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생태계에서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BIP(Bee Informed Partnership)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역에서 사라진 꿀벌 벌통 수는 117만3728개에 달한다. 벌통 하나에는 평균 2만 마리의 꿀벌이 서식할 수 있다. 이를 환산하면 230억마리 이상이 실종된 셈이다. 국내 사정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전국 4173개 농가, 39만517개 벌통에서 꿀벌이 사라졌다. 꿀벌 70억마리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또 지난 10년간 토종벌 개체 수는 95%나 감소했다. 작물의 수분(受粉)을 책임지는 꿀벌이 급격히 사라지면 식량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는 꿀벌 소멸을 막기 위해 서식지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기존 육상동물의 서식지 단절과 파괴를 막기위한 생태통로를 꿀벌 등 비행하는 곤충에 적용하는 것이다. 24일(현지 시각) 유럽연합(EU)은 꿀벌을 포함한 수분매개자의 감소를 멈추고 서식지를 복원하기 위한 회원국 간 생태통로 ‘버즈라인(Buzz Lines)’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7년에 걸쳐 27개 회원국에 버즈라인을 만들고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버즈라인은 꿀벌을 비롯한 수분 매개 곤충들이 서식지를 안전하게 옮겨다닐 수 있도록 돕는 이동로다. 꿀벌이 서식할 수 있는 나무나 야생화를 전국 도로망처럼 끊어지지 않게 연결하는 게 특징이다. 꿀벌은 생태통로를 따라 서식지를 자연스럽게 확대할 수 있고, 생태 전문가들은 그간 파악이 쉽지 않던 꿀벌 서식지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
버즈라인은 영국의 꿀벌 생태통로인 ‘비라인(B-Line)’을 벤치마킹했다. 영국의 자선단체 화이트하우스(Whitehouse)와 버그라이프(Buglife)는 지난 2014년 영국 전역에 꿀벌이 이동하며 서식할 수 있는 생태통로를 구축하고, 지도 상에 구현한 생태통로를 두고 ‘비라인’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들은 6년간 비라인을 통해 영국에서 15만헥타르(약 1500㎢) 규모의 꿀벌 서식지를 복원했다.
꿀벌의 폐사 원인은 서식지 감소, 살충제 사용, 지구온난화 등 다양하다. 기존에는 살충제 사용 금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2016년 EU는 꿀벌 생존을 위협하는 살충제 네오니코티노이드(neonicotinoid)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미국은 지난해 네오니코티노이드를 포함한 57종의 살충제 사용을 금지했다. 지난 4일 미국 농무부(USDA)는 꿀벌 유충을 썩게 하는 부저병을 막는 백신을 조건부 승인했다.
최근 EU의 버즈라인 구축 계획은 생태계 복원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조윤진 WWF 기후에너지팀장은 “살충제 금지 등 기존 해결책에도 불구하고 꿀벌의 실종과 폐사는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며 “기후변화와 자연환경 변화 등 인위적 영향과의 연관성을 파악하고 생태계 복원에 초점을 맞춘 꿀벌 복원 대책은 점차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