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떠나 지방으로 향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통계청이 지난 6월 발표한 ‘귀농어·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어·귀촌 인구는 전년 대비 7.4% 증가한 49만5766명을 기록했다. 귀촌인 가운데 30대 이하는 48%에 육박했다. 정부는 수도권 편중 문제를 해소하고 지방소멸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하는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부터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로컬크리에이터’를 선발해 예비창업가에 최대 1000만원, 기창업가에 3000만원까지 지원한다. 지난해 선발된 로컬크리에이터 280개사는 매출액 535억원, 투자유치 174억원, 신규고용 502명의 성과를 냈다. 최근엔 이주와 정착의 과정에 초점을 둔 체험형, 교육형 프로그램들도 많아지는 추세다.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이 대표적이다. 전국 12곳을 대표하는 청년 단체·기업을 선정해 지역별로 5억원을 지급, 도시청년들이 지방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로컬 기업
충북 괴산의 농업회사법인 ‘뭐하농’은 지난 4월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현재 ‘괴산에서 두 달 살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농촌에서 창농(創農) 혹은 창직(創職)을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8주간 실전적인 지식과 체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6월부터 프로젝트에 돌입한 1기 20명은 각자 다양한 분야로 사업계획서를 구상하고 파일럿 과제를 수행했다. 만족스러운 성과를 낸 덕일까. 지난달 8일 수료한 1기 멤버 전원은 괴산군 잔류를 결정했다. 이들은 괴산에 머물며 콘텐츠 개발과 사업 구체화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이지현 뭐하농 대표는 청년이 로컬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으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청년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지원책이 지역별, 작목별, 심지어는 농기구별로 있을 정도로 다양하고 활용법에 따라 경제적인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지만 많은 분이 이를 모르고 그냥 지나친다”며 “지원책을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조언을 얻기 위해서는 지역민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한 인적 네트워크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도시에서 농촌으로 진출하는 청년들의 중간다리 역할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앞으로 숙박·교육 사업을 추진해 갈 예정”이라고 했다.
로컬 비즈니스는 ‘지역 정체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도원우 리플레이스 대표는 “로컬은 대도시에 비해 경쟁우위를 점하기가 쉬운 시장”이라며 “스타트업을 하기에도 마케터나 디자이너로 활동하기에도 유리한 조건들이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도 대표는 창업 전 대구에서 한 보험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도시에서의 생활이 소모적으로 느껴지고 결혼 준비를 하면서 그 고민이 더욱 깊어질 무렵 우연히 ‘지방소멸’이라는 책을 읽게 됐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소멸위기에 처한 로컬 지역이 오히려 기회의 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학 선후배 5명과 함께 팀을 꾸려 사업을 준비했고 경북 문경에 자리를 잡아 ‘화수헌’ ‘산양정행소’ 등을 차렸다. 이곳에서 버려진 건물은 관광명소로 재탄생했고, 그 안에선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빵과 음료가 판매된다. 로컬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관광기념품으로 판매하는 편집샵도 운영되며 문화 행사 기획, 여행 상품 개발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사업 다각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비결을 묻자 그는 “문경이 지닌 잠재력을 잘 활용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어 “전국적으로 비교해봐도 문경은 정말 개방적인 도시”라며 “지역 주민과 지자체 공무원들의 열려 있는 태도와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로컬 기업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청년의 지방 이주 돕는 정책, ‘디테일’ 신경 써야
‘탈서울’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9 청년 지방 이주 이사’ 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5년 내 지방 이주 의사가 있다는 응답은 구직자가 49%, 대학생이 47%로 집계됐다. 대학생·구직자의 경우 2명 중 1명꼴로 5년 내 지방 이주 의사가 있는 셈이다. 같은 물음에 이미 취업한 직장인의 응답도 37.6%에 달했다. 치솟는 집값과 계속된 취업난, 코로나 장기화의 악재 속에서 ‘로컬 라이프’를 하나의 대안적 삶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청년의 지방 이주·정착을 돕는 정책사업이 더 세밀하고 체계적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현재 대부분의 정책 지원금이 2년 정도의 지급 기간을 두고 있는데 이는 한 지역에 온전히 뿌리 내리기엔 부족한 시간”이라며 “더 중요한 것은 지원이 끊기고 나서도 자력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 여부”라고 했다. 정 교수는 “정부가 이 문제를 성과 중심의 프로젝트성 사업이 아닌 생애주기 차원의 지원책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도원우 리플레이스 대표 역시 청년들의 로컬 진출을 돕는 지원책에 대해 아쉬움을 내비쳤다. 리플레이스도 경북이 추진한 ‘도시청년 시골파견제’의 지원금을 받아 초기 사업자금과 정착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이후 임대 계약 연장이나 신용보증 대출 등 사업의 지속성과 관련한 도움은 미비했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청년의 지역 기반 스타트업을 이끌어 내려면 ‘초기 정착’보단 ‘중장기 생존’에 무게를 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일찍이 지방소멸의 위험성이 제기되어 젊은 청년들을 지방으로 보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투자 규모 면에선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지역 공무원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민간 협력체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많은 지역이 소멸위기를 극복하고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오이타현 유후인이나 이시카와현 하쿠이시가 대표적이다. 정 교수는 “일본의 사례와 같이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사업이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개발 시대의 논리에서 벗어나 치유와 재생의 관점에서 해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광식 청년기자(청세담12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