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키워드 브리핑] 스쾃

[키워드 브리핑] ‘스쾃’
“국유지를 시민의 품으로” 무단점거 행위로 적극적 주거권 운동

지하철 5,6호선 경의선 공덕역 인근 공터. 철도시설공단이 이랜드월드와 손잡고 상업지구로 개발하기로 한 이곳에 2012년부터 시민들이 들어와 “시민들 모두가 활용할 수 있는 공익 목적 공간으로 쓰게 해 달라”며 점거 활동을 벌이고 있다.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 블로그 캡쳐

서울 지하철 5·6호선 공덕역 인근 공터의 개발을 둘러싸고 시민과 철도시설공단이 대립하고 있다.

5470㎡ 규모의 이 땅은 철도시설공단 소유의 국유지로, 지난 7년간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돼 왔다. 경의선이 지하로 들어가면서 생겨난 이 공간을 2012년 공단이 이랜드월드와 함께 상업지구로 개발하기로 했는데, 사업이 지연되면서 공터로 방치되자 시민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들은 이곳을 ‘경의선 공유지’라 부르며 벼룩시장이나 축제를 열기도 하고 철거민을 위한 임시 거주지를 꾸리기도 하는 등 자유롭게 활용해 왔다. 2013년에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이라는 단체가 조직됐다. 이들은 마포구청에 ‘경의선 공유지를 시민의 공간으로 남겨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기 시작했고, 올해 개발이 재개될 조짐이 보이자 공터를 점거한 채 집회와 규탄 기자회견을 열며 반대에 나서고 있다.

국유지를 허락 없이 점거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불법행위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스쾃(Squat)’이라 불리는 오래된 주거권 운동 방식의 하나다. 스쾃은 남의 땅이나 건물에서 불법 거주한다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로, 시민들이 도시 공간을 무단 점유한 뒤 공익적으로 활용하는 운동을 가리킨다. 19세기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 강제 철거에 내몰린 도시 빈민들이 부자들이 갖고 있던 빈집에 허가 없이 들어가 살며 정부에 주거 문제 해결을 촉구한 데서 유래했다. 지난 2011년 “극심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장하는 시민 수천 명이 미국 뉴욕 도심 곳곳을 점거한 ‘월가 점령 시위’도 스쾃의 일종이다.

2012년부터 시민들은 이 공간을 점거하고 장터, 축제, 철거민 거주지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 블로그 캡쳐

전문가들은 스쾃을 사익 추구가 목적인 단순 불법행위와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승원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선임연구원은 “스쾃은 주거 불평등, 과잉 개발 등과 같은 도시 문제를 알리고 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한 상징적인 활동”이라며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시민운동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시민행동 측은 “경의선 공유지 개발 과정에 시민사회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게 해달라고 마포구청에 요구했지만 아무런 답을 받지 못했다”면서 “마포구가 대화에 나서면 점거를 그만둘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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