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경기도의회 성평등 기본조례, 7개월 만에 재개정 수순…”취지 무색해졌다”

‘성평등 기본조례’ 재개정 반대 운동을 해온 시민단체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한 경기도만들기 도민행동’ 회원들은 17일 경기 수원 경기도의회 앞에서 ‘성평등 기본조례 개악 반대 집회’를 열었다.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한 경기도만들기 도민행동

보수 기독교 단체의 극심한 반발을 샀던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성평등 조례)가 결국 재개정 수순을 밟게 됐다. 논란이 됐던 ‘성평등’ 문구 수정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민간 기업·단체가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면 도가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등 핵심 내용이 삭제되면서 성평등 조례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은 17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지난해 7월 개정된 성평등 조례를 일부 재개정하기로 합의했다. 성평등 조례 재개정안은 해당 상임위원회를 거쳐 오는 26일 본회의에서 심의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133명으로 경기도의회 전체 의원(141명)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의원총회에서 결정된 내용이 본회의에서도 그대로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성평등 조례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는 ‘성평등’의 정의다. 성평등을 ‘성별에 따른 차별·편견·비하·폭력 없이 누구나 인권을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두 번째는 민간의 성평등 실현 노력 촉구다. 현행 조례는 민간 사업주·경영담당자 등을 ‘사용자’로 특정하고 성평등 확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사용자가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할 경우 경기도에서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사용자 관련 규정을 모두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그간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보수 기독교 단체는 “사용자의 범위에 종교단체가 포함될 수 있다”며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용자 조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해왔다. 경기도의회는 앞서 사용자의 범위에서 종교단체와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법인 등을 제외하는 단서 조항을 넣는 방향을 논의했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종교단체만 제외하는 조항을 두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반발하자 사용자 관련 조항 자체를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성평등 정의에 관한 보수 기독교 단체의 문구 수정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등은 “성평등이라는 문구가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등을 조장할 수 있다”며 조항 자체를 삭제하거나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고치라고 요구해 왔다.

박옥분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위원장은 “일부 기독교 단체의 반발이 너무 극심했기 때문에 일부 타협할 필요가 있었다”고 재개정 추진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민간 부분에서 성평등을 확산할 수 있는 사용자 조항이 빠지게 된 것은 아쉽다”면서도 “성평등 문구를 전혀 수정하지 않는 등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성평등 조례의 근본적인 가치는 지켰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의당 소속 이혜원 경기도의회 의원은 “선도적인 조례를 만들어 박수받은 경기도의회가 고작 7개월만에 스스로 이를 다시 뒤짚었다”며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에서도 성평등 조례 개정 추진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9월 발족 이후 ‘성평등 조례 개악 반대’ 운동을 해온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한 경기도 만들기 도민행동’은 “경기도의회가 성평등 기본조례가 갖는 인권과 평등에 대한 정책적 상징성을 지켜내길 바랐다”며 “일부 혐오, 선동 세력의 주장을 여론으로 인정한 결정이자 (도의원들이) 총선을 앞두고 지역 조례를 표 계산에 포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성학 연구자인 권김현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는 “사용자의 성평등 확산 의무 규정을 제외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을 진작할 의무가 있는 종교계가 성평등 조례에 대해 조직적으로 반대한 것은 민주주의의 가치에 반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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