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들의 책이 모여 8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이 됐다. 책을 팔기엔 아깝고, 보관하자니 공간이 부족해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의 ‘니즈’에 주목한 것. 국민도서관 책꽂이는 책 보관 장소와 대여시스템을 제공하는 ‘공유경제’ 플랫폼이다. 정회원은 등급별로 최대 2000권까지 책을 보관할 수 있고, 유료 회원이 아니더라도 택배비만 지불하면 최대 20권의 책을 2개월 동안 빌릴 수 있다.
국민도서관 책꽂이는 공공의 예산이 아닌, 오로지 시민들이 직접 만든 도서관이다. 공공 도서관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택배비만 지불하면 언제든지 읽고 싶은 책을 빌릴 수 있다. 서울시가 올해 13개 자치구에 공공도서관 14곳을 설립하기 위해 지원하기로 한 예산은 129억원. 국민도서관 책꽂이는 ‘공유’ 시스템으로 세금도 아끼고 있는 셈이다. 회원들은 “책을 맡기는 사람들도 공간의 이점이 생겨서 좋고, 책을 빌리는 사람도 저렴한 비용으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은다.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사람은 누구일까. 국민도서관 책꽂이를 운영하는 장웅 (주)보리떡광주리 대표는 1990년대 말, 인터넷 서점을 창업했던 인물. 대학원에서 공부할 당시, 책이 너무 좋은데 책을 살 돈이 없어 인터넷 서점을 만들었단다.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다보니깐, 책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 불편함이 있더라고요. 읽고 싶은 책이 품절되거나, 절판되면 구하기가 어렵거든요. 근데 소비자분들이 원하는 책이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 있더라고요. 이 책이 집 안에 있으면 먼지나 뒤집어 쓰게 되는데, 공유가 되면 효용 가치가 커진다고 생각했어요. 멋지지 않나요?”
2011년, 장웅 대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2000여권의 책으로 국민도서관 책꽂이의 베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택배비만 지불하면 빌려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본 것.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호응도 컸다. 장 대표는 “서울 지역이야 시립도서관이나 구립도서관 등이 잘 마련돼있지만 지역 사람들은 도서관 이용에서도 격차가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책을 공유하기 시작한지 3년. 2014년에는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비즈니스에 나섰다.
국민도서관 책꽂이의 핵심은 ‘키핑(keeping)’ 시스템에 있다. 회원들은 등급에 따라 10권부터 최대 2000권까지 자신의 책을 맡길 수 있다. 잡지, 사전, 수험서, 전공교재, 어린이전집 등을 제외하고는 어떤 책이든 가능하다. 자신의 책을 보관할 장소 이용료를 지불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회비는 1년마다 갱신되는 구조다(1만원, 3만원, 9만원). 장 대표는 “책을 한 번 맡기면 자신의 공간이 깨끗해지기 때문에 재가입률이 90%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고객 충성도가 아주 높은 셈이다.
“회원들은 자신의 책을 누가 대여했는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단, 국도(국민도서관 책꽂이)에서는 프라이버시를 위해 실명이 아닌 별명을 쓰게 하죠. 만약 내 책이 많이 대여됐다면, 적립금으로 보너스도 받을 수 있어요. 좋은 책을 많이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인센티브죠. 이 모델을 시도한지가 1년쯤 되는데, 벌써 30만원을 모은 분도 있어요.”
현재 국민도서관 책꽂이를 이용하는 회원들은 1만2000명 정도. 이중 10%가 ‘키핑’ 시스템을 이용하는 유료 회원이다. 나머지는 책을 빌리는 사람들이다. 책이 훼손될 염려는 없을까. 장 대표는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책 상태를 양호하게 관리하는 것”이라면서 “공유경제의 핵심은 상호 신뢰에 있기 때문에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패널티도 엄격하다. 책이 훼손되거나 분실됐을 때는, 현물로 보상하거나, 현물이 없다면 정가의 5배를 지불해야한다.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국민도서관 책꽂이 서고는 두개 층 공간(20평, 40평)이 빼곡히 책으로 채워져있었다. 일반 도서관에서 총류(000), 철학(100), 사회과학(300) 등으로 분류하는 ‘듀이의 십진 분류법’과는 다르다. 듀이 분류법에 따르면 책은 각자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공간 활용도가 떨어진다. 국민도서관 책꽂이에서는 책이 들어오면 고유번호 바코드를 붙인 다음, 비어있는 서가에 꽂는다. 고정식이 아닌 변동식 서가로 유휴 공간 활용을 높인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사내도서관’ 사업도 시작했다. 대기업은 직원 복지 차원에서 사내 도서관을 제공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비용이나 공간 상의 이유로 엄두를 내기 힘들기 때문. 중소기업이 직원들의 회비와 택배비를 대신 지불하면, 대기업 못지 않은 사내도서관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다. 현재 사내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는 기업들은 10여곳 정도다. 장 대표는 “국도에서는 경제경영서뿐만 아니라 어린이용 동화책들도 있기 때문에 가족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1인 프로젝트로 시작해서, 1인 기업이 됐다가, 지난해 직원도 1명 채용했다. 장 대표는 “회사 규모가 커지면 책을 관리하는 역할을 할 사서들을 고용할 것”이라면서 “큰 기술이나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우리 사회 취약 계층분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국민도서관 책꽂이는 예산 제약도 받지 않고, 그 어떤 검열도 없는 ‘민주적인 도서관’입니다. 제가 책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누가 자기 책을 자기 방이 아닌 곳에 맡기겠느냐’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도서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규모의 책을 모으는데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어요. 근데 4년 반까지는 1달에 1000권씩 보유 장서가 늘어났는데, 최근 1년 새에 한 달에 평균 4000~5000권이 들어와요. 책은 다른 물건보다 애착이 강한 편이거든요. 이제 국도가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 국민도서관 책꽂이 이용 후기
“계속 많아지는 책 때문에 꽉 찬 방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쉥이).”
“내 집은 비우면서 개인 도서관을 두는 느낌입니다(ardshuna).”
“원하는 책을 마음껏 빌릴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습니다(노래하는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