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화)

멘토 필요한 학생들이 멘토링을 한다?

대학생 멘토링의 허와 실

전문성 없는 대학생들
학습·진학 상담 원활하지만
위기 청소년 돕기엔 무리

사회공헌 확대하는 기업들
대학생 멘토링 선택하면서
활동기간 2~6개월로 한정

“먹는 것을 유독 밝히는 아이가 있었어요. 자기 것은 절대 뺏기려 하지 않았죠. 어느 날 그 아이가 과자 한 봉지를 건네는 거예요. 주변에선 ‘쟤가 누구한테 음식 주는 거 처음 봤다’고 난리가 났죠. 제 가르침이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고 생각하니 무척 보람되더라고요.”

대학생 소유민(가명·22)씨는 국내 대기업에서 진행하는 ‘대학생 멘토링’ 초창기 멤버다. 멘토로 뽑힌 대학생이 저소득층 중학생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이다. 수학을 맡았지만 공부 이외의 것도 돌봤다. ‘일진’과 ‘왕따’ 사이의 다리 역할도 하고, 다니던 대학도 구경시켜줬다. “내 시간이 아닌 날 학교를 방문해 보충수업을 해준 적도 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교육 봉사를 이어올 정도로 ‘멘토링’에 애정이 많았던 소씨. 하지만 최근엔 “회의가 느껴진다”고 한다. 멘토링 활동을 ‘꿀알바’로 부르며, 진정성 없이 아이들을 대하는 멘토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소씨는 “참여 대학생들의 태도가 이렇다 보니 주최 측에서도 그들을 ‘언제든 갈아 낄 수 있는’ 부속품처럼 대하고, 멘티 학생들의 열의도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진정한 멘토링은 멘토가 멘티를 정확히 파악하는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장기적인 관계구축과 안정된 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조선일보 DB
진정한 멘토링은 멘토가 멘티를 정확히 파악하는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장기적인 관계구축과 안정된 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조선일보 DB

◇대학생 멘토 체계 구축, 세심함 필요

바야흐로 대학생 멘토링 전성시대다.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멘토링을 택하는 기업들이 많아진 이유다. 삼성(드림클래스), KT(드림스쿨), 현대카드(멘토스쿨), KB(희망공부방), LH(멘토와 꼬마친구), SKT(행복동행 청소년 꿈·진로 멘토링아카데미) 등이 대표적이다. 주로 학습 지원의 역할을 하고, 최근에는 돌봄과 컨설팅까지 멘토링이 있다. 신익태 20대연구소(대학내일 부설) 소장은 “대학생은 멘토링이 가장 필요한 사람인 동시에 멘토로서의 역할도 잘해낼 수 있는 계층”이라며 “초·중·고 수험생에겐 가장 최근에 진학 경험을 한 대학생들의 학습 멘토링과 성적 상담이 가장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멘토링을 구축하기 위해선 상당한 노하우와 관리 인력, 세심한 시스템이 필요한 데 반해 최근 대학생 멘토링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대학생 지종란(21)씨는 H재단에서 주관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해 지난 2개월 동안 인근 지역 아동센터 초등학생 두 명의 학습을 도왔다. 재단으로부터 소정의 장학금도 받았다. 약 한 달간은 서로 서먹한 시간이 흘렀지만 이내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정도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위기가 닥쳤다.

해당 프로그램이 두 달 만에 종료됐기 때문. 지씨는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막 느끼던 찰나여서 이대로 헤어질 수가 없었다”며 “결국 개인적으로라도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돕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학 생활 동안 3~4개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경험했다는 김선예(가명·23)씨는 “3~6개월의 기간으로는 멘티들이 얻을 수 있는 도움에 한계가 있었다”며 “학년이 올라가도 만날 수 있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학 입학 전부터 다수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경험했다는 대학생 정다운(가명·24)씨는 관리·전달 체계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정씨는 “멘티 학생들이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거나 멘토가 어떤 도움을 청하는 상황에서도 그저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멘토)선발부터 중간 조율, 재교육, 관리까지의 시스템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멘토 역량 고려한 매칭 이뤄져야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시스템이 없는 멘토링은 오히려 멘토와 멘티 모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이 위기·비행 청소년을 멘토링하는 경우, 멘토-멘티로서의 관계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박현동 의정부 이동청소년쉼터 소장은 “대학생들의 멘토링은 학습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위기 청소년들은 (학습)기초가 무너져 있어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며 “멘토링 개입은 반드시 대상자의 속성을 이해한 상태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입시 공부만 했던 경험으로 위기 청소년들을 대하게 되면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상처만 받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작년 기준, 전국 소년원생의 90.9%(2173명)가 대학생 멘토링과 연결됐다.

2006년부터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구 안양소년원)의 아이들에게 취업 지원 멘토링을 해주고 있는 노진오(가명·59)씨는 “한번 멘토-멘티 관계를 맺으면 평생을 돌본다는 각오로 아이들을 만난 덕분에 지금은 나를 ‘아빠’라 부르는 아이들만 8명”이라며 “방황과 변덕이 많은 사춘기 아이들일수록 ‘항상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신익태 소장은 “‘멘토’란 말은 10년간 친구의 자식을 키웠던 오디세우스의 친구 이름 ‘멘토’에서 온 것으로 장기적 관계야말로 멘토링의 핵심”이라고 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빅브러더스빅시스터스'(BBBS)는 현재 미국 내 370개 지역과 세계 12개국에서 강력한 연합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실시한 이후 멘티의 무단결석이 52% 줄었고, 폭력 행사 확률이 33% 감소하고, 불법 마약 사용률이 46% 감소하는 등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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