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는 복잡한 이슈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다양한 공동체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려움에 맞서고 이겨낼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난 18일(현지 시각) 미국 장애인 인권운동의 대모 주디스 휴먼(75)이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대학교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인문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휴먼은 이날 오후 코로나로 늦은 졸업식을 치르게 된 2020·2021년 졸업생 앞에서 연설했다. 오전에는 미국 팝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2022년 졸업생 앞에서 연단에 섰다.
휴먼은 생후 18개월 소아마비를 앓았다. 손과 팔만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된 그는 이후로 항상 휠체어를 탔다. 다섯 살에 초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하면서 장애인 권리 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70년 장애를 이유로 교사 면허 발급을 허가하지 않은 뉴욕시 교육위원회에 소송을 제기해 끝내 교사 면허를 취득했다. 1977년에는 미국 최초의 장애인 인권법 ‘재활법 504호’ 시행을 이끌었다.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공공영역에서의 장애인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시행 규정에 서명하지 않는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에게 항의하기 위해 그는 100명이 넘는 장애인 동료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24일 동안 점거했고, 끝내 서명을 받아냈다. 1980년 세계장애인기구를 설립했으며, 1990년에는 ‘미국장애인법’이 제정을 위해 투쟁의 최전선에 섰다. 최근에는 그동안의 활동과 인생을 기록한 자서전 ‘나는, 휴먼’(Being Heumann)을 펴냈다.
졸업식 연설에서 그는 “살면서 많은 혼란을 겪어왔지만, (코로나와 함께한) 지난 2년 동안 그 어떤 혼란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며 “마치 누군가 급브레이크를 밟은 듯 며칠 만에 온 세상이 멈췄고, 모든 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장애인에게 변화의 영향은 더 컸다. 병원에는 수어통역사가 없어 청각장애인이 스스로 처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고 치료와 관련한 결정을 내리는 데도 참여할 수 없었다. 장애인이 시설 밖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도우미 서비스도 끊겼다. 장기보호시설에서는 직원과 장애인 20만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미국 팬데믹 전체 사망자의 23%가 넘는다. 휴먼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다”며 “장애인 생명은 치료할 가치가 적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절망에 머무르지 않았다. 휴먼은 “장애인 공동체는 사람들이 ‘해결책이 없다’고 말하는 것에도, 우리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일에도 익숙하다”며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득이 되고, 모두를 포용하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다른 장애인과 장애인의 편에 선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장애인들이 열심히 싸워 얻어낸 시민권법이 의료기관과 직장, 대중교통, 학교 등 모든 곳에서 지켜지도록 요구했다.
휴먼은 “사회가 빠르게 화상통화 기술과 유연한 근무 방식을 찾아내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며 “이런 것들이 ‘뉴 노멀’의 일부라는 것을 세상이 깨닫기 한참 전부터 장애인들은 이를 개발하고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고 했다.
휴먼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발언을 인용하며 인류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공동체가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우리는 상호관계의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수 없고, 운명이라는 하나의 옷으로 묶여 있다. 한 사람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면 모든 사람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면서 “(지난 몇 년의 교훈을 통해) 좋든 싫든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이 겪는 일이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변화 대응, 생물 다양성 보존부터 민주주의·재생산권리 수호, 날마다 마주하는 일상의 어려움 같은 복잡한 이슈를 해결하려면 다양한 공동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며 “운명이라는 하나의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분이 맡은 역할이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라”고 당부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