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FW, 장애인 모델 70명 런웨이
장애 유형·체형 고려한 의상 선보여
‘어댑티브 패션’ 5년 내 7조원 규모로 성장
2023 뉴욕패션위크(NYFW) 마지막 날이던 지난 13일(현지 시각). 오후 7시에 시작한 ‘패션 레볼루션(A Fashion Revolution)’ 런웨이에는 타미힐피거, 아디다스, 빅토리아시크릿 등 9개 브랜드 의상이 한 번에 무대에 올랐다. 이들 브랜드가 선보인 건 장애인을 위한 의류인 ‘어댑티브 패션(adaptive fashion)’. 각 모델의 장애 유형과 체형을 고려해 제작한 의상이었다. 휠체어를 탄 척수마비 장애인, 왜소증 장애인, 의족을 찬 장애인 등 70명이 직접 모델로 섰다. 이들은 캐쥬얼 의상부터 운동복, 드레스, 속옷 등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했다.
패션쇼에 어댑티브 패션이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 미국, 유럽 패션위크에서는 비영리단체가 기획한 어댑티브 패션쇼가 종종 열린다. 이번 무대도 비영리재단 런웨이오브드림스(Runway of Dreams)가 주축이 돼 준비했다.
단추 대신 자석
런웨이오브드림스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 마이애미 등에서 ‘패션 레볼루션’ 런웨이를 총 10회 열었다. 패션쇼가 열릴 때마다 다양한 인종, 연령, 장애를 가진 모델이 각자의 스타일을 선보였다. 이 밖에도 패션 전시회와 파티를 개최하고, 매년 차세대 어댑티브 패션 디자이너를 선정해 장학금도 수여한다. 런데이오브드림스 이사이자 선천성 절단장애를 가진 데이브 스티븐스는 “나는 청소년기에 다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입는 옷을 나는 입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며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고 패션쇼에 서는 건 장애인에게 자신감을 키워준다”고 말했다. 또 “패션쇼는 많은 사람에게 어댑티브 패션이 중요한 이유와 이를 현실화할 방법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패션쇼에서는 장애인의 활동성을 고려한 다양한 옷이 등장했다. 의류 업체 코올스(KOHL’S)는 상의 앞단작과 소매, 바지 앞섶에 단추 대신 자석을 달아 장애인 혼자서도 입고 벗기 쉬운 옷을 공개했다. 의족을 찬 사람들을 위해서는 종아리 부분에 지퍼를 달아 활동하기 쉽게 했다. 자포스(Zappos)는 주로 아동복 매장에서 옷을 사야 했던 왜소증 장애인을 위한 옷을 맞춤 제작했다. 왜소증 장애인 미아 아이브스 루블리는 스트라이프 리넨 셔츠와 어두운 주황색 바지를 입고 모델로 섰다. 그는 런웨이오브드림스재단과의 사전 인터뷰에서 “프릴이 달리고 원색인 아동복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오늘 입은 옷은 환상적일 정도로 마음에 든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뉴욕패션위크에서는 ‘오픈스타일랩(Open Style Lab)’이라는 비영리단체가 척수성 근위축증(SMA) 장애인 15명과 패션쇼를 열었다. SMA는 전신 근육이 점차 약화하는 퇴행성 신경 질환으로, 경과에 따라 약화하는 부위가 다르다. 주로 팔과 다리, 어깨, 허벅지 등 몸통과 가까운 근육이 퇴행한다. 오픈스타일랩은 모델 각자의 체형을 고려해 화려한 원색 드레스, 수트를 제작했다.
오픈스타일랩은 MIT 보건대 대학원생들이 설립한 단체다. MIT 공공서비스센터(PSC)의 지원을 받아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여름방학에는 10주간 파슨스디자인스쿨과의 협업도 이뤄진다. 패션 디자이너, 엔지니어, 작업치료사 등 전문가가 신체장애가 있는 고객과 짝을 이뤄 스타일리시하면서도 편안한 의상을 개발한다. 감각 장애가 있는 어린이를 위해 피부를 자극하지 않는 평평한 솔기를 적용한 옷, 비 오는 날 휠체어 사용자 무릎을 효과적으로 덮을 수 있는 우비 등이 제작됐다.
일상복부터 란제리까지
어댑티브 패션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열리는 수영복과 비치웨어 패션위크인 ‘마이애미 스윔위크’에서는 장애인용 수영복이 주목을 받았다. 비영리단체 걸스크로니컬리락(Girls Chronically Rock)이 개발한 ‘어댑티브 수영복’을 입은 모델들이 런웨이를 활보했다. 이 수영복은 착의, 탈의가 쉽도록 어깨 여밈 부분에 자석을 달았다. 허리 안쪽에는 스트랩을 달아 어떤 체형의 고객이 입어도 수영복이 위로 미끄러져 올라가지 않도록 했다.
란제리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도 이번 패션쇼를 계기로 장애인용 제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오는 10월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 40곳에서 제품을 판매한다. 브래지어 뒷면의 후크 대신 자석을 달고, 앞면에는 스트랩으로 둘레 길이를 조절 가능하게 했다. 다양한 하체 체형에 맞춰서 만든 팬티도 선보인다. 리디아 스미스 빅토리아시크릿 최고다양성책임자(CDO)는 “뉴욕패션위크에서 빅토리아시크릿 최초의 어댑티브 컬렉션을 선보이게 돼 영광”이라며 “이는 패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이 패션을 통해 자유롭게 자기표현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포용력 있는 업계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타트뷰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21억 달러(약 2조8000억원) 규모였던 어댑티브 패션 시장은 2028년 56억7000만 달러(약 7조 5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스타트뷰리서치는 전 세계 인구의 약 15%가 장애가 있으며, 어댑티브 패션을 이용할 수 있는 고령 인구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