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미래 논단] 아동학대처벌법, 처벌보다 가족 지원 서비스가 우선이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4년 시도별 아동학대 현황(잠정치)’ 자료에 따르면, 작년에 아동학대로 판정된 사례 건수는 1만27건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은 것이다. 2013년의 6796건을 기준으로 보면 1년 사이에 거의 50%가 늘어난 수치다. ‘아동학대 보호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표현이 어색지 않을 정도다. 사실 2014년은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되고 ‘아동복지법’의 아동학대에 관련된 사항들이 개정되는 등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과 공적 개입이 대폭 강화된 해이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아동학대는 전년 대비 거의 50%가 증가했다. 이러한 결과는, 아동학대 문제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법만으로는 해결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동학대의 84%는 가정에서 일어나고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가 82%에 달한다. 아동학대에 대한 대책이 까다롭고 어려운 이유는 바로 아동을 돌보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부모가 학대 행위자라는 딜레마에 있다. 아동복지의 첫째 원칙은 안전하고 영속적인 가정이 아동에게 가장 바람직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둘째 원칙은 아동은 학대와 방임이 없는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원칙 간에 충돌이 있을 때 국가와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가 문제다. 아동학대를 ‘엄벌’한다는 차원에서 무조건 부모를 사법처리하고 아동을 부모로부터 격리 보호한다면 성장에 가장 이상적일 수 있는 가정을 아동으로부터 박탈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대로 놔두어서는 아동의 안전이 확보될 수 없다. 이 두 원칙의 긴장관계를 조화로운 균형의 관계로 이끌어내는 것이 아동보호 체계의 과제다. ‘처벌’과 ‘가족지원 서비스’가 균형을 이뤄야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삼성서울병원이 모금을 한다면?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하도 ‘한국식 병원 문화’를 꼬집는 기사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미국 병원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첫째딸을 한국에서, 둘째딸을 미국에서 낳았습니다. 한국 산부인과에선 9개월 내내 사람 많은 병원 복도에서 진료 대기를 해야 했고, 출산 당일이 공휴일인 바람에 주치의 대신 낯선 당직 의사가 제왕절개 수술을 맡았습니다. 마취가 되기 전 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술 후 김치찌개를 먹을까”라며 메뉴를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너무 불쾌해 병실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습니다. 9개월 동안 저와 배 속의 아이를 진료해준 의사와는 아무런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지요. 병원비가 싼 대신 ‘사람 대접 못 받는’ 서비스에 화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물론 산후조리원 비용이 비싸서 그리 싸다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반면 미국은 병원 가기 겁이 날 정도로 보험료가 비쌌습니다. 학생보험이었음에도 아이 낳는 데 500만원 넘게 들었습니다. ‘아~ 한국 의료보험이 최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하지만 서비스 하나는 최고였습니다. 의학 용어가 서툰 저를 위해 통역사가 늘 대기해 있었고, “낯선 미국 땅에서 혼자 출산하기 겁난다”는 한마디에 심리상담가가 따로 한 시간 넘게 우는 저를 달래주더군요. 산모 대기실도 1인용, 분만실도 1인용, 입원실도 모두 1인용이었습니다. 한국인 딸을 입양했다는 제 주치의와는 9개월이 지나자 친구가 되었습니다. “첫째는 제왕절개 했지만, 둘째는 자연 분만하고 싶다”는 제 말을 듣더니, 한국 병원의 진료 기록까지 받아보고 “한번 해보자”고 격려하면서 결국 해냈습니다. 저는 병원이나 의학 전문가가 아닙니다. 한국식, 미국식 의료 서비스의 장단점을

[더나은미래 논단] 강력한 나눔의 부메랑, 프로보노

경기도의 한 사회적기업 사무실. 브랜드 개발을 위한 직원들의 브레인스토밍으로 열기가 뜨겁다. “우리 기업을 생각하면 무슨 단어가 떠오르죠?” “고객들이 우리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요?”. 저소득층, 다문화가정 아동에게 사회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곳이 브랜드 아이덴티티(Identity)를 구축하기 위해 체계적인 내부 워크숍을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도전을 제안하고 이끈 사람은 누구일까. 광고 대행사에서 14년간 조사, 브랜드컨설팅, 광고기획을 하고 대기업에서 광고와 프로모션을 이끈 ‘마케팅 베테랑 프로보노’이다. 경력단절 여성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놀이교육을 전파하는 서울의 한 사회적기업. 이곳에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 있다. 직원도 아닌데 2010년부터 현재까지 사업 운영에 대한 코칭, 사업 목표 설정과 운영 전략 수립, 사업 평가 및 검토에 이르기까지 매 성장통을 함께했다. 그 덕에 매출도 많이 올랐다. 그는 컨설팅 회사, IT 회사들을 거치며 사업 전략과 기획 업무에 능한 ‘경영전략 베테랑 프로보노’다. 사회적기업이나 비영리조직들이 만약 이들 프로보노의 도움이 없었다면 고가의 비용을 내고 컨설팅이나 자문을 받거나 충분한 재원이 없어 그냥 문제를 안고 가다가 해결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프로보노(Pro Bono)라는 용어가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 의미는 앞서 사례에서 보는 그대로다. 자신의 재능, 기술, 지식을 활용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나 조직을 돕는 것이다. 원래 프로보노는 라틴어 ‘프로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 for the public good·공익을 위하여)’의 약어로, 주로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해 자발적이고 대가 없이 공공(사회)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표현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변호사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기부왕’ 보도가 한국엔 없는 이유

특정 이슈로 인해 사안의 본질이 왜곡되는 걸 보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의 1억4000만원 기부금 공방이 그중 하나입니다. 2013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시절 고액 수임료를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지요. 고액 수임료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기부금으로 ‘물타기’를 했던 황교안 후보자도 문제고, 그걸 청문회용 ‘타격 건수’로 잡은 정치권도 문제입니다. 순수하고 고귀한 ‘기부’의 본질을 흐리는 사회적 범죄 행위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닙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과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각각 재산 은닉과 비자금 조성 혐의가 드러나자 ‘사회 환원’을 약속하며, 삼성꿈장학재단(전신 삼성이건희장학재단)과 현대차정몽구재단을 만들었습니다. 8000억원이라는 엄청난 기부가 이뤄졌음에도 박수받고 환영받기는커녕 ‘기부가 면피용인가’라는 비판을 낳았습니다. 이런 뒤틀린 ‘면피용 기부’ 역사는 이후 줄을 잇는데,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 또한 대법관 퇴임 후 5개월간 번 16억원의 고액 수임료가 문제가 되자 “11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최근에는 30대 그룹이 설립한 35개 공익 재단이 핵심 계열사 지분을 다량 보유한 것을 두고, ‘공익 재단이 지주회사냐’라는 비판도 일고 있습니다. 공익 재단을 두고 ‘기부를 통해 사회문제 해결을 하는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르며 존중하는 선진국과 판이한 모습입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기부의 신화화’가 이뤄집니다. 김밥 장사 할머니가 평생 모은 한 맺힌 ‘큰손 기부’가 대서특필되고, 기부와 나눔을 통해 행복을 찾은 ‘개미 기부자’들의 사례가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됩니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기부 사례가 등장할수록, ‘기부는 아무나 하나’라는 정서가 차곡차곡 쌓입니다. 매년 미국에서

‘동물복지’의 더 나은 미래, 우리가 만듭니다

시민 1000명 2억원 출자한 국내 최초 협동조합 동물병원 유기견을 장애인 반려견으로 견공 만드는 유기견 훈련센터 입양 인식 바꾸는 행사도 열려 “작년 11월에 힘들게 찾아낸 장소예요. 조합원들이 가정집 형태의 동물병원을 원했거든요. 사랑방처럼 드나들 수 있어야 하니까요.” ‘우리동물병원생명 사회적협동조합'(이하 우리동생조합) 김현주 사무국장이 옅은 아이보리색 건물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50평짜리 주택을 1층 동물병원, 2층 애견카페로 개조한 모습이다. 김 국장은 “카페에는 우리 조합원 한 명이 들어와 있다”고 했다. 지난 4일 개원한 이곳은 국내 최초로 시민이 출자해 만든 협동조합 동물병원이다. ‘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아가자’는 미션으로 2013년 5월 우리동생조합을 설립했는데, 현재까지 조합원 954명(동물조합원 1743마리)이 출자금 약 2억원을 모으며 동참했다. 별다른 홍보 없이 ‘알음알음’으로 얻어낸 성과다. 김 국장은 “어제도 주변에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이 강아지와 함께 와서 조합원이 되는 등 주민들 관심이 생각보다 크다”고 했다. ◇의료생협처럼… 국내 최초 시민이 만든 동물병원 탄생하다 반려동물 인구가 늘고, 유기와 학대 등 동물복지 문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동물복지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자’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우리동생조합도 그중 하나다. “2012년 말에 마포구에 ‘의료생활협동조합’이 들어섰어요. 의사가 아니라 환자가 주인이 되는 병원에 대한 시민의 호응이 높았죠. 이후 ‘동물병원’도 그렇게 한번 만들어보자는 목소리가 나왔어요.” 김 국장의 설명이다. 특히 의료보험 체계가 없는 동물병원은 과잉 진료와 들쑥날쑥한 진료비에 대한 불평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었다. 마포 의료생협에 참여했던 협동조합 전문가를 시작으로 동물 애호가, 마을 활동가 등

“‘토이’를 만나고 딸아이 꿈도 수의사로 바뀌었죠”

안내견 후보 사회화 프로 ‘퍼피워킹’ 손지영씨 가족 시각장애인 안내견 후보 ‘토이’ 1년간 위탁 “가족간 대화 늘어… 장애인에 대한 시각도 변해” “빨리빨리!” 손지영(42·경기도 분당)씨의 말에 ‘토이(래브라도 리트리버·11개월)’가 ‘볼일’ 볼 채비를 한다. ‘빨리빨리’는 ‘이곳에서 배변을 하라’는 주인의 신호. 손씨는 “배변 훈련은 안내견이 되기 위한 기초적인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훈련”이라며 “이제 토이는 내 신호 없이는 아무리 급해도 참고 기다린다”며 기특해했다. 토이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지망생이다. 걸치고 있는 오렌지색 조끼에는 ‘안내견 공부 중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오는 9월이면, 안내견 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할 예정. 훈련을 통과해 장애인을 도울 수 있는 개는 10마리 중 3마리 정도. 한 해 배출되는 안내견도 기껏해야 10마리 내외다. 바늘구멍 같은 관문을 뚫기 위해선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람과 친해지고, 사회에 적응해가는 ‘퍼피워킹(Puppy Walking)’도 그중 하나다. 퍼피워킹은 생후 7주 된 안내견 후보들이 일반 가정에 1년간 위탁돼 사회화를 체험하는 특별한 과정이다. 위탁을 맡는 가정을 ‘퍼피워커’라 부르는데, 모두 무보수 자원봉사로 이뤄진다. 하우종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과장은 “서울·수도권에 거주하며, 집에 사람이 상주하고, 다른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집은 퍼피워킹을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목나영 안내견학교 훈련사는 “품행·사회화·배변활동 등을 교육시켜야 하는데 초반에는 가정 내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야외 훈련이 많아진다”고 했다. 토이가 손씨 가정에 들어온 지 어느덧 9개월. 토이 역시 바깥 생활이 늘었다. “아파트에 큰 개를 들이다 보니, 처음엔 부담도 많이 됐어요. 엘리베이터에 ‘안내견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는 강아지이니

[Cover Story] 반려동물 1000만 시대, 유기동물 보호소를 가다

“가족이 되고 싶어요” 주인 못찾거나 입양 안되면 안락사 한 해 유기동물 처리비용 100억원’유기견’ 편견에 입양도 꺼려 정부 지자체 보호소 90%가 위탁운영 전문성 떨어지는 사설보호소 난립 대규모 애견 번식장 90%가 무허가…싸게 분양받고 버리는 악순환 이어져 반려동물 인구 1000만명 시대다. 국민 5명 중 1명은 동물과 함께 산다. 동물보호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24년째요, ‘반려동물등록제’가 전면 시행된 지 3년째다. 국내에도 반려동물 복지가 정책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 해 8만 마리 이상 동물이 유기된다. 유기동물 입양과 안락사 등으로만 한해 100억원 이상이 든다. 전국 유기동물 보호소 368개는 제 역할을 못한다는 평가다. 일부 사설 유기동물 보호소(private animal shelter)는 법적 테두리 밖에서 불법 밀거래를 하기도 한다. ‘더나은미래’는 전국의 유기동물 보호소 4곳을 현장 르포 취재해 유기동물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여느 개들과는 조금 달랐다. 짖지도 반기지도 않았다. 진한 밤색 털에 하얀 콧잔등이 도드라졌던 ‘차돌이'(도사견·4년 추정)는 기운 없는 모습으로 견사(犬舍) 주변만 어슬렁거렸다. 왼쪽 허벅지 뒷부분엔 수술 흔적이 남아있다. “두 달 전 전라도 지역의 한 시(市)보호소에서 데려왔어요.” 이영숙 동물학대방지연합회 양주쉼터 소장이 말을 이었다. “다리에 종양도 있고, ‘심장사상충’도 있었지만 치료의 손길은 전혀 없었죠. 내버려뒀으면 안락사를 당했을 거예요.” 동물학대방지연합회는 유기동물을 구조·보호하고 입양으로 연결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다. 1999년 처음 설립됐고, 2003년 경기도 양주에 터를 잡았다. 현재는 ‘차돌이’와 같은 동물 140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지난 1일 오후에 찾은 이곳은 울타리 설치가 한창이었다. “새 식구를 맞이할

[더나은미래 논단] 사회적경제기본법, 기본이 가장 중요

더나은미래 논단 우리 사회의 커다란 문제 중 하나는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앞만 보고 달려 오느라 원칙과 기본은 무시되는 대신, 편법과 적당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서 배는 가라앉고, 다리와 도로는 무너지고, 사회는 나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다. 언제라도 무언가 터질 것 같은 불안한 사회이다. 그러다 한 군데서 터지면 서로 손가락질하면서 네 책임이라고 소리지른다. 잘못된 것이 본인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국회를 중심으로 ‘사회적경제기본법’이 추진 중이다. 날로 심각해져 가는 양극화와 사회문제로 공동체가 무너지는 가운데 지속 가능한 복지 확대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가 나선 것이다. 사회적경제 개념의 도입은 2007년 제정된 사회적기업육성법과 2012년 제정된 협동조합기본법에 이어, 우리 사회의 취약한 구조를 메워주는 매우 바람직한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새누리당에서 앞장서고 이어서 새정치연합과 정의당이 경쟁하듯 뒤따라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였다. 그런데 여당 원내대표가 발의하고 야당이 지원하는 이 법안이 상임위 소위원회도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정부도 법안 제정에 그다지 적극적인 것 같지 않다. 다분히 정치적인 동기에서 시작되었고 정치적인 이유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전 국민을 포용하지 못하는 자본주의와 경제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만들고, 우리 사회의 취약한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강한 의지와 철학보다는, 정치적인 동기와 고려가 더 앞서기 때문이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 가져다주는 결과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지연되고 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법의 제정이라는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법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공공·민간 협력 시스템으로 학대 아동 보호하는 선진국”

美·英 아동 보호 체계 우리나라보다 40년 먼저 아동학대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미국은 일찍부터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명확히 분담했다. 모든 학대 신고 접수·현장 조사·학대 여부 판정은 아동학대 관련 공공기관인 ‘아동보호국(CPS· Child Protective Service)’에서 이뤄지고, 가족 상담 및 치료 서비스는 민간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담당한다. 아동보호국을 통해 전체 신고 640만건 중 학대가 아닌 사례 61%가 걸러질 정도로(2013년 기준) 불필요한 현장 조사가 확연히 줄었다. 학대 판정을 받은 부모들이 상담 및 치료를 거부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등적 대응 시스템(Differential Response System)’을 마련한 것도 큰 특징이다. 학대 판정 시 사례별로 위험성을 진단해 ‘전통적 조사 방식(조사 및 법원 개입)’과 ‘대안적 방식(가족 서비스 중심)’ 등 두 가지 경로로 나누어진다. 후자에 배정된 가족들은 가정 돌봄·복지 서비스·병원 진료·상담·취업 알선·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해당 가족이 2주 안에 서비스를 다시 받는 비율이 높아졌고, 서비스를 받은 가족들의 학대 재신고율도 현저히 줄었다. 영국은 각 지자체의 사회아동돌봄부서가 아동학대 조사 및 서비스를 총괄하는 구조다. 경찰·병원·사회복지기관 등 다양한 기관들과 주기적으로 아동보호 회의를 한다. 아동보호 전략이 세워지면, 사례별로 이를 수행할 핵심 전문가와 가족 집단을 구성하고 모니터링한다. 지자체의 사회복지사가 아동에 대한 조사 및 서비스 전반을 결정하고, 각 서비스 기관들은 지자체의 요청에 협력하는 통합 시스템이 특징이다. 김기현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초창기 민간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현장 조사와 서비스를 전담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공공과

상처 보듬어 줄 전문가가 필요해요

아동학대 예방, 국가·민간 협업 방안은? 학대 신고·조사 업무 많아… 가족 기능 관리 어려운 경찰 현장 조사엔 국가 역할 강화… 상담·치료, 민간 기관 전담해야 서울시, 공공·민간 협업 구축 중 지난 6개월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8632건이다. 작년 대비 무려 2500건이나 급증했다.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특례법)’ 시행 이후 생겨난 현상이다. 신고를 받고 난 후, 경찰과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함께 현장 조사를 실시한 횟수는 5768건. 1년 전 380건에 비해 15배나 증가했다. 아동학대 상담 경찰은 3300명(지구대 경찰관 제외)에 달하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수는 7분의 1에 불과하다. 쏟아지는 현장 조사로 인해 정작 학대받는 아동을 위한 상담과 치료는 소홀해지고 있다. 이를 위한 해결책은 없을까. “아동학대특례법과 아동복지법 시행으로 아동보호 체계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 시점이 왔다. 학대 아동 보호를 위해 국가와 민간이 어떻게 역할을 서로 분담해야 할지 단계별 전략을 세우고 준비해나가야 한다.” 지난달 30일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5년 굿네이버스 아동정책포럼, ‘아동보호체계 개선 방안’의 주제 발표를 맡은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말이다. 이날 포럼은 국내외 아동보호 체계를 연구·분석한 교수진뿐만 아니라 복지부, 법무부, 경찰청, 아동보호 전문기관 등 민관이 함께 모여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 교수는 ▲아동보호 전문기관 내에서 현장 조사와 사례 관리를 분리·운영(1단계) ▲공공과 민간의 현장 조사와 서비스 전담 인력 확충 및 전문 서비스 모듈 개발(2단계) ▲공공과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협력 체계 구축(3단계) ▲공공의 현장 조사와 민간의 전문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비영리 리더, 남의 식구 이전에 자기 식구부터 돌봐야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워낙 숫자 개념이 부족한 제가 회계를 좀 알아보겠다고 읽은 ‘회계천재가 된 홍대리’라는 책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습니다. 흔히 신입사원들이 입사하면 사장님이 “여러분은 우리 회사 최고의 자산입니다”고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직원들은 ‘자산’인지 ‘비용’인지 모호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매달 직원 월급을 줘야 하니 비용이기도 하고, 직원 없이는 생산 활동을 해낼 수 없으니 자산이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CEO라야 직원 교육이나 복지에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걸 읽으면서, ‘신문사에서 기자는 자산일까, 비용일까’ 하고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본 일이 있습니다. 직장인들이 연봉이나 업무 강도, 기업 문화 등을 익명으로 평가하는 플랫폼 ‘잡플래닛’에 비영리단체 이야기가 이리도 많을 줄 몰랐습니다. 모금액 기준 상위 10개 비영리단체에 관한 평가만 받아보았는데, 놀라웠습니다. 상명하복, 끝없는 야근에 비해 야근수당 없음, 체계적이지 못한 업무 시스템, 직원에 대한 존중 없음, 위계 질서가 강해 군대 같음, 직원 존중도 없고 복지도 없음, 쥐꼬리 월급, 직원 헌신을 당연시하는 문화, ‘고인물’ 경영층, 주먹구구식 인사 시스템, 조직 내 소통 부재…. 경영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는데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람이 미래다” “사람 귀한 줄 알았으면 좋겠다” “직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 “직원이 행복해야 돌보는 아동도 행복해진다” 등 모두 비슷합니다. 반면, 비영리단체의 사무총장이나 리더들의 이야기는 또 다릅니다. “주말 근무도 싫어하고, 야근도 싫어하고 편한 직장 생활하러 온 건지 모르겠다” “20년 넘게 헌신해서 단체를 끌고왔는데, 후배들은 이제 와서 ‘고인물’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직원 수 1000명이

“흩어져 있던 착한 뜻이 우리 마을로 모였어요”

삼가분교 창고, 도서관으로 재탄생… 1인방송 ‘힐디오’가 크라우드 펀딩 개설 140여명 후원 참여해 도서관 개관… 군수 책 기증, 학생 독서 동아리도 결성 “여러분 안녕? 4개월 만에 삼가분교 가는 길 방송입니다.” 속리산 중턱, 구불구불한 1차선 도로를 운전하는 박상환(26)씨의 손길이 익숙했다. ‘우리가 보내준 책은 잘 읽고 있을까?’ ‘도서관 사진 많이 찍어 와.’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그의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 차창 밖 풍경을 보는 시청자들의 채팅도 분주해졌다. “오늘 삼가분교 도서관에 가면서 꼭 방송을 켜겠다고 시청자들과 약속했거든요. 제 방송을 보시는 분들이 직접 후원에 참여한 만큼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더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인터넷 방송국 ‘아프리카’에서 1인 방송 ‘힐링라디오(힐디오)’의 방송자키(BJ)로 활동 중인 박씨는 지난해 가을, 시청자들과 함께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충북 보은군 수정초등학교 삼가분교에 ‘오리날다 달빛도서관’을 세운 것이다. “상환씨 오랜만이야, 잘 왔어!” 차가 도착하자, 유중덕(56) 속리산산촌유학촌 사무국장이 학교 운동장에서 환한 미소로 그를 맞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삼가리 동네 수퍼 평상 위 막걸리 한 잔에서 시작됐다. 평소 책을 기부하고 싶었던 박씨가 대상지를 찾던 중 우연히 폐교 위기에 몰린 삼가분교의 사정을 알게 됐고, 2012년부터 마을 공동체를 조직해 삼가분교 살리기에 앞장섰던 유 국장과 의기투합한 것. 유 국장이 교내 비품 창고 건물을 도서관으로 바꾸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박씨가 창고 리모델링과 책 기부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개설했다. “60년 넘게 마을을 지켜온 삼가분교지만 매년 폐교 위기였습니다. 2013년에는 아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