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사회성과 인센티브 프로젝트 1년, 뚜껑 열어보니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사회성과 인센티브(Social Progress Credit)’ 프로젝트가 1년 만에 베일을 드러냈다. ‘사회성과 인센티브’란 사회적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에 비례해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으로, 최태원 회장이 지난 10년간 사회적기업을 정리하며 옥중에서 펴낸 책 ‘새로운 모색, 사회적기업’에서 제안한 개념이다.
2015년 4월 출범한 ‘사회성과 인센티브 추진단’은 지난 20일, 서울 종로에 있는 사회적기업 ‘허리우드 실버영화관’에서 정부, 사회적기업 관계자, SK그룹 경영진 등과 함께 ‘사회성과 인센티브 1주년 기념행사 및 학술좌담회’를 열었다.
사회성과 인센티브(SPC)의 핵심은 사회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계량화’하겠다는 것. SK 측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44곳의 사회적기업은 지난 1년간 모두 약 104억원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44곳은 지난해 매출 740억원 외에 104억원의 사회적 가치를 추가적으로 만들어낸 것.
SK는 사회성과 104억원의 25% 수준인 26억여원을 인센티브로 지급했다. “가장 많은 사회적 가치를 낸 사회적기업은 어느 곳이냐”고 묻자 SK 관계자는 “성과에 따라 사회적기업을 줄 세우지 않는 것이 방침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최태원 회장의 저서에서 “가장 높은 등급에 해당하는 사회적기업가에게는 명예의 전당에 올려주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포인트를 쌓으면 명예로운 시민상을 수여하는 등의 방식을 고려한다”는 등 각 기업가에게 차등적 명예를 부여하겠다는 아이디어와는 사뭇 달라졌다.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측정했을까. SK 관계자는 “학계, 사회적기업가, 사회적기업 지원 기관 등 이해 관계자와 함께 사회성과 측정 방법을 개발했다”면서 “추진단에서는 사회적 가치 측정 지표가 범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됐을 때 공개하기로 합의됐다”며 구체적인 지표 공개는 거부했다.
사회성과 인센티브 추진단은 SK그룹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한국사회투자, 사회적기업연구원 등 다자 간 협력 체제로 구성됐다. 이와 관해 한 전문가는 “사회성과 인센티브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내부 이해 관계자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정보를 공개하며 토론 과정과 보완을 거쳐야 한다”면서 “평가 지표는 물론 44곳의 사회적기업 리스트까지 공개하지 않는 것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지난 1년간 사회성과 인센티브에 참여한 사회적기업가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A 소셜벤처 대표는 “나라에서 지원받는 일자리 지원금은 성과에서 제외한다는 등 나름의 객관적인 지표를 가지고 평가한 편”이라며 높은 점수를 줬다.
안병훈 빅이슈코리아 대외협력국장은 “우리 기업이 얼마나 사회적인 임팩트를 내고 있는지 양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민간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측정해줘서 좋다”면서 “사회적기업이 투자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성과 지표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빅이슈코리아는 지난해 홈리스 판매원들이 번 수익금 자체가 사회적 가치로도 평가됐다.
친환경 사회적기업이거나 문화예술형 사회적기업의 경우, ‘사회적 가치’ 평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업사이클링 사회적기업인 터치포굿의 박미현 대표는 “터치포굿에서 판매하는 가방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도 하지만 구매자의 인식 변화와 환경에 대한 메시지까지 다양한 가치가 창출된다”면서 “1년 내내 환경 관련 교육의 가치를 산출하려고 애썼지만 관련 지표가 없어 아쉬웠다”면서 발전 부분을 제언했다.
옥수수 섬유로 양말을 만드는 콘삭스의 이태성 대표는 “장애인 작업장으로 지정된 공장과 거래하면서 간접 고용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지만 지표에 반영하기 어려워 상대적으로 사회적 가치가 낮게 측정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개별 기업의 사회적 성과를 공개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학습’ 차원의 공개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트리플래닛의 김형수 대표는 “화폐 단위로 가치가 표시되니까 기업가들 사이에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량적인 부분은 제외하더라도 정성적인 부분의 평가 내용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해외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수확하면 농가의 소득이 증대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게 되는 등 다양한 부가가치가 만들어진다”면서 “사람들은 구체적인 측정 과정을 학습하면서 사회적기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센티브 구조에 대한 의견도 있었다.
사회적기업 C 대표는 “사회적 가치로 측정된 부분의 10~20%를 인센티브로 받는데 회사 경영자 입장에서는 그리 매력적인 수준이 아니다”면서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으면서, 기업별로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과 전략을 만들어갈 수 있는 대안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센티브는 각 기업이 만들어낸 사회적 가치에 따라 책정되지만, SK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회적기업당 평균 6000만원이 성과금으로 지급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정부도 아닌 민간 기업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서 사회적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것은 전 세계 유례없는 실험적인 시도”라면서 “프로젝트 과정에서 얻어지는 지식과 데이터를 최대한 잘 공개해 실험의 결과가 좋은 학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