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커버리랩 부산
폐관 위기 ‘사이언스홀’
부산 주민 재고 요청에
AI 교육관으로 새 단장
인공지능(AI) 기술이 작곡하고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다. 지난 2016년 3월 전 세계적으로 AI를 대중에게 알린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AlphaGo)’ 등장 이후 불과 몇 년 새 전문가 영역으로만 남았던 AI는 일상으로 들어왔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으스스한 스릴러 영화를 추천해줘’라고 요청하면 AI 기술이 감정 키워드를 파악해 콘텐츠를 추천한다. 폐쇄회로TV(CCTV) 설치 확대로 인한 사생활 보호를 위해 AI가 영상 속 사람의 얼굴을 감지해 자동으로 모자이크 처리하기도 한다. 산업 부문에서는 딥러닝을 통해 제품 불량을 판독하는 검수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정부는 AI 인재 양성을 위해 2017년 중학교에 소프트웨어(SW) 교육을 의무화했고, 2019년에는 초등학교 5~6학년의 코딩 교육을 도입했다. 문제는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의 속도를 교육 현장에서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에 민간에서 체험 교육 프로그램으로 보완하고 있다. 지난해 7월 LG는 부산시교육청과 중학교 자유학년제·소프트웨어교육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10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AI 교육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과학 전시관에서 청소년 AI 교육관으로 탈바꿈
부산시 초읍중학교 1학년 A군이 오른손 주먹을 쥐자 앞에 있던 로봇이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로봇이 막다른 벽에 도달할 무렵 주먹을 펴 ‘브이(V)’ 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와 동시에 로봇은 오른쪽으로 회전했다. A군이 사전에 컴퓨터 프로그램에 학습시킨 손동작 명령에 따라 로봇이 반응하고 이동한 것이다.
부산 지역의 최대 규모 청소년 AI 교육관 ‘LG디스커버리랩 부산’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디스커버리랩은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AI 자율주행, 모션 인식, 챗봇 등 기술과 원리를 청소년들이 이해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LG는 지난 2019년 부산에서 운영하던 과학관 ‘LG사이언스홀 부산’을 21년 만에 문 닫기로 결정했다. 1998년 개관 이후 당시에 보기 어려운 화학관, 전자관 등 첨단 체험시설을 갖춰 부산 시민의 과학 학습장 역할을 맡아온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국립부산과학관과 부산과학체험관 등 최신 시설을 갖춘 국공립 과학관이 늘었고, 민간 과학관으로서는 그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지역사회의 반응은 달랐다. LG사이언스홀을 지켜달라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당시 부산진구청장은 폐관 재고를 요청하는 편지를 LG 측에 보내기도 했다. 부산과학기술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LG사이언스홀은 부산에 꼭 필요한 과학 자산”이라며 “부산서 자란 30대 이하 시민에게는 가슴 한편에 부산의 자랑스러운 과학관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LG는 사이언스홀을 AI 교육관 ‘LG디스커버리랩’으로 새로 단장해 개관하기로 결정했고, 지난해 10월 다시 문을 열었다. 디스커버리랩은 부산 부산진구 연지동에 있는 LG화학 건물 내 1~2층을 활용해 총 430평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네 교실을 운영하며, 개관 이후 7개월간 4000여 청소년이 무상으로 AI 교육을 받았다. LG 측은 올 들어 코로나19 확산세가 무뎌지면서 하반기까지 더 많은 학생이 교육 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2021년 기준 부산 전체 중학교 1학년 학생(2만5193명)의 절반 수준이다. LG 관계자는 “부산 지역에 초등학생을 위한 교육 공간은 많지만, 상대적으로 AI 교육이 부족했던 터라 개관 이후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디스커버리랩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부산 지역을 넘어 영남권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교육관과 100㎞ 이상 떨어져 있는 대구를 포함해 경남 진주, 경북 포항·영천 등에 있는 중·고등학교에서 교육을 신청해온다. 이 밖에 충북 청주의 한국교원대학교, 광주광역시교육연구정보원 등에서도 연수 목적으로 디스커버리랩을 방문하고 있다.
자율주행부터 모션 인식, 챗봇까지… AI 기술을 만나다
교육관에서 체험할 수 있는 AI 기술은 크게 ▲로봇 ▲시각지능 ▲언어지능 ▲디지털 휴먼 ▲데이터지능 등 5분야로 구분된다. 구체적으로 자율주행 기술을 교육하는 ‘SLAM연구소’, 모션 인식 부문을 담당하는 ‘제스처 인식 연구소’, 챗봇 기술을 체험하는 ‘챗봇 연구소’ 등 세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SLAM연구소에서는 자동차, 로봇 청소기 등에 활용되고 있는 자율주행 기술과 원리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 해당 교육프로그램의 이름인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Building)’은 로봇이 외부 도움 없이 부착된 센서를 통해 주변 환경에 대한 정확한 지도를 작성하는 작업으로 자율주행의 핵심 기술이다. SLAM연구소는 수강생들이 SLAM 기술의 데이터 수집, 분석, 적용 등의 전 단계를 이해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수강생들은 컴퓨터와 무선 신호로 실시간 상호작용하는 로봇 청소기가 이동하면서 초음파 센서로 수집한 데이터를 확인하고, 로봇이 이동해야 하는 정확한 경로 값을 분석해서 컴퓨터에 입력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로봇을 작동시켜 장애물과 벽에 부딪히지 않고 구석구석 주행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제스처인식연구소에서는 카메라 또는 센서가 특정 손동작을 인식해서 학습된 정보를 찾아 명령을 수행하는 기술에 대해서 배운다. 스마트폰 기능 중에 사진 촬영 시 별도 조작 없이 지정된 손동작만으로 사진을 찍고, 손의 움직임만으로 화면을 캡처하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제스처인식연구소 수강생들은 전용 카메라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다섯 가지 손동작을 촬영해서 컴퓨터에 이미지로 학습시킬 수 있다. 컴퓨터가 각 이미지를 인식했을 때 로봇의 움직임을 앞, 뒤, 왼쪽, 오른쪽, 정지 등 다섯 가지로 프로그래밍한다. 최종 설정을 완료한 후에는 제스처로 로봇을 조작하고, 준비된 코스에서 주행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챗봇연구소에서는 컴퓨터가 사람의 자연어를 분석·이해·생성하는 AI 기술인 자연언어 처리’를 활용하는 챗봇에 대해 알아보고 직접 제작해볼 수 있다. 챗봇은 사람의 언어를 사용해서 대화하는 로봇으로, 사람들이 궁금한 점에 대해서 답을 해주거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챗봇연구소 수강생들은 나만의 챗봇을 스스로 만들어 보면서 개발과정을 이해하고, 한 가지 의미를 표현하는 다양한 문장을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AI 기술에 대해서 배운다. 수강생들은 챗봇의 이름, 목적, 만든 사람 등에 대한 기본 정보를 우선 작성하고, 챗봇의 시작 메시지와 예상 질문과 답변, 알아듣지 못했을 때의 사과 메시지 등 대화 시나리오를 설계한다. 또 ‘어떤 일을 하나요?’ ‘하는 일이 뭐예요?’ 등과 같이 동일한 의미를 표현하는 다양한 문장을 최대한 많이 학습시켜 챗봇의 대화 의도 이해 능력을 향상시킨다.
LG 관계자는 “청소년들이 새롭게 나오는 AI 기술을 계속해서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각 계열사 연구 조직, LG AI연구원과 협력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면서 “올 하반기에는 서울 여의도의 ‘LG사이언스홀 서울’을 마곡으로 이관해 부산과 같은 청소년 AI 교육관 콘셉트의 ‘LG디스커버리랩 서울’을 개관할 계획”이라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강나윤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nanasi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