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발전소 ‘후즈굿’
‘사회적 가치’가 화두다. 올해 유럽연합(EU) 내 대기업(종업원 500명 이상)은 사회적 가치를 담은 ‘비재무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2014년 4월, EU 의회가 대기업의 환경·인권·반부패 등에 관한 ‘비재무 정보 공개’를 의무화한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SK도 올해 초 16곳 계열사에 사회적 가치 전담기구를 신설하고, 경영 지표에 ‘사회적 가치’를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손에 잡히지 않는 사회적 가치,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국내 스타트업인 ‘지속가능발전소’의 ‘후즈굿(Who’s good)’ 서비스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관련된 기업의 비재무 정보를 인공지능(AI) 기반으로 분석해 리포트를 제공한다. 지속가능발전소는 2016년 11월부터 네이버 증권 모바일 서비스에서 매출액 상위 300대 기업의 비재무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를 제공한 지 1년 남짓, 비재무 정보 서비스 누적 방문자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초부터는 한화투자증권의 간편 투자 앱 ‘STEPS’에서도 비재무 기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기본적인 비재무 기업 정보는 공시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지배구조(G) 분야에서는 사외이사 비율, 최대 주주 지분율, 사내 등기임원 평균 보수 등의 지표를 업종 평균과 비교해서 볼 수 있다. 사회(S) 영역에서는 직원 평균 연봉, 비정규직 고용률, 매출액 대비 기부금 등의 지표를, 환경(E) 분야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 에너지 사용량, 미세 먼지 배출량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와 같은 정보는 포털이나 증권사 앱을 통해서 누구나 무료로 확인할 수 있다.
‘후즈굿(www.whosgood.org)’ 플랫폼에선 ESG 정보에 평판(R·Reputation) 정보를 더했다. 인공지능이 기업의 수년간의 뉴스 데이터를 분석해 리스크를 알려주는 것이 핵심이다. 해당 정보는 해외 기관투자가들 등 고급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유료로 판매한다. 또한 미국 금융정보 분석 기업 팩트셋(Factset) 플랫폼을 통해 ‘후즈굿’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리포트 형식으로 다운받아볼 수도 있다. 윤덕찬 지속가능발전소 대표는 “로봇이 리스크 분석 방법론을 학습하고, 이슈의 심각성·빈번도·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계산해 정보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만큼, 11명의 직원들 중 5명이 데이터 과학자 등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지역 언론사 기사도 중요한 정보입니다. 기업의 부정적인 이슈가 단순히 메인 언론사에서 많이 다뤄졌다고 해서 리스크가 높다고 보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역에 위치한 B사업장에서 화학 사고가 나서 사람이 다쳤고, 3개월 후에 비슷한 사고가 났다면 이 회사는 ‘재앙’ 수준의 리스크를 가진 거죠. 동일한 이슈가 짧은 시간 내 반복됐고, 사람까지 다쳤잖아요. 이와 관련해서는 지역 언론사가 중점적으로 기사화할 가능성이 높죠. 저희는 사건·사고의 맥락에 따라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윤 대표는 LG환경연구원(現 네오에코즈)에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련 연구 활동을 하며 전문성을 쌓아왔다. 이는 후즈굿 서비스의 정교한 알고리즘의 밑거름이 됐다. 윤 대표는 “정부와 비영리단체(NPO)가 사회문제 해결에 노력을 많이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큰 문제들이 많다”면서 “사회문제 해결에 큰 영향(임팩트)을 줄 수 있는 주체는 기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대표가 CSR과 ESG 평가 등 기업 이슈에 관심을 쏟는 이유다.
“기업의 ESG를 평가하는 컨설팅 회사에 잠시 몸담았던 적이 있어요. 지속가능 경영 전략 수립을 배워보고 싶었거든요. 일을 해보니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내재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ESG 평가 기관으로부터 점수를 잘 따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어요. 대부분의 평가가 기업 설문으로 진행되기 때문이죠. 결국 모범 답안을 잘 써준 것밖에 없는 거예요. 아무리 훌륭한 기관이 평가를 하더라도, 이와 비슷한 방식이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좀 더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했습니다.”
윤 대표는 남양유업 사태를 통해 ‘데이터의 힘’을 발견했다. 여러 언론에서 남양유업의 갑질 이슈를 보도하고, 사람들이 SNS를 통해 확산하면서, 기업 가치 하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는 것. 윤 대표는 “오염되지 않은 데이터가 고객이나 투자자에게 알려진다면 기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사람의 주관이 개입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 분석한다면 정확도는 더 높아진다. 윤 대표가 인공지능 기반의 데이터 비즈니스 기업인 지속가능발전소를 창업한 이유다.
기업가인 윤 대표가 가장 많이 맞서는 상대는 다름 아닌 정부다. 기업의 장애인 고용 비율, 노동조합 등 고용노동부에 정보 공개 청구를 했다가 기각당하기도 했다고. 윤 대표는 “많은 사람이 당연히 알아야 할 정보들을 정부가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 노동조합 가입률이 현저하게 떨어져요. 노동조합은 국제적으로도 근로자 인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부분인데, 정부는 ‘영업 비밀’ 등의 이유로 기업 편을 들어요. 미국에서는 산업재해 데이터도 다 공개합니다. 어떤 회사 사업장에서 누가 다쳤고, 피해가 얼마고, 과태료가 얼마인지 엑셀 파일로도 올려요. 투자자나 소비자들이 당연히 알아야 할 정보이거든요. 좀 더 정확한 비재무 정보를 제공하는 데도 중요한 정보기도 해요. 좋은 기업들이 많아져서, 좋은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