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미래재단·롯데컬처웍스 ‘영화제작체험캠프’
“컷! 괜찮았는데, 한 번만 더 가자.”
지난달 27일 경기 양평의 한 연수원. 따가운 햇볕에 얼굴이 벌겋게 익은 어린 감독이 아쉬운 듯 말했다. 배우들도 연기가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자세를 고쳤다. 화면 각도를 다시 조정하는 촬영 감독 목덜미엔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보다 못 한 스태프가 손 선풍기를 갖다 대자 “선풍기 소리가 사운드 녹음에 방해된다“며 손사래 쳤다. 한낮 기온 35도. 하지만 바람 한 점 없는 땡볕 아래서 진행된 야외 촬영 현장의 체감 온도는 이를 훨씬 웃돌았다. 마이크 위치 조절을 마친 음향 기사가 신호를 보내자, 감독이 힘차게 외쳤다. “자, 다시 한 번 갑니다. 레디–액션!”
‘롯데컬처웍스 영화 제작 체험 캠프’가 지난달 26일부터 2박 3일간 개최됐다. 롯데컬처웍스와 아이들과미래재단이 함께 마련한 이번 캠프에는 영화 제작에 관심 있는 전국 각지의 고등학생 47명이 참여했다. 영화 촬영 이론과 기법에 관한 수업과 체험은 물론,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제작해보는 활동이 진행됐다. 롯데시네마 대학생 서포터스 등 20여 스태프가 학생들을 인솔하고 활동을 도왔다.
캠프 첫날에는 VR 영상 콘텐츠와 영화의 미래상에 대한 강의가 펼쳐졌다. 학생들은 고프로 VR 카메라 등으로 직접 VR 영상을 촬영했다. 6~7명씩 조를 짜 이튿날 촬영할 영화의 시놉시스를 짜고 배우, 감독, 촬영 감독, 미술 담당, 음향 녹음 담당 등 역할을 분담했다. 밤에는 LED 조명과 반사판을 들고 밖에서 30초짜리 호러 영상을 찍었다. 둘째 날 오전에는 크로마키 세트에서 간단한 CG(컴퓨터그래픽) 촬영을 체험하며 몸을 풀었다. 이어 전날 계획한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한 뒤 촬영에 들어갔다. 무더위 속에서 촬영을 마친 뒤에는 곧바로 편집 작업에 들어갔다. 7분 안팎의 짧은 영화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한 학생들의 분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롯데컬처웍스와 아이들과미래재단은 지난해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 제작 교실을 진행해왔다. 중학교 자유학년제(학생들이 한 학년 동안 시험 없이 다양한 체험 학습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 전용 진로 체험 프로그램 ‘롯데시네마 영화 제작 교실’과 이를 1일 과정으로 압축한 ‘롯데시네마 영화 제작 교실 오픈 강좌’가 대표적이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혜인 롯데컬처웍스 커뮤니케이션팀 대리는 “중학생 대상 프로그램이 진로 ‘체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번 캠프는 영화 관련 직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자신의 꿈이 적성에 맞는지 확인하고 목표를 확고히 하는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캠프에서 학생들은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서로 조언해가며 연기 연습을 하고, 식사도 미룬 채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학생들의 영화 촬영을 지도한 김태엽 영화감독은 “아이들이 단순한 흥미를 넘어 진지한 마음으로 영화에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영화계 진출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직접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경험은 무척 중요한데, 이번 캠프가 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캠프 마지막 날인 28일은 학생들이 땀 흘려 만든 영화를 함께 감상하는 상영회로 마무리됐다.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 생긴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다룬 ‘재깍재깍’ ▲좀비와 인간의 사랑을 그린 ‘49일’ 동성 선배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소년의 이야기 ‘ㅏㅣ’ ▲라이벌 때문에 힘들어하는 뮤지컬 배우 지망생의 이야기를 담은 ‘남천: 전화위복’ ▲늦은 밤 학교에 홀로 남은 학생이 귀신과 맞닥뜨리게 되는 ‘고우’ ▲엄마와 아들딸 사이 세대 차이를 그린 ‘이 자식들’ ▲VR 세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체험하는 소녀의 이야기 ‘E. G. V. R: 얼굴VR’ ▲일제강점기 거사를 앞둔 독립 투사들의 이야기 ‘타케트는 누구’ 등 총 8편이 상영됐다.
영화 관련 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하예진(18)양은 “실제로 영화를 만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캠프에서 촬영 감독을 맡아 직접 장면을 연출하고 영상을 찍어볼 수 있어서 뿌듯했다”고 했다. 현재 배우로 활동 중인 김민서(16)군은 “프로 스태프들과 촬영할 때는 여러모로 긴장이 됐는데, 또래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니 분위기도 더 자유롭고 아이디어도 쉽게 제안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웃었다. 손식 아이들과미래재단 선임은 “더운 날씨, 빡빡한 일정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아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며 “이 중에서 훗날 한국 영화계를 빛낼 유망주가 탄생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양평=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