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욱 前 삼성전자 상무
5년간 100대 기업 분석해보니…
투자 1% 늘어날 때 매출 성장률 0.9% 증가
기업 이미지만 높이려고 하면 명성에 타격,
책임경영으로 진정성도 높여야
사회공헌을 잘하면 매출이 오를까. “전략적 사회공헌이 기업의 비즈니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다.
100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전경련 사회공헌백서·각 기업 홈페이지 공시자료 5년치를 분석해낸 주인공은 신진욱(54) 전 삼성전자 상무. 그는 1985년 삼성그룹으로 입사해 크로아티아·빈·헝가리·나이지리아 등 해외 법인에서 30년 가까이 글로벌 마케팅 및 사회공헌을 담당, 삼성전자의 글로벌 CSR(기업의 사회적책임)을 진두지휘해온 인물이다. 개도국 청년들을 위한 IT 교육 및 취업 연계 프로그램인 ‘삼성 엔지니어링스쿨’, 태양광 설비를 활용해 양방향 멀티미디어 교육을 진행하는 ‘태양광 인터넷 스쿨’ 등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프로젝트만 여럿.
은퇴 직후 인하대 지속가능경영MBA 과정을 마치면서, 100대 기업의 사회공헌 5년 임팩트를 연구 논문(‘한국 기업 사회공헌 투자의 지속성·핵심역량·가치사슬 연계활동 현황 및 효과 분석’·지도교수 김종대)으로 풀어냈다. 기업의 사회공헌 지출액이 3조원 안팎으로 증가하면서, 사회공헌의 효과성에 대한 의문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직접 찾아나섰다.
현재 전경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중소기업의 글로벌 진출 전략을 컨설팅하는 그를 직접 만났다.
-사회공헌을 하는 모든 기업이 궁금해한다. 사회공헌은 기업의 경제적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대답은 ‘예스(Yes)’다. 지난 5년간 100대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사회공헌 투자액의 증감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 사회공헌 투자가 1% 늘어날 때마다 기업의 매출 성장률이 대략 0.9%씩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0.54%씩 증가했다. 그리고 사회공헌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기업의 재무적 성과가 그렇지 않은 기업들보다 높게 나타났다. 사회공헌 투자와 매출 성장률이 불일치하는 기업은 15곳, 영업이익률과 불일치하는 기업은 6개사에 불과했다. 한국가스공사와 SK케미칼은 매출이 감소했는데도 사회공헌 투자를 늘린 반면, 한국철도공사는 영업이익률이 증가했지만 사회공헌 투자를 줄였다. 이미 해외에선 CSR을 적극적으로 하는 기업의 경우, 경쟁력이 향상되어 장기적인 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지속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전략적 사회공헌이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글로벌 사회공헌을 총괄하면서 기업의 역량을 연계한 프로그램의 경우 만족도와 성과가 높게 나타나는 걸 발견했다. 국내 100대 기업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전경련 사회공헌백서 등에 공시된 5년치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3개씩 선정, 각사의 핵심역량과 사회공헌 연계성을 분석해봤다. 현대자동차·한국가스공사·현대엔지니어링의 경우 5개년 프로그램의 핵심사업 연계성이 100%로 나타났고, LG디스플레이와 메리츠화재가 93%로 뒤를 이었다. 또한 기업의 핵심사업과 사회공헌의 연계성이 높을수록 매출성장률도 증가했다.”
-전략적 사회공헌을 잘하고 있는 기업의 예시를 들어달라.
“LG생활건강의 ‘빌려쓰는 지구교실’은 청소년들에게 친환경 생활습관 교육과 진로 멘토링을 제공하는 사회공헌으로, 직원들이 직접 학교를 찾아가 세안·양치·머리감기·설거지·세탁·분리배출 등 총 6가지 올바른 생활습관을 가르쳐준다. 기업 역량과 친환경 이슈를 접목한 전략적 사회공헌의 예시다. SK하이닉스는 2012년부터 과학 영재 발굴 및 육성을 위해 지역 아동들에게 교육용 로봇과 과학 교육을 지원하는 ‘로보올림피아드’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지역사회 활동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 삼성전자는 스마트스쿨 등 IT 관련 활동을 기획하며 실행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사회공헌 투자 금액의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사회공헌의 지속적인 증가와 함께 영업 이익의 규모도 크게 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소비자가 몰라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가 기업의 사회공헌을 체감하려면 충분한 성과를 낼 만큼 사업이 지속돼야 한다. 그러나 매출성장률이 높은 기업의 경우 1~3년 주기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하는 등 대내외 환경과 의사결정권자의 의지에 따라 사회공헌이 불안정한 경향을 보였다. 사회공헌을 지속하려면 해당 사업이 기업의 핵심역량과 결합되고, 제품 생산·포장·판매 등 가치사슬(공급망) 전반에 연결돼야 한다. 예를 들어 커피회사가 아프리카 농가의 커피콩 재배 교육·우수종자 개량 및 보급·수로공사 등을 통해 커피콩의 질과 수익성을 높이고, 현지 주민들을 직원으로 채용시킨다면, 제품 생산·HR·서비스·지역사회의 질을 높이게 된다. 기업이 사회공헌을 지속할수록 비즈니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반면 국내 100대 기업 중 기업의 핵심역량과 사회공헌을 연계한 비중은 44%에 불과했고, 가치사슬과 접목한 프로그램은 총 222개 중 16%에 불과했다.”
-전략적 사회공헌을 지속하기만 하면 기업 평판이 올라갈까.
“사회공헌만 한다고 신뢰받는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권·복지·안전·환경·상생 등 기업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면, 소비자는 오히려 사회공헌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실제로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및 기업지배구조원 사회부문 평가와 사회공헌 투자 지속성(증감률)을 비교 분석해보니, 기업 명성은 사회공헌 투자 지속성(증감률)과 상관관계가 낮았다.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사회공헌 투자를 늘리더라도, 책임경영 전반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반대로 기업 명성에 타격을 입힌다.”
-사회공헌의 임팩트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공헌 투자 금액과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대다수 기업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나 홈페이지상에 사회공헌 투자 금액을 밝히지 않고, 주요 활동을 나열하는 데 그친다. 기업의 사회공헌 투자 금액이 지속적으로 공시된다면, 사회공헌 성과 측정은 물론 소비자 및 NGO 모니터링과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사회공헌 투자 금액에 대한 공시 기준 및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대다수 기업이 재단 기부금·임직원 기금·준조세적 기금 등 어떤 비용이 사회공헌에 포함됐는지, 상세 내역을 공개하지도 않고 그 기준도 제각각 보고하고 있다. 공정하고 충분한 평가가 수반될 때 질적 성장도 따라오는 법이다. 인도, EU 등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사회공헌 및 책임경영 관련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비자와 투자자가 지속적으로 책임경영에 관여할수록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의 전략적 사회공헌을 총평한다면.
“대다수 기업이 경영진의 의견이나 직원의 투표 등을 통해 사회공헌을 결정해, 전략적 설계가 부족한 단계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업과의 연계성을 강조한 기업들도 대부분 핵심역량과 유사한 부문의 활동을 전략적 사회공헌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높더라. 물론 일부 기업들은 역량을 활용한 사회공헌 프로젝트가 단계별로 성장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핵심역량과 기업의 가치사슬을 연계해, 기업의 사회공헌과 재무적 성과의 ‘윈윈(win-win)’ 모델을 설계해나가는 설계가 필요하다. 젊은 창업가들 사이에서 CSR 전반을 고려한 제품 설계 등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점도 기대할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