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전 세계에서 1500억 벌의 옷이 새로 만들어진다. 의류 한 벌당 평균 착용 횟수는 7회. 생산된 옷의 73%는 매립 또는 소각돼 사라진다. 패션 산업은 매년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10%에 해당하는 양을 뿜어낸다. 패션 산업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유다.
‘다시입다연구소’는 지속가능한 의생활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대표적인 행사가 ‘21%파티’다. 방치해둔 옷을 서로 바꿔입자는 취지의 의류 교환 행사로, 사놓고 입지 않는 옷이 옷장의 21%를 차지한다는 자체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21%파티’라는 이름을 붙였다. 재봉틀 수선 워크숍 등을 함께 열어 참가자에게 다양한 ‘제로웨이스트 패션’의 경험을 제공한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서 열린 17번의 파티에 1135명이 참가했다. 옷과 액세서리 1997종이 새 주인을 찾았다.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구의 복합문화공간 무대륙에서 열린 ‘21%파티’에 기자가 직접 참여했다.
두 번 입은 ‘지효 원피스’, 잘가!
‘21%파티’는 사전예약을 한 사람만 참가할 수 있다. 예약한 시간은 오후 5시였지만 3시 30분에 미리 도착했다.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기웃거릴 정도로 행사장에는 리드미컬한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입구에는 부스가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가져온 옷에 담긴 사연을 종이택에 쓰고, 옷과 함께 옷걸이에 정갈하게 건다. 종이택을 한 장 받아 편지를 적었다. “잘가! 트와이스 지효 원피스야. 내가 작년에 널 지효님 사진에서 보고, 널 입으면 내가 지효님이 될 줄 알고 샀는데. 두 번 입고 난 지효님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널 떠나보내. 부디 아름다운 주인님을 만나서 본연의 가치를 뽐내주렴!”
부스에서 옷과 작별인사를 하고, 진행요원에게 행사 참여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옷을 10벌이나 챙겨온 사람도 있고, 액세서리나 신발을 가져온 사람도 있었다. 옷마다 금액대가 다른데 어떻게 교환이 이뤄지는지 묻자, 진행요원은 “가격이나 종류에 상관없이 모두 1대1 교환”이라며 “다만 10벌을 가져와도 최대로 가져갈 수 있는 옷은 5벌”이라고 설명했다. 가져온 옷을 제출하고 나면 개수에 맞춰 교환 쿠폰을 준다. 알록달록한 쿠폰을 건네 받고 입장을 기다렸다. 놀이기구 입장권을 사서 개장 시간을 기다리듯 대기인파 속에서 설렘이 느껴졌다.
오후 4시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의류 교환에 앞서 미리 예약해둔 재봉틀 수선 워크숍에 참가했다. 워크숍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업사이클링 공방을 운영하는 전문가 두 분을 초청해 진행됐다. 기자가 가져간 트레이닝복은 니트 재질이라서 수선이 어렵다고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서자 전문가 선생님이 수선이 어려운 경우 할 수 있는 다른 체험이 있다고 했다. 바로 자투리 천으로 텀블러백 만들기! 작은 가방을 드는 날엔 텀블러를 넣을 공간이 없어서 사용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는데, 오히려 좋은 ‘플랜비(PlanB·대안)’였다.
원하는 색 조합을 고르고 난생처음 재봉틀 앞에 앉아 천을 밀었다. 손끝이 떨려서 일자로 미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전문가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조금씩 천과 천을 이어 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가방을 완성하고 21%파티 로고를 박았다. 보랏빛 배경에 흰색·파란색 옷이 나란히 그려져 있는 로고였다. 의류 교환 후 다시 가져갈 옷에도 이 로고를 박아준다. 21%파티에 참석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랑스러운 훈장 같은 것이다.
옷으로 맺는 새로운 인연
오후 5시, 드디어 의류교환이 시작됐다. 제한 시간은 30분. 사람들은 전투적으로 옷을 ‘사냥’하러 다녔다. 여성 참여자가 대부분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남성 참가자도 다수 있었다. 기자도 서둘러 옷을 구경하기 위해 발걸음을 뗐다. 옷 종류는 천차만별이었다. 하늘하늘한 쉬폰 블라우스부터 힙스터 바지, 시크한 프렌치 스타일 코트 등 다양했다. 이번 행사를 협찬한 ‘마인드브릿지’ 의류를 진열해둔 섹션도 있었다. 재고를 폐기하지 않고 일부를 협찬해 새로운 순환을 이루려는 시도였다.
의류교환은 30분 단위로 진행됐다. 처음 만난 참가자끼리 옷이 잘 어울리는지 서로 봐주기도 했다. 옷을 구경하다가 다른 참가자 팔에 입장할 때 기자가 내놨던 ‘지효 원피스’가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이 옷을 고른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허수현(23·인천 미추홀구)씨는 “내 취향에 맞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종이택에 적힌 사연이 인상 깊어서 골랐다”고 말했다. 기자가 “내가 그 옷의 전 주인”이라고 밝히자 허씨는 “괜히 반갑다”면서 “이 옷과 좋은 인연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사연을 적는 종이택 아래에는 SNS 계정을 적는 칸도 있다. SNS로 옷의 새 주인과 전 주인이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 의류 교환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입었던 옷을 공유한 사이는 얼마나 특별한 인연일까 생각했다.
오후 6시 한산해진 행사장에서 정주연 다시입다연구소 대표를 만났다. 정 대표는 “유럽의 청년 세대가 ‘쇼핑하지 말자’는 환경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의류 생산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게 됐다”면서 “국내에는 의류 폐기물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한 것 같아 이를 알리는 캠페인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21%파티’는 의류 폐기물 문제에 심각하지만은 않은 관점으로, 재밌게 즐기며 접근하기 위해 떠올린 방식이다. 정 대표는 “지금 ‘21%파티’에서는 의류 교환만 하고 있지만, 앞으로 수선·리폼·커스터마이징 등 더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이벤트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주태민 청년기자(청세담 1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