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악기 배운 지 3년 만에 서울대 입학… 꿈을 찾은 비결

기아대책·GS샵 음악 지원 사업 ‘무지개 상자’

10년째 1만명 아이들 악기·음악 교육 지원
서울대 음대 입학, 강원예고 합격 성과 거둬…

 
“39번 입장하세요.”

트롬본을 손에 쥔 학생의 얼굴이 잔뜩 경직됐다. 두 차례에 걸친 100%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쳐 단 두 명만 신입생으로 선발된다. 주어진 시간은 3분. 수천 번 연습한 멜로디를 떠올리며 간신히 연주를 마쳤다.

“지원자의 90% 이상이 예고 출신이었어요. 재수는 기본이고 다섯 번째 도전하는 경력자도 있더라고요. 내년을 기약하자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있는 거예요. 너무 기뻐서 옆에 있는 친구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어요.”

기아대책은 지난 2005년, GS샵과 손잡고 저소득층 가정 아동에게 클래식 악기와 음악교육을 지원해왔다. 10년간 악기를 배운 아동은 9500명에 달한다. / 기아대책 제공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기아대책은 지난 2005년, GS샵과 손잡고 저소득층 가정 아동에게 클래식 악기와 음악교육을 지원해왔다. 10년간 악기를 배운 아동은 9500명에 달한다. / 기아대책 제공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비전학교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난 이솔아(20)씨는 그날을 떠올리며 웃어보였다. 이씨는 올해 21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대 음대 기악과에 입학했다. 그녀가 트롬본을 제대로 시작한 지 3년 남짓. 예중·예고를 거쳐 최소 10년 넘게 준비하는 경쟁자들 속에서 맺은 기적이다. 지난해엔 서울대 음대 관악 동문회가 주최하는 전국 관악 콩쿠르에서 1등을 거머쥐었다. 비결이 무엇일까. 이씨는 “10년간 나를 지켜보고 응원해준 ‘무지개상자’ 덕분”이라고 귀띔했다.

◇10년간 약 1만명···자신감과 꿈을 찾은 아이들

무지개상자는 기아대책이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 ‘행복한홈스쿨’ 아동들에게 바이올린·플루트·트럼펫 등 클래식 악기 및 음악 교육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05년 저소득층 아동의 문화·정서 지원 필요성을 느낀 기아대책과 GS샵의 협력으로 시작돼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당시 결식아동이 이슈였어요. 막상 아이들을 상담해보니 ‘배고프다’는 말보단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입을 모으더라고요. 아이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클래식 악기를 지원하고, 자신감을 높이는 음악 교육을 기획하기로 결정했죠.”

최민지 기아대책 사회공헌협력팀장이 설명했다. 바이올린·플루트·트롬본 등 시가(市價) 1억원 상당의 악기 700여점이 전국 35개 지역아동센터 곳곳에 전달됐다. 처음 만져보는 악기에 어리둥절하던 것도 잠시, 점점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알코올중독 아버지, 이혼 후 집을 떠난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방황하던 최원석(17)군도 무지개상자를 통해 꿈을 찾았다. 플루트를 잡은 지 1년 만에 무지개상자 우수 학생에 선정되는 등 적성을 발견한 것. 초등학교 때부터 최군을 지켜본 정운숙 횡성행복한홈스쿨 시설장은 “재능을 인정받고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아이가 당당하고 밝아졌다”고 했다. 올해 강원예고 플루트과에 입학한 최군은 “전설적인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James Galway)’가 목표”라며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 비단 최군뿐만 아니다. 2011년 기아대책과 이화여대 연구 결과 무지개상자를 통해 ‘아동의 학교생활에 도움이 됐다’는 답변이 63.2%, ‘자신감이 높아졌다’는 응답이 74.4%로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김기숙 기아대책 아동복지팀장은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던 아동이 멋진 연주를 선보이면서 학급에서 인정받고 교우 관계가 원만해진 사례도 많다”고 덧붙였다.

◇단계별 보완·끈끈한 파트너십··10년 성과의 비결

지난 10년 동안 무지개상자가 이어져 온 비결은 뭘까. 지역아동센터-기아대책-GS샵의 끈끈한 파트너십 덕분이다. “각자가 맡을 역할이 명확했다”고 한다. 지역아동센터는 아이들의 레슨을 맡아줄 지역 내 음악가를 섭외하고, 기아대책은 전문가들과 협업해 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했다. GS샵은 악기 구입비용과 레슨비를 부담했다. 이들은 공식 회의 외에도 메일·문자·카카오톡을 활용해 아이들의 변화를 수시로 공유하고 토론한다.

2011년 창단한 ‘무지개상자 오케스트라’도 이런 논의 속에 탄생한 시도였다. 아이들에게 더 큰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전문적인 교육을 도입키로 한 것. 서울·경기지역의 지역아동센터 4개를 중심으로 32명이 오케스트 단원으로 선발됐다. 기아대책은 부천시립합창단의 조익현 상임 지휘자를 모셨고, GS샵은 송년의 밤 등 공식 행사에 무지개상자 오케스트라를 초청했다. 실력이 소문을 타면서 2014년엔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 수퍼매치 경기 개막식에서 가수 소향과 함께 애국가 협연도 했다. 무지개상자 오케스트라는 매년 음악 캠프나 정기 공연 외에도 정기적으로 지역 노인 시설을 찾아가 나눔 연주회를 진행한다.

무지개상자는 최근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김은진 GS샵 기업문화팀 과장은 “올해부터 전국 단위의 융합예술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아이의 심리·정서적 지원이 강화된다”고 했다. 가천대 교수진 5명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융합예술 교육 연구를 시도한 것. 김영숙 가천대 예술대학 음악학부 교수는 “대부분의 악기 중심의 교육은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많다”면서 “연극, 그림, 캘리그라피 등 일상 속 놀이를 음악과 결합하면 보다 쉽고 다양한 자기표현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서울 성진행복한홈스쿨, 지구촌행복한홈스쿨 2곳에 가천대 강사가 직접 파견돼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전국 지역아동센터 교사를 대상으로 융합예술 교육 방법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세미나도 실시했다.

지난 10년간 무지개상자를 통해 악기를 배운 아동은 9500명에 달한다. 향후 10년, 또 다른 1만명의 아이가 어떤 새로운 꿈을 갖게 될지 기대된다.

※기아대책은 경제적·정신적 빈곤상황에 놓인 국내 아동을 위한 결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후원 계좌 1005-701-564322(하나은행·예금주:기아대책), 문의(02-544-9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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