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장학회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대학을 일찍 갔어요. 새내기때부터 과외를 많이 해봤는데, 부조리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학비 때문에 과외를 했는데, 저의 돈벌이가 누군가에겐 불평등한 기회를 조장하고 있을 수 있겠구나᠁ 돈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누구나’요.”
21살 한 청년의 ‘오기’는 매년 5000명의 청소년이 꿈을 꿀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카이스트 전자전자공학과에 재학중이던 장능인(27)씨는 2007년, 모교를 중심으로 대학생 자원봉사 그룹을 구성하며 첫 발을 내디뎠다.
만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09년에는 카이스트 미담장학회를 설립, 미담봉사단을 발족했다. 다른 멘토링이나 공부방과의 차별점은 바로 학생들을 만나는 ‘공간’이다. “학생들은 사실 대학에서 뭘 가르치는지도 모르고, 입시 면접 때 처음 가보잖아요. ‘상아탑’이라며 멀게만 느껴지는데, 문턱을 낮추는데 의의가 있었어요.” 미담장학회 대학생 멘토들은 주말을 활용해, 대학교 강의실을 대여해 대전 지역 중·고등학생 멘티들에게 수학, 과학, 영어 수업을 무료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미담장학회’. 학생들 스스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2010년에는 대전시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되면서, 조직으로서의 모습이 점차 정비됐다. 무료 교육 봉사와 동시에, 대전 시내 각 학교와 ‘방과후 학교’ 사업을 벌이면서 조직 운영비를 마련하는 전략을 세웠다. 미담장학회의 이사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장능인씨는 “미담장학회는 인력이 필요한 학교에 대학생 명예교사를 파견하고, 인건비의 20%를 미담장학회에 기부하게 되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방과 후 학교, 진로 캠프 등 교육 관련 다양한 공익 사업을 펼치던 미담장학회는 2013년,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으로 인증까지 받았다. 4년 전만해도 상근 인력 1명으로 운영되던 미담장학회는 현재 풀타임 직원 10명, 연간 예산 15억 규모의 비영리단체로 성장했다. 스무명 내외였던 정기 후원자도 현재 500명으로 확장됐으며, 1000만원 이상의 고액 기부자도 있다.
자본도, 인맥도 없던 ‘순수 대학생 봉사 단체’가 사회적기업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에는 두 청년 리더의 헌신이 있었다. 대학생 봉사자로 5년, 무보수 직원으로 3년. 장능인씨는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8년을 버텼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일까. 2012년에는 경북대에서 대학생 봉사 동아리를 총괄하던 공대생 김인호(27)씨와 의기투합해, 미담장학회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김인호씨 또한 청소년기에 누구보다 ‘멘토’가 필요했던 한 학생이었다.
“아버지가 사업하시다가 망해서, 청소년기 재정 상황이 좋질 않았어요. 대학 입시 때, 가정 형편을 생각해서 사립대보다 국립대를 가아겠다고 마음을 먹고, 경북대에 우등생으로 입학했거든요. 근데 막상 들어와서 보니깐 학교 장학금뿐만 아니라 국가 장학금도 있더라고요. 정말 하나도 몰랐어요. 제가 서울에 가고 싶은 사립대학도 붙었었는데, 이걸 알려주는 멘토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이런 방법들을 누가 알려줬다면, 더 제가 원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텐데 화가 났었죠. 그러다가 다시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아이들은 없을까? 내가 그 멘토가 되면 어떨까? 그렇게 20살 때부터 아이들은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마음 맞는 든든한 동료를 영입하자, 조직은 눈에 띄게 성장을 거듭했다. 대전은 카이스트, 울산은 울산과학기술대, 부산은 부산대, 광주는 전남대 등 전국 13개 대학에서 미담장학회 봉사단이 꾸려졌다. “지역 개척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녔어요. 봉사단 리더들과 광주 무등산 민박에서 하루 1만원짜리 숙박하면서, 매일 1000장씩 전단지를 뿌렸어요. 네트워크가 없다보니 정말 맨 주먹으로 나선거죠. 사람들이 모일지 몰랐는데, 방학 때마다 전국을 그렇게 다니니 봉사단이 꾸려지더라고요(장능인 이사).” 현재 연간 봉사자 수는 5000여명. 조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교육의 지역 격차를 해소하고 있는 셈이다. 단, 대학생 멘토 및 학생 선발 등은 지역 대학교 봉사단에 자율성을 부여해 재미있게 봉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 7년간 미담장학회를 거쳐간 학생들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서울 국제고에 다니던 한 친구가 있었는데, 갑자기 집이 어려워졌대요. 여름 방학 때, 인도에 있는 국제기구 인턴 활동을 해야하는데 돈도 없고, 대학교를 가야하는데 방법이 없으니 전국 200곳 장학회 홈페이지에다 다 글을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 중 한 곳이 미담이었어요. 이 학생 이야기를 듣고 미담장학회에 고액기부를 해주시는 분이 도와주셔서 이 친구가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수석으로 입학했어요. 벌써 지금은 3학년이예요.” 장능인씨는 미담장학회에서 직접 공부를 가르쳤던 학생뿐만 아니라 장학금으로 도와줬던 아이의 스토리까지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장씨는 “미담장학회를 거쳐간 멘티들의 70~80%가 대학에 진학해서 교육 봉사를 한다”면서 “아이들이 도움 받은 대로 남을 돕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동력”이라고 덧붙였다.
미담장학회가 주력하고 있는 것은 ‘공부 비법 전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김인호씨는 “대학을 잘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고 딱 잘라 말했다. “청소년에게 교육 멘토링을 하는 다양한 단체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상향평준화나, 일류 대학 입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대학만 간다고 다가 아니라는 것, 다들 알잖아요. 사실 대학에 가서 무엇을 배울지, 어떤 인생을 살지가 더 중요한 거죠. 입시 설명회에서 ‘우리 학교 커트라인이 얼마다’이런 걸 이야기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재학중인 선배들이 와서 ‘우리 학과에서는 이런 것들을 배운다’, ‘사실상 대학에 왔더니 예상과 다른 점은 이런 거더라’ 솔직하게 말해줄 진짜 형, 누나, 오빠, 언니가 필요하거든요. 저희는 입시생들 대상으로 하는 멘토링에선 진짜 학교 선배들이 와서 까놓고 다 말하거든요. 경북대 역사교육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지금 생활형 가수로 살거든요. 이런 친구들도 멘토로 모셔와요.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니깐요. 이런 장들이 많이 열려야, 청소년들이 인생에서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전= 김경하 더나은미래 기자
* 이 콘텐츠는 더나은미래와 열린책장의 ‘대전 사회적기업 현장 탐방기’ 프로젝트로 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