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3인방
툰베리 기후운동 연대 단체
120여 명 활동 전국구 시민단체로 성장
정부 기관·국회 등에 기후위기 대응 촉구
생존 위협하는 기후위기…개인 실천으론 역부족
“이 편지를 외면하면 당신은 ‘기후 역적’으로 역사 교과서에 남겨질 것입니다.”
지난 9월 22일. 제21대 국회의원들 앞으로 편지가 도착했다. ‘이 편지는 스웨덴에서 최초로 시작되어’라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편지에는 당장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여름에 땀띠를 달고 살고, 태풍을 타고 출근할 것’이라는 내용의 저주가 담겼다. 국회의원에게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행운의 편지’ 캠페인을 벌인 이들은 청소년 시민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이하 ‘청기행’)이다.
청기행은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주도한 기후운동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 for future)’의 공식 연대 단체로, 지난 2018년 출범했다. 출범 당시 5명에서 출발했지만 현재 120여 명이 활동하는 전국구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이들은 지난해 3월 서울 광화문에서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열었고, 올 3월엔 ‘정부의 소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이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지난 5월 서울시교육청의 ‘탈석탄 금고 선언’을 이끌어내는 데도 일조했다. 지난 7일 서울 광화문에서 청기행 활동가 김도현(15), 성경운(19), 윤현정(16)씨를 만났다.
―대한민국 정부, 국회 등 주로 ‘거물’을 압박하는 작전인가요.
성경운=기후위기는 개인의 실천만으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해요. 그걸 할 수 있는 곳이 국회와 정부니까요.
―’결석 시위’는 지금도 하고 있습니까.
김도현=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계속 못 하다가 지난 9월 25일에 처음으로 했어요. 저와 현정님을 비롯해 15명의 청소년이 국회 앞에서 피켓 들고 결석 시위를 했어요. 올여름 일어났던 50일이 넘는 장마와 태풍 피해는 기후가 비정상이라는 명백한 증거인데도, 결정권을 가진 기성세대는 쉽게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을 학교에 결석하게 한 셈이죠.
윤현정=울산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올해 태풍 피해로 온종일 학교가 정전됐어요. 이번엔 하루였지만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하면 이 불편함이 일주일, 한 달이 될 수도 있겠죠.
성경운=코로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시위는 거의 못했지만,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 청구를 했다는 것을 큰 성과로 보고 있어요. 아시아 최초의 기후 관련 소송이기도 하죠. 대규모 집회는 아니지만 지난 8월 19일 삼성전자 서초 사옥, 10월 5일 한전 본사 앞에서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수출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기도 했어요.
―청소년들의 시위나 기후 소송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김도현=어른들에게 ‘기특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런데 이제 기특하다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나요. ‘미성숙한 청소년이 좋은 일 하네’ 하는 식의 태도가 깔린 것 같아요. 이런 대우는 청기행뿐 아니라 모든 청소년 단체가 겪고 있는 차별이죠.
성경운=우리 기사에 악플도 많이 달려요. ‘애들이 뭘 아느냐’는 거죠. 이제는 무뎌져서 아무렇지도 않지만요. 그보다 기후변화 대응에 책임이 있는 기관들이 ‘우리는 잘하고 있다’는 식으로 변명할 때 더 무기력해져요.
윤현정=이번에 국회로 보낸 ‘행운의 편지’ 응답률만 봐도 우리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어요. 국회의원 15명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기한 내에 답장한 의원은 단 한 명이었어요. 굉장히 실망스러웠죠. 청기행이 국회의원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석탄 투자 금지 ▲신규 석탄 발전소 건설 사업 중단 ▲지구 평균기온 상승 최대 1.5도 달성을 위한 법 마련 등 구체적인 요구가 담겼어요. 청기행 홈페이지에서 ‘행운의 편지 보내기’를 클릭하면 누구나 국회의원들에게 행운의 편지를 보낼 수 있어요. 지금까지 시민들이 보낸 편지는 1530통 정도예요.
―올해 국정감사에도 청기행이 등장했다고 들었습니다.
윤현정=사전에 녹화한 영상으로 국감장에 나갔어요. 지난달 23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때 제가 청기행 대표로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석탄화력발전 투자를 멈춰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의 영상을 찍어 보냈어요. 애초에는 환경부 국감과 기재부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하려고 했는데, 상임위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영상으로 대체됐어요. 반대로 EBS 캐릭터인 ‘펭수’는 이번 국감에 참고인으로 채택됐었는데, 펭수가 출석을 거절했다고 해요. 청소년이 캐릭터만도 못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죠.
김도현=반대하는 이유를 알아봤는데 ‘국회는 정치를 논하는 자리라서 청소년 참고인은 안 된다’는 거였어요. 기후위기는 정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 아닌가요? 환경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태도가 아쉽습니다.
―고위 공직자들을 만날 기회도 많았죠.
김도현=지난달 15일에 유은혜 교육부 장관과 간담회가 있었어요. 전국 11개 시도 교육청에서 잇달아 ‘탈석탄 선언’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요구하는 탈석탄 관련 얘기가 오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환경교육이나 학교숲 같은 교육부 정책을 홍보하는 자리였어요. 이용당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성경운=우리가 기대했던 대화가 아니라서 답답한 마음에 온실가스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 자리에 있던 한 고위공직자가 “온실가스 줄여서 기후문제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아요?”라고 우리에게 되물었어요. 그 말을 듣고 다들 너무 놀랐어요. 기후위기에 대한 공포감이 우리 세대와는 전혀 다르다고 느꼈어요. 실망스러웠습니다.
―청기행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성경운=기후위기 대응은 앞으로 10년이 중요해요. 이번 21대 국회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법을 만드는 시작점이 될 겁니다. 국회나 정부가 선언에 그칠 게 아니라 법을 만들고 시스템을 바꿔나가도록 지속적으로 촉구할 생각입니다.
윤현정=제가 4남매의 맏이인데요. 막내가 지금 아홉 살이에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온실가스를 45% 감축해야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어요. 막내에게 꿈꿀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김지강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rive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