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스쿨, 아시아 총괄디렉터 켄 로스 인터뷰
“커다란 교실에서 200명씩 듣는 강의, 비싼 등록금, 일방통행식 강의,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이론…. 세상은 변했는데 대학 모델만이 수백 년째 그대로다. 이 방식이 고장났다는 건 대학을 다닌 누구나 안다. 미네르바스쿨(Minerva School)은 망가진 교육 시스템에 새로운 해답을 던지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켄 로스<사진> 아시아 미네르바스쿨 총괄디렉터의 말이다. 미네르바스쿨은, 2012년 기존 대학 모델을 바꾸겠다며 만들어진 혁신 대학. ‘미래의 학교모델’, ‘하버드보다 들어가기 어려운 스타트업 대학’으로 불리는 이 대학의 올해 초 입학 경쟁률은 무려 100대 1. 전 세계에서 쏟아진 2만1000명의 지원서 중 220명이 뽑혔다. 지난해 1만6000명의 학생이 지원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만에 지원자도 5000명이 늘었다. 켄 로스 디렉터는 “우리는 굉장히 우수한 학생들만 선별적으로 뽑는다”고 강조했다. “우수한 학생에게 ‘높은 질’의 교육을 통해 임팩트를 만들어 하버드·예일 등을 포함한 교육업계 전반에 혁신을 가져오기 위해서”라는 것.
전 세계 날고 기는 ‘뛰어난’ 학생들만 뽑는다는 이곳엔 정해진 캠퍼스는 없다. 단, 입학생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고 3~6개월마다 머무는 국가를 바꾼다. 전 세계가, 이 대학의 캠퍼스이자 기숙사가 되는 셈이다. 미네르바스쿨에서 모든 수업은 온라인 자체 플랫폼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 모든 수업은 15명 내외의 소규모로 이뤄지다 보니, 하나의 국가나 고정된 캠퍼스에 머물지 않아도 동일한 양질의 수업을 이어가는 게 가능하다. 샌프란시스코, 런던, 베를린,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친 학생들이, 다음 학기는 한국의 서울에서 보내게 됐다.
“모든 수업은 미네르바 스쿨에서 자체 개발한 온라인 ‘액티브 러닝 포럼(Active Learning Forum)’이라는 플랫폼에서 이뤄진다. 일방적인 ‘강의’나 녹화된 온라인 강의를 트는 방식이 아닌, 실시간 토론식 세미나 형태다. 한 세미나당 13~15명의 학생이 참여한다. 화상을 통해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를 주고받는다.”
‘액티브 러닝 포럼’에는 ‘능동적 학습(active learning)’을 돕는 여러가지 장치가 포함되어있다. 교수 화면에 수업 시간 동안 어떤 학생이 덜 참여했는지가 즉시 표시되는 게 하나의 예. 교수는 참여도가 낮은 학생에게 질문을 던지고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학생들은 버튼 하나로 본인의 의견을 O, X로 표시하고, 팀이 된 학생끼리는 온라인 협업 도구를 이용해 보고서를 쓴다. 모든 수업은 녹화되고, 교수는 녹화된 영상을 바탕으로 정확한 피드백을 줄 수 있다. 그는 “액티브 러닝 포럼에 포함된 몯든 요소는 인지과학 학습법 등의 이론에 의거한 것”이라며 “이런 방식의 수업을 구현하는게 온라인에서 가능하고 더 쉽기 때문에 온라인을 활용하는 것이지, 기술이나 온라인 자체가 우리의 핵심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네르바 스쿨에서 자체 개발한 학습 플랫폼 ‘온라인 러닝 포럼(Active Learning Forum)’. ⓒ미네르바 스쿨
올해 기준, 미네르바의 연간 등록금은 1만2500달러(약 1393만원). 같은 기간 등록금이 약 4만6000달러(약5100만원)원에 달하는 스탠포드, 하버드, MIT와 비교하면 4분의 1 정도다. MIT, 아이비리그에 비해 낮은 등록금에, 전 세계 출신 학생들로 선발해 “이 시대에 필요한 ‘글로벌 감각’을 기르겠다”는 것도 미네르바스쿨의 취지다.
“하버드나 스탠포드대의 경우 전체 학생 중 미국인이 아닌 다국적 학생이 10%도 채 못미친다. 한 학급 대부분의 학생이 등록금 전액을 낸다. 왜냐고? 낼 수 있는 여력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내 경제적으로 상위 10%에 드는 이들이 소위 말하는 ‘유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미네르바스쿨은 다르다. 학생의 75%가 미국 외 다른 나라 출신이다. 지금까지 전체 학생 중 82%가 장학금을 받았다. 똑똑하고 배울 의지가 있는 학생이라면, 국적이나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파키스탄, 인도, 독일 등 국적을 불문하고, ‘기존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걸 아는 유수한 학생들이 미네르바스쿨에 모였다.”
교수진 면면도 화려하다. 미네르바스쿨의 커리큘럼을 만들 때부터 함께한 스티븐 코슬린 학장은 하버드대 사회과학부 학장, 스탠퍼드대 행동과학고등연구센터장 출신이다. 켄 로스 총괄디렉터는 “교수진 경쟁률은 학생보다 더 치열하다”고 했다.
“현재 교수진은 50명이다. 단 한번도 광고한 적이 없는데도 전 세계에서 수천명의 교수들이 지원한다. 우리는 전적으로 학생의 배움에 중심을 둔 대학이다. 모든 수업을 ‘소규모 참여형’으로 진행하는 건 교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간의 연구 업적도 중요하지만, 참여수업을 이끌어 갈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최종 선발 여부는 시범수업 이후 학생들이 결정한다. 미네르바의 취지와 잘 맞지 않거나 관성적으로 일방적인 강의를 진행할 때는 (교수진을) 해고하기도 한다”고 했다.
대학을 혁신하겠다며 나온 ‘혁신 대학’에선 ‘무엇을’ 가르치는 걸까. 사회과학, 비즈니스, 예술인문학 등 전공은 총 5가지. 언뜻보기에 일반 대학과 뭐가 다를까 싶지만 그는 “실질적으로 필요한 역량을, 굉장히 구조적으로 배운다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했다. “방수(water-proof)는 물에 닿아도 끄떡없는 소재를 말하지 않나. 우리는 미래적응역량(future-proof)을 가르친다. 10~20년 후 미래에, 어떤 지식이 필요할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가르치는 건, 어떻게 비판적으로 사고하는지, 창의적으로 생각하는지, 정확하고 잘 소통하는지 등이다. 보통은 대학을 졸업하고 업무를 시작해 2~3년이 지나서야 습득하는 능력이다. 미네르바스쿨에서는 전공과 함께 ‘변화적응’에 필요한 능력을 훈련시킨다.”
그는 “아직 졸업생이 나오진 않았지만, ‘미네르바 스쿨’의 임팩트를 보여주는 반응이 곳곳에서 보인다”고 했다. “미네르바 스쿨 학생들이 방학동안 인턴십을 한다. 구글, 아마존,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기업에서부터 비영리단체나 사회기관에 종사하기도 한다. 나라를 옮길 때에도, 각각의 나라에서 각기 다른 기관에 종사한다. 지금까지 미네르바 스쿨 학생들이 일했던 모든 기업에 설문조사를 돌렸다. ‘미네르바 스쿨’ 학생들에 대해 평가해달란 거였는데, 모두가 굉장히 만족하더라. ‘맥킨지 컨설턴트 3년 차쯤 되는 줄 알았다’, ‘지금 그냥 우리 회사에 와서 일을 시작하면 좋겠다’ 같은 피드백도 있었다. 미네르바스쿨 모델이 갖는 임팩트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오는 9월엔 서울이 대학 캠퍼스가 된다. 미네르바스쿨의 학생 250명이 4개월간 서울에서 머물 예정이다. 다양한 사회혁신기관, 비영리단체, 기업 등을 경험하며 현장형 배움도 이어갈 예정이다.
“‘미네르바스쿨=온라인 대학, 기술기반 대학’이 아니다. 과학적인 이론에 근거한 교수법과 기술 플랫폼,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네트워크, 글로벌 경험 등 이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집약적으로 전달하는 ‘혁신 모델’인 셈이다. 대학모델에 가져올 임팩트를 기대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