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시간이었다. 2025년 3월 22일, 경북 의성군 안평면에서 시작된 산불은 빠르게 한반도를 불태웠다.
성묘객의 실화로 추정되는 산불은 강풍과 건조한 날씨를 만나 안동, 영덕, 청송 등 인근 지역으로 빠르게 번졌다. 3월 28일 주불이 진화되기까지 산불은 149시간 동안 지속됐다. 이번 산불로 소실된 산림은 9만9490헥타르(ha). 여의도의 약 343배, 서울시 면적의 1.6배에 이른다.
산림청에 따르면 이 정도 규모의 산림이 생태적 기능을 완전히 회복하기까지 최소 30년에서 100년까지 걸릴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조림을 넘어 생물다양성과 토양 복원을 포함하는 장기적 과제가 됐다.
인명 피해도 컸다. 사망자는 총 28명으로, 대부분이 60~80대 고령자였으며 진화 작업 중 헬기 추락으로 조종사 1명이 사망하는 등 구조 인력의 피해도 일어났다. 부상자는 71명으로 집계됐고 이 중 다수가 대피 중 불길에 휘말리거나 구조 작업 중 사고를 당했다. 한반도에 불어닥친 말 그대로 ‘재난’이었다.
◇ 기후위기, ‘불타는 한반도’로 돌아오다
이런 대규모 산불 발생의 이면에는 기후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건조한 날씨와 강풍, 그리고 인간의 부주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국내 산불 피해 면적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2022년 삼척 산불은 약 1만 6000 헥타르(ha)의 산림을 태웠고 복구 과정에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시간이 소요됐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 면적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호주와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도 이례적인 규모의 산불을 비롯한 다양한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22년 보고서 ‘Spreading like Wildfire’에서 기후변화와 토지 이용 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산불의 발생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경제적 피해도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보고서는 극단적인 산불이 사람, 생물다양성, 생태계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강조하며, 이러한 산불이 기후변화를 악화시키고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증가시킨다고 지적했다.
통제하기 어려운 기후변화, 사악(Wicked)해지는 재난에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정부와 민간의 협력이다. 재난 상황은 정부 단독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불확실하므로 비영리기관, 자원봉사자, 기업 등 민간 부문의 참여와 협력이 중요하다.
2022년 삼척 산불 당시를 떠올려보자. 초기 정부 대응이 지체되는 상황에서 지역 비영리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신속하게 긴급 구호 활동을 벌였다. 전국재해구호협회, 대한적십자사, 아름다운재단과 같은 비영리 기관은 긴급구호와 이재민 지원에 발 빠르게 나서며 민관 협력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번 의성 산불에서도 같은 풍경이 반복되고 있다.
◇ 비영리, 사각지대를 메우다…‘회복탄력성’의 열쇠
재난은 피하기 어렵다. 재난 대응에서 중요한 것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단순한 피해 복구가 아니라,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응하고 적응하며 예방까지 아우르는 역량이다. 유엔 재해위험경감국(UNDRR)은 회복탄력성을 ‘재난의 영향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재난 위험을 예측, 계획 및 감소시키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학자들은 회복탄력성을 시스템, 공동체, 사회가 재난에 노출되었을 때 그 영향을 견디고 흡수하며 조정하여 필수적인 구조와 기능을 보존하고 복원해 그 이상으로 이끌어가는 능력으로 설명한다.
비영리기관은 이 회복탄력성의 핵심축이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보고서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례에서 지역 공동체 조직이 긴급 대응과 주민 심리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호주의 ‘센다이 프레임워크’는 정부·민간·비영리 간 협력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센다이 프레임워크는 정부 주도 아래 민간 기업과 비영리 단체가 재난 대응 전략 수립과 실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협력 모델을 구축하여, 지역사회의 재난 회복 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협력 모델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행정연구원(KIPA)도 최근 보고서에서 민관 협력 기반 강화, 정기 재난대응 훈련 프로그램 운영, 제도적 연계 필요성을 제언했다. 특히 법·제도 마련을 통해 협력 체계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름다운재단도 이번 경북 의성 산불 피해 지원을 위해 긴급 모금과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을 위해 찾은 현장은 생각보다 처참했다. 재난의 현장은 그저 ‘산불 피해 현장’이 아니라, 삶과 생명이 사라져 재만 남아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지원과 돌봄의 손길이 시급해 보였다.
앞으로 우리가 미래 사회에서 직면할 문제들은 더욱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문제는 더욱 사악해질 것이고 우리의 대응은 더욱 민첩하고 유연해야 한다. 비영리기관들은 재난 시 정부가 미처 손길을 뻗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긴급한 구호활동을 하며, 특히 사회적 약자와 취약 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 특히 비영리 부문의 협력을 통해 재난으로부터 더 강하고 회복력이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힘써야 한다.
재난은 피할 수 없지만, 우리의 대응은 달라질 수 있다.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필자 소개 아름다운재단에서 15년간 근속하고 2023년 내부선발 1호 사무총장이 되었습니다.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건강한 기부문화를 확산하는 아름다운재단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도록 전략적 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난제’가 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다자간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거버넌스에 대한 연구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