG 투자를 제대로 하는 기관이 없는 반면 미국이나 유럽은 굉장한 사회적 책임성을 가지고 임팩트 투자를 하고 있으며 잠재적 규모도 크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기업 테슬라가 수천억 손실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펀딩을 받으며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생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보고 계속 자본을 공금해주는 투자자들이 형성돼있는 것입니다. 사회문제 해결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수반되는 여러 위험을 끌어안아줄 기업가가 나와야 하고, 이들을 뒷받침하는 액셀러레이터와 투자자 등이 있어야 합니다.”
이덕준 대표는 “임팩트 투자는 성장가능성을 보이는 곳에 투자를 하기도, 가끔은 리스크(위험)를 짊어지고 임팩트 지향적인 투자를 하기도 한다”며 “결국 기술과 투자를 통해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목표”라 설명했다. 그는 “임팩트 투자라는 용어가 생긴 지는 오래됐지만 아직은 하나의 생태계로 발전돼가는 초기단계”라며 “임팩트 투자도 리스크 프로파일에 따라 지분투자, 전환사채, SIB 등으로 다양화해서 투자하기에 다양한 투자기법이 나와줘야 하고,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등에 맞는 금융 솔루션 등 금융 혁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