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장애 통합 어린이집 대구 ‘한사랑’, 인기 1순위라는데…
아동 51명 중 31명 장애, 20명 비장애
최소 2~3년 대기하고 입학 경쟁률 3:1한 달에 한 번 교사·학부모 회의
매년 여름 ‘아빠 캠프’ 열기도학부모 협동조합 만들어 도서관·카페 등
마을의 중증장애인 20명 채용해
지난 1일 오전, 대구시 동구 율하동에 위치한 한사랑어린이집. 교실 안은 온통 하얀 가루로 뒤덮여 있었다. 오감을 활용해 사물을 느껴보는 ‘가루야 가루야’ 수업이 한창이었다. 조심스레 감촉을 살피던 아이들은 이내 온몸이 밀가루 범벅이 되도록 뒹굴기 시작한다. 뇌병변 장애로 걷지 못하는 지혜(9)양도 마찬가지. 장애아용 유모차에서 내려온 지혜는 밀가루 위에 누워 손가락을 움직였다. “내 손가락 보여줄까?” 맞은편에 있던 민준(6)군이 다가와 말을 건네더니, 바닥 위 밀가루에 손도장을 찍어보인다. 키득키득…. 한편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던 윤문주 한사랑어린이집 원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릴 때부터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자라온 만큼, 우리 아이들은 휠체어에 탄 친구를 불편해하지 않아요. 교사들이 절대 장애·비장애의 차이를 설명하지 않아요. 누군가 ‘장애인 친구들은 도움이 필요한 존재’란 인식을 심어주면, 그때부터 아이들은 장애인 친구를 불편해하게 되거든요.”
이곳의 미취학 아동은 총 51명. 그중 31명이 뇌병변·자폐 등 장애 아동이고, 20명은 비장애 아동이다. 한 반에 장애·비장애 아동을 골고루 편성하고, 모든 교육과 활동이 함께 이뤄진다. 학부모들이 기피할 것 같지만 정반대다. 이곳에 아이를 보내려면 최소 2~3년을 대기할 정도로, 대구 율하동의 인기 1순위 어린이집으로 꼽힌다. 김명애 한사랑어린이집 산들반 담당교사는 “입소문을 통해 찾아온 학부모님 대부분 둘째, 셋째 아이까지 보낸다”면서 “장애 아동을 돌보기 위한 치료사·특수교사까지 배치되다 보니 보육교사 수가 일반 어린이집의 두 배 정도 많은 22명인 데다가, 아이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란 인식이 생긴 듯하다”고 설명했다.
시작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수교사·후원자 20명이 모였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주택 지하 공간을 마련했고, 장애 전담 어린이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습기 찬 작은 교실은 24시간 불을 밝혔다. 오전엔 어린이집, 오후엔 방과후 장애청소년학교, 밤엔 성인 뇌병변 장애인을 위한 야학을 운영했다. 윤 원장은 “방과 후 수업이 끝나면 어린이집 차량으로 아이들을 데려다준 뒤, 거동이 불편한 뇌병변 장애인 분들을 모시러 갔다”면서 “야학을 마친 후 다시 집에 데려다드리고 나면 새벽 2시가 훌쩍 넘곤 했다”고 회상했다.
장애·비장애 통합 어린이집으로 운영을 준비한 건 그로부터 10년 후의 일이다. 오랜 시간 이곳을 지켜본 후원자, 장애 아동 부모들, 보육교사들이 취지에 공감해 십시일반 1억원을 모아 땅을 구매하고 2층짜리 주택을 신축한 것. 윤 원장은 어린이집을 세우는 1년 동안 교사들을 국내외로 연수를 보내는 등 장애·비장애 통합 어린이집 모범 사례를 공부했다.
이듬해 처음으로 비장애 아동 2명을 받았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아이들이 너무 생소한 환경이라 느꼈는지 주방에만 가 있고, 좀처럼 어울리질 못하더군요. 어린이집 커리큘럼을 체험 활동 위주의 통합 교육으로 바꾸고, 교사들과 함께 마을로 나갔습니다.”
매년 장애·비장애 아동이 함께하는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하고, 연말엔 어린이집 내부에 다양한 체험 부스를 만들어 마을 주민들을 초대했다. 학부모들은 매주 토요일 직접 만든 밑반찬을 마을 어르신들에게 배달했다. 몇 년 후 비장애 아동 5명이 한사랑어린이집에 입학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경쟁률은 3대1 넘게 치솟았다. 한사랑어린이집엔 15년 넘게 근속해온 교사가 대다수다. 휴일엔 자발적으로 장애 아동을 찾아가 함께 놀아주는 교사까지 있을 정도. 학부모들은 언제든지 어린이집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교사와 학부모 간 회의에선 수업 방법과 내용이 구체화된다. 매년 여름엔 ‘아빠캠프’를 열어, 자녀와 아빠 그리고 교사 간 충분한 소통 기회도 열어준다. 자녀 셋을 이곳에서 키운 이형배 동구행복네트워크 이사는 “딸이 학교, 학원 선생님들한테 장애를 가진 친구에 대해 ‘우리와 다른 게 없고 한 번 더 이야기하면 잘 이해한다’고 설명하더라”면서 “어릴 때부터 서로 다름을 이해하면서 자랄 수 있는 환경 덕분”이라 덧붙였다.
장애 아동을 함께 키워온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마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모들이 협동조합을 조직해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 수 있는 도서관·방과 후 학교·텃밭·카페·생협 매장 등을 직접 설립하고, 이곳에 중증장애로 취업이 어려운 청년들을 채용하고 있는 것. 전액 마을 주민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마을 도서관 ‘아띠’에는 정현식(24·자폐 1급)씨가 업무보조를 하고 있다. 처음엔 도서관에서 소리를 지르는 정씨 모습에 놀라던 주민들도 이젠 함께 책 정리를 할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주민들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카페 ‘사람이야기’ 1호·2호점, 방과 후 학교 ‘둥지’, 유기농 반찬 가게 ‘달콤한 밥상’에도 중증장애 청년 7명이 취직했고, 네 살 때부터 한사랑어린이집에서 자란 최명준(22·지적장애 1급)씨는 지난해부터 한사랑어린이집에서 육아 보조를 맡고 있다.
사회적협동조합인 ‘동구행복네트워크’가 LH에서 위탁받은 마을 텃밭에도 중증장애인 3명이 채용돼, 마을 주민들이 키우는 농작물을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마을이 품은 중증장애인만 총 20여명에 달한다. 지난해엔 주민들이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 건물주택조합 ‘공터’를 조직하고, 4층 건물을 매입해 장애아동을 치료하는 협동조합’마을애’·장애인주간보호센터·발달장애자립지원센터 등을 세우기도 했다. 23년간 뿌려온 씨앗이 마을 안에서 하나 둘 열매를 맺고 있는 것.
“한사랑어린이집을 졸업한 대부분이 장애인 보호 작업 시설에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중증장애를 가진 친구들이에요. 마을 공동체가 생길 때마다 이들의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소규모 장애인 보호 작업 시설 인원이 30명이에요. 우리 마을 중증장애인 청년들의 일자리가 30명을 넘을 땐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을이 품은 장애 청년들의 행복한 모습을요(웃음).”
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