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7일(금)

국내 최초 공유가치호텔, 호텔카푸치노를 가다

‘엔젤 엘리베이터’ 객실로 이동시 카드키 댈 때마다 500원씩 적립
Water.org에 기부되는 ‘엔젤 메뉴’ 등 먹고 마시는 중에도 ‘공유가치’ 이어져 

손님을 받기 시작한 지 채 100일도 되지 않았는데 ‘기분 좋은 불편함’을 준다는 입소문이 자자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호텔 카푸치노. 호텔을 방문해서 투숙 후 떠날 때까지, 최소 두 개 이상 공유가치를 마주하도록 철저히 설계된, 국내 최초의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CSV) 호텔이라고 한다. 무엇이 다른지 직접 방문해봤다. 편집자


여느 호텔과 달리 로비에 그 흔한 샹들리에 하나 없다. ‘프리사이클(Pre-cycle·버려지는 자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포장 등을 하지 않는 환경운동)’을 실천하는 차원에서다. 대신, 호텔 프런트 벽면에 위치한 라이프 스타일 숍에는 다양한 공유가치 제품이 전시돼있다. 친환경 브랜드 ‘허그플러스’의 뱀부얀 타올(뱀부얀은 대나무에서 추출한 천연 원사로, 생산할 때 오염 물질이 발생하지 않는 생분해성 섬유다),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레코드(RE;CODE)’에서 제작한 애견용품까지 모두 실제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이 공간은 향후 판매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적기업들을 위해 활용될 예정이다.

객실용 엘리베이터 2기 중 왼편에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는 천사 날개가 그려져 있다. 객실로 이동하기 위해 카드키를 댈 때마다 500원이 적립되는 ‘엔젤 엘리베이터’다. 체크아웃을 할 때 카드키에 적립된 최종 금액을 알려주는데, 이 금액 중 원하는 만큼 추가 지불하면 환경단체인 ‘Water.org’에 기부할 수 있다. (지불을 원하지 않으면 숙박 비용만 내면 된다)

먹고 마시는 중에도 공유가치 경험은 계속된다. 수익금의 10~25%가 ‘Water.org’에 기부되는 ‘엔젤 메뉴’가 준비돼있기 때문이다. 1층 카페 엔젤 메뉴는 ‘스페셜 카푸치노’, 17층 레스토랑의 엔젤 메뉴는 립아이 스테이크(점심), 안심 스테이크(저녁), 립아이 비프 샐러드(바 메뉴)다. 이뿐 아니다. 호텔을 떠날 때, 더이상 입지 않는 옷가지는 ‘셰어 유어 클로스(Share Your Clothes)’ 박스에 기부할 수 있다. 수거된 옷가지는 제3세계에 의류를 지원하는 NGO ‘옷캔’에 보내진다.

(위부터) 호텔 카푸치노의 루프탑 테라스. 프런트 뒤에 위치한 라이프 스타일 숍. 객실 내부 모습. / 호텔 카푸치노 제공
(위부터) 호텔 카푸치노의 루프탑 테라스. 프런트 뒤에 위치한 라이프 스타일 숍. 객실 내부 모습. / 호텔 카푸치노 제공

 
객실 서비스에서도 차별점을 보인다. 호텔 카푸치노의 린넨은 이틀에 한 번 가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만약 교체를 원하면 ‘그린 카드(Green Card)’를 올려두면 된다. 보통 호텔과 정반대 콘셉트다.’E&G(Earn&Giveaway)’ 박스는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이 직접 고안한 프로그램이다. E&G 박스에 담긴 여분의 칫솔·면봉 등을 사용하지 않고, 퇴실할 때 박스에 든 보라색 ‘엔젤 쿠폰’을 프런트에 제출하면 소모품의 가치만큼 Water.org에 기부할 수 있다. 쿠폰을 기부하는 대신 1층 카페에서 커피로 교환도 가능하다.

엔젤 엘리베이터와 E&G 박스가 손님의 선택과 행동을 유도하는 ‘직접 기부’ 프로그램이라면, 투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간접 기부’도 있다. 객실 내 목욕용품은 디스펜서(펌프 등으로 필요한 만큼 덜어 쓸 수 있도록 한 용기) 형태로 비치돼있다. 내용물은 모두 독일의 친환경 브랜드 ‘Stop the water while using me(나를 사용하는 동안 물을 쓰지 마세요)!’로 수질오염을 최소화한 제품이다. 이 브랜드는 원재료 생산 농가와 식수 부족 국가를 지원하고 있다.

호텔 카푸치노의 스위트룸인 1607호와 1608호는 각각 ‘프리사이클룸’과 ‘업사이클룸’으로 마련됐다. 최소한의 가구와 디자인으로 꾸민 객실과, 몸에 직접 닿는 가구를 제외한 모든 것을 업사이클링 물품으로 채운 방이다. 인테리어를 맡은 ㈜키데아파트너스의 박근아 대표는 “기획 단계부터 CSV전문가·사업기획팀·브랜딩 담당자 등과 수십 차례 회의를 거쳤다”면서 “공유가치에 대한 사전 이해와 공감대를 충분히 쌓은 뒤, 그 위에 디자이너의 감각을 더했다”고 말했다.

이소정 총지배인은 “호텔 카푸치노는 ‘착한’호텔을 표방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처음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호텔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손님이 느끼는 이질 사이의 적정선을 찾는데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죠. 하지만 저희 호텔이 제공하는 경험은 다른 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다는 게 바로 저희의 경쟁력입니다.”

호텔 카푸치노는 신사업에 CSV를 접목하기 위한 코오롱그룹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다. 1년 동안 공유가치 호텔의 사업성 검토를 마친 코오롱그룹은 외부 전문가를 초청, 2년간 신사업 담당자와 호텔 총지배인 등을 대상으로 무려 10회에 걸쳐 CSV 강의를 진행했다. 오픈 전에는 관리자뿐만 아니라 호텔 전 직원이 외부 전문가로부터 CSV 특강을 들었다. 컨설팅을 담당한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CSV를 기존 사업이 아닌 신사업 기획 단계에서부터 투입하고, 이것을 사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방향으로 설계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자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기부’가 아닌 서비스 생산 과정에서의 파트너십은 아직 과제로 남아있다. 현재 호텔 카푸치노와 협업하고 있는 Water.org, 카라, 옷캔은 모두 호텔에서 모은 기부금 또는 현물을 수령하는 선에서 그치기 때문. 호텔의 공급망(Supply Chain) 단계까지 공유가치를 녹여내는 데는 아직 미진한 모습이다. 이에 이 총지배인은 “추후 일자리 창출, 식음업장 및 공간 운영까지 공유가치 실천을 넓혀갈 계획”이라면서 “카푸치노 셰어드 밸류를 함께할 수 있는 파트너 발굴에 힘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