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급변하는 사회의 생존 전략, 변하지 않는 가치에 집중하라

설립 20주년 맞은 다음세대재단 방대욱 대표 인터뷰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을 꼽으라고 한다면 고민 없이 ‘연결’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연결을 만들어 내는 일은 다양한 비영리 단체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난달 31일 만난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는 “신생 비영리스타트업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역동성도 커질 것”이라고 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변화와 도움이 필요한 곳에 비영리가 있었습니다. 과거 민주화 현장에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곁에도 늘 비영리가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비영리에 꽤 많은 빚을 진 셈입니다.”

방대욱(52) 다음세대재단 대표는 ‘뼛속까지 비영리’로 불리는 인물이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삼성복지재단, 아이들과미래재단을 거쳐 2004년 다음세대재단에 합류했다. 비영리 재단에서 실무자가 대표로 선임되는 사례는 드물다. 다음세대재단 20주년을 앞두고 방대욱 대표를 만났다. 서울 종로구의 비영리스타트업 전용 사무공간 ‘동락가(同樂家)’에서 지난달 31일 마주한 그는 “재단 설립 당시 자문을 맡았었는데 이렇게 인연이 오래 이어질 줄 몰랐다”며 웃었다.

“2000년대 초 ‘IT 붐’이 일면서 소위 대박 난 벤처기업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기 시작한 IT 기업들은 사회공헌에 눈을 돌렸습니다. 2001년 초에 지금은 카카오와 합병한 다음커뮤니케이션 관계자들이 재단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며 저를 찾아왔어요. 재단 설립 절차나 법적 요건 등에 대한 조언을 해줬고 그해 9월에 다음세대재단이 설립됐습니다. 3년 정도 지나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전 직장을 그만두게 됐는데 다음세대재단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이 왔어요. 이야기를 좀 들어보니 정말 특별하고 매력적인 조직이라 합류하게 됐습니다(웃음).”

비영리, 의미 있는 일을 재미있게

―뭐가 그렇게 특별하던가요?

“대부분의 재단은 기부자의 뜻을 무척 중요하게 여깁니다. 기부자 뜻을 존중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건데, 어느 정도 선까지 지켜야 하는지가 좀 애매하죠. 예를 들어 대개의 비영리사업이 기부자의 뜻 51%, 실무자의 판단 49%로 굴러간다면, 다음세대재단은 설립 당시부터 기부자들이 이사회와 사무국에 100% 전권을 줬어요. 비영리 전문가들이 알아서 판단하고 사업을 해달라는 거였어요. 20년이 지난 지금도 찾아보기 어려운 비영리로서는 무척 이상적인 구조였죠.”

―기부자들이 기부를 하면서도 간섭을 하거나 조건을 달지 않았다?

“저희 재단은 임직원과 주주들의 기부로 설립된 독립 재단입니다. 출범 이후 3년은 법인 기부도 하지 않았어요.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몸집을 불리면서 2004년부터 카카오와 합병 전까지는 연 10억원 이상을 기부했는데, 그때도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았어요. 좋은 일을 하려고 만든 재단이지 기업에 도움 되려고 만든 게 아니라는 그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모든 기부자가 그렇진 않죠?

“가끔 유혹이 찾아올 때가 있어요. 이를테면 어떤 기업에서 5000만원 정도를 기부할 거라면서, 우리 재단에서 하던 일이 아닌 사업을 해달라고 요구할 때가 있어요. 기부자가 꼭 그 사업을 해야 한다고 고집하면 우리는 하지 않는다고 답을 합니다.”

―돈을 많이 받아서 규모를 키우는 것도 방법일 것 같은데요.

“재단 한 곳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사회 전체로 보면 정말 한 줌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업을 마구 늘리다 보면 백화점식으로 운영하게 되는데 결코 좋은 방향이 아니라고 봅니다. 기업 기부금 5000만원을 받으면 6개월 정도 인턴이나 촉탁직을 뽑아서 사업을 꾸려나갈 수 있겠죠. 그런데 비영리단체가 규모를 키우려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게 옳을까요? 구성원들은 의미 있는 일을 재미있게 하고 싶어합니다. 성장을 목표로 삼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요. 사업이나 조직의 크기를 키우기보다 의미를 더 키우는 게 맞아요.”

비영리, 성장이 아닌 성숙을 향해

―다음세대재단은 신규 사업보다 장수 사업이 많은 편이죠.

“비영리사업을 유행에 맞춰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하면 오래갈 수 없어요. 재단이 설립 초기부터 시작한 청소년 미디어교육 프로그램 ‘유스보이스’는 20년간 지속하다 지난해 9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스핀오프(spin-off·독립법인화)했습니다. 그림동화를 활용한 다문화 교육 사업 ‘올리볼리 그림동화’도 10년이 넘었고, 비영리 업계에 기술의 변화를 전달하는 ‘체인지온 콘퍼런스’ 같은 사업도 벌써 14년째 하고 있습니다.”

―한 사업을 오래하다 보면 관성화되진 않을까요.

“그럴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신규 사업보다 기존 사업을 유지하는 게 더 어렵습니다. 신사업은 우선 새롭다는 측면에서 관심과 기대를 받게 되는 장점이 있어요. 평가는 그다음이죠. 그런데 기존 사업은 그간의 성과에 맞춰 변화를 줘야 하기 때문에 고민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매번 같은 방식으로 기획해서는 사업을 이어갈 수가 없죠. 비영리는 성장보다 성숙이 필요합니다.”

―지난 20년간 비영리 업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텐데요.

“김대중 정권의 출범은 비영리 업계에 엄청난 의미가 있어요. 당시 비영리는 정권과 맞서는 ‘애드보커시 그룹’과 복지 현장을 누비는 ‘서비스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그러다 DJ 정부가 들어서면서 애드보커시 그룹 인사들이 제도권으로 흡수되면서, 비영리 활동도 정부나 지자체 사업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정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안정성을 갖추게 됐지만, 반대로 비영리의 운동성은 매우 약화하는 계기가 됐죠.”

방대욱 대표는 “사회문제가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만큼 비영리 영역에도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등장하고, 이를 지원하는 환경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과거에 ‘공부방’으로 불렸던 지역아동센터가 대표적이에요. 공부방은 빈민활동가들이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지역 운동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입니다. 그러다 법적 근거가 생기면서 운영의 자율성이 크게 위축된 게 사실이에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지만 막상 꼬리표 붙은 지원이 이뤄지면 역동성은 줄어들어요. 제도화가 가진 딜레마죠.”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겠죠.

“문제는 가이드라인이 주어진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아이들이 교육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기 위해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지원하는 건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하는 일이 맞아요. 하지만 학생들에게 역사의식을 고취한다거나 안전 교육 같은 개별적인 프로그램은 민간의 자율성에 맡기는 게 훨씬 더 유용해요. 지금처럼 지역아동센터에서 해야 할 필수 교육을 정해놓으면 다른 활동을 하기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자율성 확보가 안 되는 이유는?

“비영리 활동을 바라보는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영리와 관련된 법 제도는 주로 감시와 규제, 처벌 위주로 마련돼 있어요. 비영리 활성화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활성화하는 제도는 거의 없어요. 언젠가 비영리 활동가에게 필요한 정부 정책을 묻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냥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씁쓸했습니다. 정말 지원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비영리 관련 제도들이 규제 요소가 많다 보니 차라리 스스로 하는 게 낫겠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거죠.”

비영리, 획일성 아닌 다양성을 향해

―비영리 업계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존재 이유에 대한 성찰’이라고 생각해요. 급변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고의 전략 중 하나는 변하지 않는 가치에 관심을 가지는 겁니다. 비영리단체는 스스로 왜 존재하는지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해요. 그게 바로 조직의 미션이죠. 이번에 재단 20주년을 맞아 가장 먼저 한 게 직원들과 ‘왜 우리는 존재하는지’를 묻고 미션을 새롭게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결론이 어떻게 나왔나요.

“새롭게 만들어진 재단의 미션은 ‘비영리 생태계의 ( ) 다음을 만듭니다’로 정했습니다. 괄호 안에 비워진 부분은 구성원들이 각자 정하는 거죠. 이를테면 ‘비영리 생태계의 (건강한) 다음을 만듭니다’라는 식으로요.”

방대욱 대표는 “최근 몇 년 새 사회 혁신이 뜨면서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들도 많이 등장했다”면서 “그들 나름의 역할이 있듯이 비영리가 해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비영리 작동 방식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이슈도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젠더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이죠. 이런 걸 비즈니스 방식으로 풀기란 쉽지 않아요. 생물학자들도 말하듯이 생태계가 건강해지려면 종 다양성이 확보돼야 해요. 비영리에도 새로운 단체들이 마구 생겨나면서 다양성이 확보돼야 미래가 있습니다.”

―최근 재단이 ‘비영리스타트업’ 지원 사업에 몰두하는 것도 ‘종 다양성’ 확보를 위해서인가요.

“맞습니다. 사회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비영리스타트업’을 지원한 지 3년째에 접어들었어요. 정원 활동으로 공동체 회복에 기여하는 ‘마인드풀가드너스’, 비영리단체의 가치를 MZ세대의 관점으로 큐레이팅하는 ‘모엔’ 등 영역도 다양합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비영리스타트업이 뭐야’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보통명사가 돼 가는 것 같아요.”

―신생 비영리가 스스로 살아남기에 척박한 환경이죠.

“지난 20년 기부액 추이는 상당히 가파르게 성장해왔어요. 기부액이 늘어나면 지원 사업도 풍성해지고 할 일도 많아져야 하는데 체감은 잘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죠. 국내 모금액의 70~80%는 일부 대형 기관에 집중됩니다. 비영리 생태계의 다양성은 오히려 퇴보하는 느낌이에요. 과거 자발적 결사 단체의 등장으로 역동성 넘치던 비영리 생태계를 다시 만들고 싶습니다.”

―어떤 미래를 꿈꿉니까.

“예전에는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았어요. 비영리 활동을 얕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그런데 어느 날 이 말을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성과를 내도 ‘좋은 일 한다’는 소리를 듣진 못하잖아요. ‘좋은 일’에 좀 더 많은 사람이 투입될 수 있게 우리 사회가 응원해주면 좋겠어요. 비영리의 자리가 넓어지고, 경쟁보다는 공존이, 성장보다는 성숙이,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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