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로컬을 위한 금융

벤처 투자는 ‘로컬’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벤처 투자의 속성부터 알아야 한다. 벤처 투자는 리스크가 커서 은행과 같은 전통 금융에서는 도저히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투자하는 걸 말한다. 왜 리스크가 크다고 할까. 첫째, 리스크를 측정하려면 뭐라도 측정할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신생 회사다 보니 업력도 없고 매출도 없다. 게다가 상당수의 창업자가 사회 경력이 없거나 경력이 있다 하더라도 불과 몇 년에 불과하다. 둘째, 아무도 해보지 않은 사업모델이거나 누가 먼저 시작했더라도 아직 검증이 됐다고 하기엔 이르다. 리스크가 큰 정도가 아니라 측정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벤처투자의 속성을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하고 벤처투자자들이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사람의 됨됨이만 보고 투자하는 건 아니다. 벤처투자자들이 반드시 보는 지표가 있다. 바로 성장성과 수익성이다. 매출 또는 기업가치가 빠르게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야 하고 수익성도 커야 한다. 이 두 지표는 시기에 따라 비중이 다른데 시장이 너그러울 때는, 다시 말해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성장성이 큰 기업을 선호하고 시장이 어려워지면 성장성보다도 수익성에 더 무게를 둔다. 그러나 벤처 투자는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두 가지를 다 충족시키지 못하면 벤처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다. 그럼 이 기준을 로컬에 적용해보자. 로컬을 비수도권에 위치한 스타트업이 아니라 로컬 아이덴티티를 사업화한 스타트업이라고 한다면, 일단 성장성부터 걸린다. 여기서 스타트업은 초기 창업기업의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라이콘을 말한다

“유니콘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됐지만, 라이콘은 대한민국에서 시작해 세계로 가게 하겠다.” 지난 10월 6일 열린 ‘라이콘 육성 파이널 피칭대회’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이영 장관이 한 말이다. 라이콘(LICORN)은 이번 정부가 만들어낸 용어로 라이프스타일(Lifestyle)·로컬(Local)과 유니콘(Unicorn)의 합성어다. 유니콘은 1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라이프스타일과 로컬 영역에서도 큰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을 배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정부의 이 선언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는 큰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이 없었다는 뜻이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말이다. 왜 없었을까. 이 분야 창업은 꾸준히 있어왔는데 말이다. 큰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성장성과 수익성이 담보돼야 한다. 여기서 성장성은 시간과 속도의 함수다. 더 짧은 시간에 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어야 더 큰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자본은 절대적으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움직인다. 쉽게 말하면, 투자금의 총액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짧은 시간에, 상대적으로 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어야 더 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21세기는 IT가 성장을 주도하는 시대다. 소규모의 IT 엘리트들이 노트북 앞에 앉아서 단기간에 앱을 개발하고 단기간에 수십만, 수백만명의 사용자를 모은다. 제품과 서비스를 한 땀 한 땀 만들어내야 하는 라이프스타일·로컬 창업이 그들과 성장을 겨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기업가치를 키우는 것은 난제다.   둘째, 하지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분명한 증거가 있다. 전세계 60개 이상의 국가에서 2만30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스타벅스는 커피를 좋아하던 영어교사 제리 볼드윈,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청년 창업가 육성의 조건

지난해 6월 전국에서 일제히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거의 모든 지역의 후보자들이 ‘청년 창업 지원’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것이다. 왜 그랬을까. 지역경제 활성화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일까. 과거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공약으로 대기업 유치를 약속했다. 지금은 이런 공약이 먹히지 않는다. 수도권 규제 완화로 대기업이 수도권으로 이전하고 임금 인상과 강화된 노동법 때문에 지방에 있던 공장이 폐쇄되거나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를 막을 수 없다. 현실 인식이 부족한 일부 정치인들을 제외하고 이 정도는 이미 학습됐다. 그다음으로는 산업단지 조성 공약이 유행했다. 그러나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진 지방산업단지 중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 역시 이미 학습이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카드가 청년 창업 육성이 됐다. 이 카드는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 스타트업이 창출하는 일자리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의 주체는 이제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아닌 스타트업이 됐다. 문제는 지역 창업을 활성화하거나 스타트업을 지역에 유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은 창업과 취업의 기회를 찾아 지역을 떠나고 있지 않은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지금까지 10억원 이상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중 90%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 수도권의 편리함과 효율성에 익숙해진 창업가들을 어떻게 지역으로 끌어내린다는 말인가. 해법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 변화는 서울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에 최초의 창업 붐이 일었을 때부터 스타트업은 투자사들이 자리 잡은 강남 테헤란로에 몰려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수도권을 향하는 청년, 수도권을 떠나는 청년

지방대 소멸은 청년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중 하나다. 과거에는 지방 명문대로 불리는 학교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역 인구가 줄어서 혹은 실력이 없어서 이 대학들이 소멸 위기를 겪는 게 아니다. 전적으로 학생 수가 줄기 때문이다. 입학생도 줄어들지만, 설령 입학했어도 졸업 전에 떠나는 학생이 많다. 이유는 지방 대학을 나와서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 매슬로우에게 대한민국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몰려가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하면 ‘생존의 욕구’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한 욕구의 발동으로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으며, 결혼해도 출산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존조차 담보할 수 없는데 가족과 후세의 생존까지 생각하는 건 사치다. 대세가 이러함에도 언젠가부터 탈(脫)수도권하는 청년들이 나타났다. 제주의 로컬 콘텐츠를 깊이 있게 담아내는 매거진 ‘제주iiin’을 창간한 고선영 대표는 제주 출신이 아니다. 여행 전문기자로 전 세계를 누비던 그녀는 어느 날 방전(放電)됐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서 도피하듯 제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자신만의 여행 전문 매거진을 만들었다. 방전된 그녀를 제주가 다시 충전(充電)해준 것이다. 이전보다 더 달릴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이다. 현대카드와 라인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다 제주에서 서핑을 테마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베러댄서프’를 만든 김준용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그에게도 어느 날 번아웃이 왔고, 지칠 때마다 재충전을 위해 찾던 제주에서의 서핑을 떠올리며 아예 제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치지 않고서도 제주에 내려온 청년들도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로컬은 취향의 대상이 아니다

‘패러다임(paradigm)’은 패턴, 예시, 표본 등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파라데이그마(παράδειγμα)에서 유래한 말로 ‘한 시대의 보편적인 사고의 틀(frame)’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시대정신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Thomas S. Kuhn)이 1962년 자신의 책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그는 이 책에서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에 의해 혁명적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이후 보통명사화 되면서 상황이나 생각이 혁명적으로 바뀌는 상황을 뜻하는 표현이 됐다. 패러다임 시프트를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예로 천동설과 지동설을 들 수 있다. 지금이야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16세기 이전에 우리가 살았다면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지동설과 마찬가지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패러다임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은 아마도 산업혁명일 것이다. 과학혁명이 산업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적용되면서 구축된 산업혁명 패러다임의 가장 큰 특징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다. 1760년대 기계의 발명으로부터 촉발된 산업혁명은 짧은 시간 안에 인류를 규정해 버렸는데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하려면, 다시 말해 대량생산 기계를 작동하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이는 농촌의 노동력을 빨아들이면서 도시화를 가속했다. 엄마 아빠를 모두 공장에 뺏긴 아이들을 관리(탁아)해야 했기 때문에 공장 시스템과 똑같은 형태의 공교육이 등장했다.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등교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 공부하고, 정해진 시간에 쉬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하교했다. 대량으로 생산해 대량으로 소비하는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