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2일(일)

“몸뻬부터 레깅스까지”… 여성은 100년 동안 ‘이런 옷’을 입었다

아모레퍼시픽재단이 지원한 연구들

아모레퍼시픽재단은 50년 동안 800편이 넘는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일반적으로 ‘학술논문은 지루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막상 읽어보면 공감을 자아내는 대목도 적지 않다. 그중 흥미로운 연구 세 개를 뽑아 소개한다.

아모레퍼시픽재단이 지원한 연구들

언어로 보는 한·중·미의 美 의식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멋진 외모를 동경한다. 다만 아름다움의 기준이나 이를 추구하는 방식은 사회마다 다르다. 특히 언어에는 미(美)에 대한 사회의 사고 체계가 반영돼 있다. ‘뷰티언어와 여성문화의 전이와 변이(김성제·2011)’ 연구에서는 한국과 미국, 중국의 언어에 녹아 있는 미에 대한 인식을 비교했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노화’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세 나라 모두 노화를 싸워야 할 대상으로 봤다. 인류 보편적 경험인 ‘전쟁’으로 묘사하는 식이다. 얼굴에 팬 주름, 건조한 피부를 ‘적’으로 표현하고, 화장품은 적을 물리치는 ‘아군’에 빗댔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달랐다. 인종이 같은 한국과 중국은 피부를 표현할 때 색채어를 자주 쓴다. ‘흰 피부’는 긍정적 의미로 통용된다. 반면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는 피부를 묘사할 때 색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더 밝은(lighter)’ ‘더 어두운(darker)’ ‘더 창백한(ashier)’ 등 색의 스펙트럼을 나타내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성들이 ‘파워숄더룩’을 입은 이유

패션만큼 유행에 민감한 분야가 있을까. 이런 유행에도 사회문화적 메시지가 있다. ‘근·현대 한국 여성 복식에 나타난 여성 성역할 변화 연구(이지현·2009)’에서는 1910년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 패션에 반영된 ‘여성이 보내는 성평등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에는 남성들이 전쟁터로 나가면서 여성은 ‘가족을 책임지는 강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졌다. 여성들은 한복을 벗어 던졌다. 대신 양장과 헐렁한 ‘몸뻬’가 대중화됐다. 1970년대에는 남녀 공용 ‘유니섹스룩(unisex look)’으로 기존의 여성적 성 역할을 부정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1980년대는 서울 주요 대학에 여성학 강의가 개설되는 등 여성의 권리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시기다. 여성들은 패션을 통해 남성과 동등한 주체임을 강조했다. 어깨를 강조하는 ‘파워숄더룩’이나 체격이 더 커 보이는 ‘빅룩’이 이 시기에 유행했다. 1990년대에는 여성의 대학진학률과 사회진출이 늘면서 여성성에 대한 자신감도 강해졌다. 이에 몸에 달라붙는 레깅스, 속이 비치는 씨스루 등 몸매가 강조되는 패션이 등장했다.

여성 행복의 조건은?

“여자라서 행복해요.” 2001년 한 가전 회사의 냉장고 광고에서 배우 심은하는 이렇게 말했다. 광고는 고급 냉장고를 가지면 여성은 행복해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실제로 멋진 주방 가전을 가지면 여성은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2010년 발표된 ‘여성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세대 간 분석(유경·이주일)’ 연구에서는 20~60대 여성 총 8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분석했다.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은 ‘성취’였다. 모든 연령대에서 동일하게 나타난 결과다. 자신이 일궈온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꾸준히 자기계발을 하면서 자주 성취감을 느낄수록 큰 행복을 느꼈다. 연구진은 “오늘날 여성은 남편, 자녀에게 인정과 사랑받는 것을 중시하던 구시대 여성들과 다르다”며 “자신을 위한 투자와 노력이 충만한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물론 타인과의 관계도 중요했다. 3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 연령대 여성 행복에는 부모·배우자와의 관계, 자녀의 바른 성장도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60세 이상 노년기에는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이 더욱 중요했다. 얕고 넓은 피상적인 관계보다는 가족, 친구들과의 좁고 깊은 관계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봉사 활동을 통한 이타심 향상도 행복과 관련이 있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