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족 중복지원 문제
‘다문화가족’은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다. 결혼이민자 수가 18만 2000명에 이르고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2%를 넘어서면서 다문화가족 지원이 일종의 붐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기업도 다문화가족 관련 사업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업이 개별적으로 이뤄지면서 다문화가족 지원정책 전체가 ‘중복 지원’과 ‘일회성 지원’이라는 양대 문제점을 안게 됐다.
다문화가족에 대한 중복지원은 정부 부처의 다문화 관련 사업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전체 결혼이민자 관련 사업 예산의 약 57%에 해당하는 250억원이 들어간 결혼이민자 대상 한국어·적응교육 사업에만 보건복지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법무부, 행정안전부 등 4개 부처가 참여해 총 9개 사업을 진행했다(국회예산정책처 2009년 ‘결혼이민자 관련사업 평가’). 이들 사업은 대부분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비슷비슷한 한국어 교육이나 사회적응교육이라 예산 낭비가 심하다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었다.
다문화 관련 사업 예산은 2008년 317억원, 2009년 436억원, 2010년 629억원, 2011년 887억원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유사한 사업을 여러 부처에서 나눠 수행할 경우 예산이 증가해도 다문화가족이 체감하는 도움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회문화가족정책 연구포럼의 대표인 미래희망연대 김혜성 의원은 “중복지원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건 더 많은 예산을 따내기 위한 부처 이기주의”라고 꼬집었다. 다문화가 정부의 중요한 서민 정책 중 하나로 꼽히면서 중앙 부처들 사이에 ‘다문화 관련 사업을 끼워 넣어야 예산을 따내기가 쉽다’는 인식이 퍼져서 여러 부처가 구색 맞추기 식으로 다문화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문화가족지원정책 기본계획(2010~2012)이 부처 간 역할 분담을 명시하긴 했지만, 이런 이유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다문화정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이처럼 여러 부처에서 실시되는 다문화정책을 전체적으로 조율할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이런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던 건 다문화정책을 총괄 조정하기 위해 2009년 만들어진 국무총리 산하의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가 총리실 산하 56개 위원회 중 하나로서 충분한 강제성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문화가족정책 주무부처가 2005년 여성가족부,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 2010년 여성가족부로 갈팡질팡하면서 특정 부처가 책임감 있게 업무를 맡아 진행할 수 없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다행히 지난 11일 다문화가족지원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여성가족부가 다문화정책 총괄부서로 명시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지만 아직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기업 차원에서 행해지는 중복지원도 또 다른 문제로 남아 있다. 여성가족부 위탁기관으로 전국 200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교육, 지원, 평가, 관리를 맡고 있는 전국다문화가족사업지원단의 고선주 단장은 “최근 기업에서 다문화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지원이 크게 늘어났으나 개별적으로 복지관 등을 통해 다문화가족을 지원하고 있어 어떤 사업을 어느 정도 예산으로 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식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기업들이 특정 지역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경쟁하듯 중복지원을 한다는 점이다. 고 단장은 “기업들도 다문화가족지원정책의 공식적인 전달체계인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지원을 해준다면 중복지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문화가족 대상의 축제, 행사, 문화체험 사업 등 이벤트 위주의 일회성 지원도 여전하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2009년 한해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 3개 부처가 실시한 축제, 행사, 문화체험 사업만 20억이 넘는다. 이들 사업은 다문화의 날 행사, 문화공연 초청, 전통혼례식, 친정부모 초청 등 일회성 행사가 주를 이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경우도 모범 결혼이주여성에게 상을 주거나 다문화가족 행사를 열거나 결혼이민여성을 친정에 보내주는 등 일회성 행사의 비율이 높다.
정부·기업에서 사업비를 받아 프로그램을 꾸려가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이런 일회성 지원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영등포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강현덕(30) 다문화사업팀장은 “정부 지원금이 적어서 기업 등에서 따오는 외부사업을 안 할 수가 없는데, 외부사업을 하면 홍보가 기본전제로 깔리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 좋은 일회성 행사가 많아지게 되어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2009년 조사에 따르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정부지원금에서 센터장과 직원 2인의 인건비를 제외했을 때 남는 사업비는 겨우 1300만원 정도다. 센터로선 프로그램을 진행할 사업비를 벌기 위해 기업, 공동모금회 등에서 단발성 외부 공모사업을 딸 수밖에 없다. 강 팀장은 “다문화가족에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1년 이상 장기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충분한 사업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