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가 달라졌다
홍보·광고 분야 전문 인력 유입, 데이터 기반 최신 전략 내세워
이벤트, 콘텐츠 영역도 세분화… 후원자 이탈률 10%p 이상 낮춰
“모 비영리단체의 30주년 기념행사였습니다. 야외였는데 조명 설치를 안 한 탓에 휴대전화로 불빛을 비추는 해프닝이 벌어졌죠. 정당 대표급의 VIP 인사가 초청됐지만 별다른 의전도 없어 식사 대기시간만 한 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결과요? 비용만 많이 들었을 뿐, 대표의 네트워크를 확인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죠. 옛날에는 간사들이 직접 국수 말아 대접하는 걸 ‘진정성’ 있게 봐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행사를 방문한 이들의 체험과 전시 요소 하나하나가 조직의 ‘전문성’과 직결되죠.”
김홍구 대표는 7년간 아름다운가게에 재직하며 바자회만 1500번을 개최한 비영리 행사의 달인이다. 이후 환경운동연합 후원개발팀장, 하이서울페스티벌 기획팀장을 거친 김 대표는 2013년, 비영리단체를 위한 이벤트회사 ‘홍구기획’을 세웠다. 홍구기획이 협업한 ‘에코브릿지페스티벌(2015)’은 식기 대여 시스템을 도입해 쓰레기를 전년 대비 80% 이상 줄였다.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의 장애인체육대회 ‘모두놀이 마주하다 (2015)’는 고려대 체육학과와의 협업을 통해 지체장애인 당사자의 체육 활동을 늘릴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자신의 비영리 행사 기획과 실무 노하우를 담아 지난달 ‘세상을 선하게 바꾸는 이벤트’도 출간했다.
바야흐로 ‘비영리 마케팅 전성시대’다. 행사기획뿐만 아니라 온라인 모금 콘텐츠·활동가 교육에서도 ‘마케팅 전략’이 두각을 나타내는가 하면 영리기업에서 뼈가 굵은 전문가들도 속속 유입되고 있다.
◇’인스파이어디’ ‘펍23’… 전문성 갖춘 인력 유입 활발
“엄마야, 주사다!!! 하지만 이 주사는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주사니까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언니, 오빠들의 도움으로 어린이 6백만 명이 홍역을 예방했어요.”
지난달 30일,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페이스북 캠페인 페이지 ‘위 액션(WE-ACTION)’에 게재된 글이다. 이모티콘을 활용한 아이 같은 말투가 특징인 위 액션은 국내 비영리단체 페이스북 중 가장 많은 친구(6월 9일 현재 50만1983명)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은 ‘아동구호기관’이라는 유니세프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면서 20대 네티즌에게 친숙함을 유발했다. 비영리 SNS에 기업에서나 보던 ‘타기팅(Targeting·특정 집단을 목표로 펼치는 마케팅 전략)’과 ‘관계마케팅’ 전략이 도입된 것이다.
이 전략을 기획한 곳은 전문 마케팅 조직 ‘인스파이어디(INSPIRE/D)’다. 2013년 유니세프한국위원회를 시작으로 대한적십자사, 굿네이버스 등 비영리기관과 글로벌 NGO의 마케팅을 맡고 있다. 이들의 주 전략은 데이터에 따라 마케팅 전략을 결정하는 ‘그로스 해킹(Growth hack ing)’ 방식이다. 예를 들어 홈페이지를 개편한다고 하면, 여러 디자인을 테스트해보면서 어떤 정보를 보여줄 때 사용자가 더 오래 머무르는지, 페이지를 가로로 넘길 때와 세로로 넘길 때 중 어떤 방법이 더 많은 액션을 유도하는지 등을 데이터로 기록한다. 이 데이터가 곧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인스파이어디의 그로스해킹을 통해 후원 신청 페이지를 개편한 비영리단체 A는 접속자 이탈률을 10%포인트 이상 낮추는 효과를 거뒀다.
김동민 인스파이어디 총괄이사는 “2014~2015년 사이 국내 모금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NGO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비영리단체도 자신만의 마케팅 전략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영리와 공공 영역에서 내공을 쌓은 이들도 등장했다. 아산나눔재단과 파트너십을 맺고 올해부터 ‘자오나학교’와 ‘㈔성모마음’의 컨설팅을 진행 중인 공익마케팅 협동조합 ‘펍23’이다. 지난해 10월 설립된 펍23은 홍보·광고·뉴미디어·위기관리 등 각 분야 11명의 전문가로 구성됐다. ‘밀양 송전탑 설치’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입지 변경’ 등 공공영역의 굵직한 위기·갈등 사례를 관리한 박일준 한국갈등관리본부(KCMG) 대표가 이사장을 맡았다. 펍23의 웃음고문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는 광고대행사 제일기획과 KT&G의 미래팀장을 거쳤다. 인디밴드의 성지 ‘상상마당’과 20만 회원을 보유한 KT&G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 ‘상상유니브(대학생 문화강좌)’의 초기 모델이 그의 손에서 기획됐다.
이우철 펍23 사무총장은 영리와 비영리를 고루 경험한 광고인이다. 그가 주도한 유한킴벌리의 ‘그린핑거 캠페인’은 ‘유령마켓’으로 불리던 어린이 스킨케어 시장을 발굴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2014년에는 세이브더칠드런 ‘모자뜨기 캠페인’ 최초로 후원자를 역추적하는 프로모션도 진행했다. 이우철 총장은 “단체가 말하고 싶은 것보다 후원자가 듣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게 마케팅의 시작”이라면서 “글로벌 비영리단체의 경우, 이미 조직 내에 설득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마케팅 전문가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 ‘시민’ ‘공익마케팅스쿨’… 콘텐츠 제작, 교육 등 영역 세분화돼
‘어떤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스토리텔링과 정보 전달의 균형은 어떻게 맞춰야 할까’. 온라인 모금 콘텐츠 제작을 고민 중인 비영리단체는 ㈔시민을 눈여겨보면 된다. ㈔시민은 카카오와 손잡고 올해 1월부터 소규모 모금 콘텐츠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전문가와 비영리 전문가가 함께 진행하는 이 워크숍에서는 온라인과 모바일에 적합한 콘텐츠 제작법을 공유한다. 지난 2일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열린 ‘온라인 모금 걱정 말아요’는 3대 1의 높은 경쟁률로 마감됐다. 정예진 ㈔시민 지원사업팀장은 “카카오의 모금 플랫폼 ‘같이가치 with 카카오’에서 모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단체 중 일부에게는 미디어나 프리랜서 기자를 연결시켜 콘텐츠 제작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직접 비영리마케팅을 실천해보고 싶은 청년활동가는 ‘공익마케팅스쿨’에서 이론과 실무를 배울 수 있다. 10여 년간 의료 마케팅 대행사를 경영했던 오승훈 대표가 설립한 공익마케팅스쿨은 2014년 1기 교육생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3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비영리단체와 더불어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와 함께한 ‘두개 더 마스크’는 5000원을 기부하면, 기부자와 소아암 어린이가 마스크를 하나씩 받는 프로젝트로 2주 동안 1만1448개의 마스크를 아산병원 소아암병동에 기부한 바 있다. 오 대표는 “마케팅은 타깃으로부터 특정 행동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솔루션”이라며 “비영리 마케팅의 핵심은 모금 영역이 아니라 단체의 문제를 정의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짜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보람·오민아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