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로 다시 쓰는 공익의 미래 <下>
1조 5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한 글로벌 시장 속, 한국도 공익투자 실험 본격화
“이제 공익법인도 돈을 쓰는 기관이 아니라, 자본의 선순환을 설계하는 기관이 돼야 합니다.”
김양우 수원대 특임교수는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소재 마루 180에서 열린 ‘공익법인의 다음 10년, ‘임팩트 투자’로 답하다’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자산운용사와 벤처캐피탈은 물론, 자선재단·패밀리오피스·연기금·보험사·정부 등 다양한 주체가 임팩트 투자 시장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금융(social finance)’의 경계가 확장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공익법인 역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사회적 금융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일정한 재무적 수익을 창출하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1조5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금융 수단도 마이크로파이낸스·지역개발금융기관(CDFI)·사회성과연계채권(SIB)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공익법인도 이런 구조를 이해하고, 새로운 길을 고민해야 사회문제 해결이 지속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김경하 더나은미래 편집국장은 미디어의 시선에서 본 사회적금융 확산 흐름을 짚었다. 그는 “임팩트투자 관련 보도는 2010년대 초반에 비해 현재 약 30배 이상 늘었다”며 “과거 ‘사회적기업’과 ‘CSR’ 중심에서 2018년 이후 ‘임팩트투자’와 ‘ESG’가 주요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민간 재단의 88%가 기관 차원에서 임팩트 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절반 이상이 이미 실행 단계에 있다”며 “공익법인도 담론의 확산을 실제 실행으로 옮길 때”라고 덧붙였다.
이어 “국내 임팩트투자 생태계도 여전히 단기 수익률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사회문제를 풀기 위해선 더 긴 호흡의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역할을 공익법인의 임팩트투자가 담당할 수 있다”며 “자본의 속도보다 사회적 변화의 시간을 따라가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사회투자는 이런 흐름을 국내에 도입한 대표적 기관이다. 이순열 한국사회투자 대표는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550억 원 운영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400여 개 기업을 육성했고, 존속률은 92%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는 “단순히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방식보다, 상환을 전제로 한 융자와 투자로 전환하면 자본이 순환할 수 있다”며 “공익법인이 이런 모델을 활용하면 자산을 소진하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사회투자는 실제로 ‘임팩트 융자’와 ‘단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해 사회주택, 지역순환경제, 청년 일자리 등 분야의 기업 성장을 돕고 있다. 이 대표는 “사회적 자금이 시장의 언어를 배워야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며 “기부는 한 번으로 끝나지만, 투자는 다음 세대를 위한 순환 구조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제도적 공백과 인식의 한계도 지적됐다. 최유진 초록우산 과장은 사회복지법인이 임팩트투자를 시도할 때 부딪히는 현실적 장벽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최 과장은 “정관에 ‘공익목적투자’ 항목을 추가하려 해도 주무관청 허가를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명확한 기준이 없어 쉽지 않다”며 “보건복지부에 사회복지법인 재무회계규칙에 공익목적투자 항목을 신설해달라고 제안했고, 현재 검토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동학대, 정신건강, 디지털 범죄 등 복합적 문제를 풀려면 지속가능한 자금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행사는 한국사회투자·한국비영리학회·법무법인 더함·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했으며,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마루180에서 열렸다. 세미나에는 기업, NGO, 공익재단, 미디어 관계자 등 70여 명이 참석해 ‘공익법인의 다음 10년, 임팩트투자로 답하다’를 주제로 사회적 금융과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