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청춘, 당신의 고민을 들려주세요

청춘 고민 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 장재열 대표

서울대 졸업·제일모직 입사… 그러나 우울증 시달려
치료 목적으로 시작한 블로그 2만 6000명 청년 상담소로

 
“남들보다 1년 뒤처지니, 패배자가 된 것 같아 무서워요.” “처음으로 이별을 했어요.”

마음속에 담아둔 고민들이 한 달에 수천 건씩 올라온다. 네이버 포스트 팔로어 5만명, 유튜브 상담 방송 조회수 30만8000건. 캠퍼스 TV·BTN 불교TV 등 케이블 방송과 국방 FM에 고민 상담 토크쇼까지 섭렵했다. 지난해 12월부턴 아프리카 TV에 ‘놀아본 언니들의 고생 TV’ 방송도 시작했다. 주인공은 ‘좀 놀아본 언니들’, 청년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 문화 기획 커뮤니티’다. 이곳의 수장인 장재열(32) 좀 놀아본 언니들 대표는 서울대 미대 졸업과 제일모직 입사라는 화려한 경력을 지닌 ‘남성’이다.

“고민이 있다면 털어버리세요.” 건강한 고민상담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인 ‘좀 놀아본 언니들’의 모습.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찔레언니, 미닝언니, 옆집언니, 클로이언니, 용이오빠, 젤리언니, 장재열 대표. / 박창현 사진작가 제공
“고민이 있다면 털어버리세요.” 건강한 고민상담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인 ‘좀 놀아본 언니들’의 모습.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찔레언니, 미닝언니, 옆집언니, 클로이언니, 용이오빠, 젤리언니, 장재열 대표. / 박창현 사진작가 제공

그는 왜 ‘언니’라는 필명을 써가며, 청춘들의 고민상담사가 됐을까. 수능을 세 번이나 쳐서 들어간 서울대, 화려해 보이는 대기업 인사팀 생활 끝에 그가 얻은 건 ‘우울증’이었다. “취업 준비생들에게 ‘합격 가능하다’며 희망 섞인 말을 전하고 뒤돌아서서 불합격 통지를 하는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었다”고 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만난 한 의사 선생님이 스스로 묻고 답하는 글쓰기 치료를 권했어요. 블로그를 만들고 두 개의 아이디로 자문자답을 시작했습니다.”

오전엔 질문하고, 저녁엔 다른 관점에서 답변했다. 한 번 두 번 횟수가 늘면서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마음 속 공허함과 우울감도 사라졌다. 그때부터였다. 블로그 글을 본 청년들로부터 고민 상담 요청이 쏟아졌다.

“부담스러웠어요. 한 번은 취업 준비생에게 메일이 왔는데 답장을 안 했어요. 3일 뒤 그 친구로부터 메일이 하나 더 왔어요. 서류전형에서만 70곳 탈락했는데 여기서도 외면당하니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요. 깜짝 놀랐죠. 그때부터 모두에게 답장해주자는 원칙을 만들었습니다.”

2014년 1월, 그는 ‘좀 놀아본 언니’라는 필명으로 온라인 상담을 시작했다. 연애, 취업 문제는 물론, 저소득층·성소수자·성폭력 피해자 등으로부터 다양한 고민이 쏟아졌다. “4개월 동안 17번, 문제가 생길 때마다 메일을 보내는 친구도 있었어요.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힘을 얻고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오히려 수동적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염려됐어요. 여러 사람이 다양한 의견을 더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언니들’로 상담팀을 꾸렸다. 대기업 퇴사를 반복해온 강슬기(옆집언니)씨, 패션 브랜드 인사팀장에서 사랑 찾아 한국에 온 호주인 클로이(클로이언니), 클로이의 남편인 최상용(용이오빠)씨, 연애콘텐츠로 유명한 디자이너 손정은(찔레언니)씨와 ‘오늘 눈물 나게 좋은 순간’ 저자인 뮤직 큐레이터 김지원(젤리언니)씨가 참여했다. 상담을 전공한 박사 송지은(미닝언니)씨도 합류하며 전문성도 높였다. 스태프 3명을 포함해 총 10명의 팀원 중 7명은 과거 장 대표로부터 고민 상담을 받고 희망을 되찾았던 이들이다.

이들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하면서, 오프라인 상담도 시작했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참가자는 10명 이하로 제한한다. 지금까지 이들과 상담을 나눈 청년만 2만6000명. 장 대표는 인기 비결을 “심리 상담이 아니라, 고민 상담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이은 취업 실패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된 취업 준비생 A씨가 있었어요. A씨에게 ‘100일 동안 실천할 수 있는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낙서를 좋아한다기에 ‘자기 전에 휴대폰 그림판에 선 긋기’를 해보기로 했죠. 일주일마다 상황을 공유했어요. 30일이 지나자 선은 그림이 되고, 100일째에는 풍경화가 되었죠. 사소하지만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면서, 삶에 불씨가 켜진 것 같다고 하더군요. 고민은 일상의 한 부분이에요. 평범한 이들이 고민을 나누는 과정에서 생각의 전환을 얻게되죠. 그리고 다시 일어날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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