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고교자유학년제 모델 ‘오디세이학교’를 가다
자유로운 도전과 탐색,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학교가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고교자유학년제’ 모델 오디세이학교(교장 조중기) 이야기다. 고교자유학년제는 ‘갭이어(Gap year·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봉사, 여행, 직업체험 등으로 진로를 탐색하는 것)’모델의 일종으로, 고등학생이 1년간 민간 대안학교의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교육과정 속에서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제도다. 대안학교는 자체 노하우를 활용해 학생을 가르치고, 교육청은 재정 및 학력인정 등 행정을 지원하는 민관협력모델이다. 지난 2014년 교육청 시범운영으로 개교한 오디세이학교는 지난 3월 각종학교(정규학교와 유사한 학교로 인정하는 제도) 등록을 통해 정식학교로 전환했다. 지난 8월 서울 종로구 오디세이학교 본부에서 정병오 교무부장을 만나 오디세이학교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디세이학교는 덴마크의 자유학교인 ‘에프터스콜레(Efterskole·중학교 졸업 후 1년간 인생을 설계하는 덴마크의 학교)’를 본떴다. 학교의 설립 준비부터 함께한 정병오 교무부장이 지난 2011년 덴마크에서 직접 에프터스콜레를 체험하고 돌아와 벤치마킹했다. 공교육 현장에서 25년 이상 근무했던 정 교무부장은 “한국 교육의 길이 안 보여 공교육 천국인 덴마크를 찾았는데 에프터스콜레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며 “이 모델만큼은 국내에 바로 도입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후 2014년 서울시교육청 내부에 ‘한국형 에프터스콜레’를 만들기 위한 오디세이 설립TF팀이 만들어졌고 같은 해 학교가 문을 열었다. 그는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틀을 넘어 새로운 교육모델을 만들기 위해 민관이 마음을 열고 보조를 맞춘 결과”라고 말했다.
“에프터스콜레는 여유를 주는 학교인데, 수동적으로 살아온 우리 아이들은 여유를 줘도 그냥 게임만 해요. 아이들이 기존 교육의 틀을 깰 수 있도록 계속 질문을 던지고, 서로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혜를 모을 수 있게 해줍니다.”
오디세이학교의 특징은 학교 안팎을 넘나드는 다양한 커리큘럼이다. 국어와 영어, 수학 등의 기본 교과를 배우면서도 글쓰기, 자치활동, 여행, 멘토특강 등 공통과정과 각자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프로젝트, 인턴십, 시민참여 등을 들을 수 있다. 교과는 매 학기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맞게 새로 생기고 없어지기도 한다. 정병오 교무부장은 “1년의 제한된 시간 동안에 수동성을 깨고 능동성을 키워주어야 다시 입시교육 속에 돌아가더라도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며 “직업 선택을 강요하진 않지만, 학생들 대부분이 (오디세이학교에 와서) 자신을 깨닫고 삶의 방향을 잡아 떠난다”고 말했다.
지금껏 학교를 수료한 학생들은 총 173명. 올해는 공간민들레(성북구), 하자센터(영등포구), 꿈틀학교(종로구), 서울혁신파크(은평구) 등 서울 시내 4곳에 분산된 캠퍼스에 총 90명(캠퍼스당 20~30명 남짓)의 신입생이 입학했다. 학교를 찾는 학생들의 70~80%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다.
오디세이학교를 수료한 정다윤(19)씨는 ‘합창’ 수업에서 선생님이 성악을 배울 것을 추천한 것을 계기로, 성악을 전공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정씨는 “오디세이는 내게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고, 좀 더 관심 있고 잘할 수 있는 것을 공부해봐도 괜찮다는 용기를 심어줬다”면서 “공교육 안에서 경험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수업을 통해 좀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서울의 모 대학교 성악과에 진학해 오페라 가수의 꿈을 향해 정진하고 있다.
또 다른 수료생 윤모(20)씨는 오디세이학교의 목공 수업을 계기로 아예 선생님과 함께 전라도로 귀농해 목공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일반고에서는 공부나 성적 외에 도전이나 경험을 통한 성취감을 느낄 기회가 없었다”며 “오디세이에서 목공을 시작할 용기를 얻었고, 서로 생각을 이해해주고, 잘못된 행동은 납득할 수 있게 대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많이 노력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윤씨는 “목공수업에서 필립 선생님을 만나 함께한 것이 삶에 큰 영향을 줬다”며 “앞으로 목공을 통해 고민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배움과 경험을 나누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영국 유명 배우 엠마 왓슨,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딸 말리아 오바마 등의 참여로 최근 ‘갭이어’에 대한 인식이 많아졌지만, 오디세이학교에 대해서 긍정적인 여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병오 교무부장은 “아이들의 성적이 떨어질까 불안해하는 학부모도 있고 초반엔 ‘애들 데리고 실험하느냐’는 부정적인 언론 기사도 많이 났다”며 “공교육 틀 안에서 안전하지만 새로운 교육을 경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입시교육에 매몰되기를 거부하는 학생과 학부모에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디세이학교는 아이들을 수료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아이의 ‘작은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과업”이라고 말했다.
정병오 부장은 “오디세이학교를 ‘일반학교’로 확산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오디세이와 똑같은 형식을 따를 필요는 없지만, 오디세이학교의 다양한 변형 모델이 국내에 많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오디세이학교가 당장은 큰 변화를 만들어내긴 어렵겠지만, 작은 균열을 만들어낼 순 있다고 봅니다. 그런 균열들이 언젠가 큰 틀도 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준영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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