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지속가능성을 투자에 반영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 스튜어드십 코드란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투명하게 보고하는 행동지침을 말한다. 문재인 정부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사회적 책임 강화’ 국정과제의 일환으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5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은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에서 국부펀드의 사회책임투자를 일찍이 강조해온 노르웨이와 영국의 사례에서 국민연금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노르웨이 자산운용사 스토어브랜드(Storebrand)의 얀 에릭 사우게스타드(Jan Erik Saugestad) 자산 운용 CEO, 주한 영국대사관의 데이비드 마키(David Markey) 경영환경 및 기후 외교 담당 서기관, 보건복지부의 최경일 연금재정과장이 발표자로 참여했다.

토론회 개회사를 맡은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기업들이 정도(正道) 경영을 하도록 기관 투자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재벌 총수들의 불법행위 등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박석범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총장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국내 다른 연기금 및 공제회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가속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기업의 세계 경쟁력과 가치를 높이고, 나아가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사우게스타드 스토어브랜드 CEO “사회책임투자, 재정적으로는 똑똑한 선택, 사회적으로는 옳은 일”

스토어브랜드는 약 890억 달러(한화 약 95조)의 개인연금을 운용하는 노르웨이 최대 개인연금 운용사다. SK 하이닉스, LG생활건강, 현대모비스, 신한금융그룹, 네이버 등 국내 96개 기업에 약 1조 3300억원을 투자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토론회에 주요 연사로 초청된 스토어브랜드는 1995년부터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기업 활동을 평가해온 곳이다.

사우게스타드 CEO는 “스토어브랜드의 사회책임투자는 꾸준히 진화하고 있으며 2020년까지 기준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라면서 “지속가능성을 투자에 반영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이라 강조했다. 그는 스토어브랜드가 일찍이 투자 프로세스에 지속가능성을 반영한 것에 대해 “재정적 측면에서는 똑똑한 선택이었고 사회적 측면에서는 옳은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스토어브랜드의 지난 10년간 수익률은 약 9.34%, 최근 3년간은 12.23%, 지난 1년동안은 무려 15.89% 수익률을 달성했다(2017년 12월 기준). 한국 기업의 투자기관 대표로서 그는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이런 맥락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스토어브랜드의 사회책임투자 원칙이 궁금하시다면?

나아가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를 올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 사이의 역할 구분이 뚜렷해야 한다”며 “노르웨이에서는 중앙 은행 소속 자산운용 기관인 ‘엔빔(Norges Bank Investment Management, NBIM)’의 독립 위원회에서 투자 자문과 주주권 행사에 관한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고, 정부 부처는 지속 가능한 정책 시행을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5일 한국사회투자포럼이 개최한 ‘국민연금의 기업관여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제고 방안’ 토론회에서 노르웨이 자산운용사 스토어브랜드의 얀 에릭 사우게스타드 자산운용 CEO가 발표하고 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석탄 산업 규제에 나선 영국 정부와 금융계

이날 토론회에 연사로 참여한 데이비드 마키(David Markey) 주한 영국대사관 경영환경 및 기후 외교 담당 서기관은 ‘영국 정부와 금융기관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공유했다. 영국은 2008년 기후변화법 통과를 계기로 녹색 성장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1990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36% 가량 줄였고, 현재 영국 내 전기발전량에서 석탄 발전 비중을 90년대보다 89%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영국 정부와 금융 기관이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 대응 전략을 펼쳤던 것이 유효하게 작용했다.

데이비드 마키 서기관은 “영국 정부는 2017년 캐나다와 함께 ‘탈(脫) 석탄 동맹(Powering Past Coal Alliance)’을 결성해 2050년까지 석탄산업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연맹에는 26개국, 주 정부 8개, 스토어브랜드를 포함한 기관 24개 등 총 58개 회원이 가입돼 있고, 각 회원은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노력을 하지 않는 업체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고 있다. 마키 서기관은 “영국의 저탄소 경제는 연간 11%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2015년 저탄소 부문에서 420억 파운드의 매출을 올렸다”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책임투자가 수익과 반대되지 않는다는 것이 점차 입증되고 있다”고 했다.

데이비드 마키 주한 영국대사관 서기관이 영국 정부와 금융기관의 사회책임투자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사회책임투자 확대 필요성 공감…구체적 확대 방안은 올 7월 발표 예정”

약 621조 규모의 기금을 운용하며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한 한국의 국민연금.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펀드 비중은 얼마나 될까. 2006년부터 국민연금은 사회책임투자 펀드를 민간 금융사 7곳에 위탁해 운용 중이며, 그 규모는 약 6조9000억원으로 전체 기금의 9% 수준이다(2017년 기준). 최경일 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장은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자금이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위험 관리에 기초해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사회책임투자 방식과 잘 맞는다”면서 “사회책임투자 펀드 규모를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예정이며, 국민연금에서 이를 운용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지표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국민연금의 전체 자산을 사회책임투자 방식으로 운용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 덧붙였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어느 단계까지 왔을까. 사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소극적이고 제한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왔다. 지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민연금은 연간 2700~3000개 주주총회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했는데, 이중 경영진 의견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횟수는 9~13%에 그쳤다. 최 과장은 “대규모 장기투자자로서 국민연금은 세대 간 형평성을 유지하고 미래세대에 악영향을 미칠 기업 및 산업을 제재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주주활동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최경일 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장이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확대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관한 연구 내용 및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한편, 이날 발표에서 최 과장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사회책임투자 확대 방안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 및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대신 지난해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진행한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활성화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관한 연구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며, ▲사회책임투자 가이드라인 검토 및 기업 모니터링과 투자 자문을 담당할 ‘수탁자책임위원회’ 또는 ‘사회책임투자위원회’ 설치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와 재무적 요소를 적절한 비중으로 반영한 사회책임투자 벤치마크를 마련 ▲투자자(수탁자)로서 투자 대상 기업에 행사해야 할 책임활동의 범위 등을 논의의 핵심으로 꼽았다.

그는 “(가칭)수탁자책임위원회가 투명하고, 전문적이고, 독립적으로 구성 및 운영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정들을 새로 만들고 있으며,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과 그 세부지침인 ‘주주권행사 지침’ 등 각종 지침과 규정의 제·개정안을 마련 중”이라며 “오는 7월 말 기금운용위원회의 최종 의결을 거쳐 구체적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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