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금)

마당극 소품 만들고 동네 배경 연극 한편… “우리는 예술 하며 놀죠”

문화예술 통합교육 ‘I-Dream’
kt꿈품센터 지사 활용 소외계층 대상 예술교육
재능 발휘 기회 주고 파트너십도 함께 키워
친구와 공연준비하며 자신감·적극성도 ‘쑥쑥’

미상_사진_I-Dream_분장_2012“두두두두두”

지난 7월 24일, 제주 한림꿈품센터가 북소리로 들썩거렸다. 파란색 원통 모양의 북은 아이들 가슴에 닿을 만했다. 12명의 아이가 양손에 채를 쥐고 북을 두드렸다. “강약을 줘야 해. 그냥 세게 치면 시끄러운 소리로만 들려. 첫 박을 강하게. 다음 박은 약하게” 이성룡(35) 선생님이 시범을 보였다. 아이들은 무릎을 굽혔다 폈다 들썩들썩 거리며 곧잘 따라 했다. 강의실은 어느새 흥겨움으로 가득 찼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I-Dream’의 수업 모습이다. 사업은 ‘kt꿈품센터’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kt꿈품센터는 전국 지역아동센터의 다양한 교육 활동을 위해 kt지사가 공간을 기부한 곳이다. 공간은 제공됐지만, 막상 아이들에게 제공할 좋은 교육프로그램이 부족했다. kt가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의 공동 주최로 기획한 ‘I-dream’은 초등학교 4~6학년 소외계층 아동을 대상으로 연극과 영화, 음악, 미술, 무용을 결합한 통합교육이다. 전국 18개 지역의 kt꿈품센터에서 매주 한 차례, 2시간씩 총 70시간의 교육이 이뤄진다.

오는 10월 말 제주 아이들은 ‘영감, 놀아보세’라는 창작마당극을 무대에 올린다. 제주 신화를 바탕으로 한 도깨비 이야기다. 창작마당극을 올리기 위해 아이들은 지난 4월 중순부터 매주 화요일 미술수업을 받았다. 공연의상과 소품을 직접 만든 것이다. “어느 수업이 가장 재미있었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도깨비 가면 만들기요!”라고 답했다. 극에서 비중이 큰 도깨비4를 맡은 강현호(11·신창초5)군에게 배역을 맡은 소감을 묻자, 우물쭈물 대답을 피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현호군은 까만 도복에 도깨비 가면과 밀짚모자를 쓴 채 나타났다. 현호군의 몸짓에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제주 한림꿈품센터 12명의 아이들은 미술, 영화, 국악, 연극 수업을 바탕으로 오는 10월말‘영감, 놀아보세’창작마당극을 무대에 올린다.
제주 한림꿈품센터 12명의 아이들은 미술, 영화, 국악, 연극 수업을 바탕으로 오는 10월말‘영감, 놀아보세’창작마당극을 무대에 올린다.

미술수업을 끝낸 후 아이들은 2개월에 걸쳐 영화수업을 받았다. 아이들은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를 하고, 배경이 되는 제주 지역을 직접 사진으로 찍었다. “사실 좀 떨려요. 잘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되고요.” 영화에서 감독을 맡은 황수진(11·한림초5)양이 수줍어하며 말했다. 아이들이 촬영한 영화 편집은 양은주(31) 선생님이 맡는다. 양 선생님은 “12명 아이 모두 감독, 배우, 슬레이트 보조 스태프 등 역할이 있다”며 “산만한 아이들도 역할이 있으면 잘해낸다”고 말했다. 한사랑아동센터 김미정 센터장은 “수업이 있는 화요일을 기다리는 아이도 있다”며 “밥 먹을 때 젓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기도 하고, 연출, 조감독 이런 용어는 들어봤지만 어떤 건지 잘 모르니깐 인터넷으로 직접 찾아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세 번째 수업은 국악이다. 북을 통해 제주의 소리를 표현해보고, 창작극의 음향으로도 사용된다. 청수지역아동센터 백인순 센터장은 “예전 같으면 자기만 좋은 북을 차지하려고 했을 텐데,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북을 옮기더라”며 “취약계층 아이들이다 보니 자신감도 부족하고 소극적이었는데, 이번 공연을 위해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8월부터 이뤄지는 마지막 연극수업을 끝으로, 10월 22일 ‘한라아트홀 소극장’에서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다. 전국 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제주특별자치도 황의식 지부장은 “문화적으로 소외된 시골 아이들이 인터넷 게임에 빠지지 않고, 이런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며 “더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사)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의 박은주 팀장은 “아이들은 문화예술을 교육이 아니라 놀이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말도 제대로 못하던 소극적인 아이가 자신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뀐 사례도 있다”며 “공연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는 10월 말 아이들은 서울·원주·대구·광주·제주 등 5개 권역별로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정유진 기자

제주=김경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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