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발암 물질에 빗물까지 줄줄… 낡은 지붕에 새 옷 입히니 마을에 활력

노후 슬레이트 지붕 개량 지원사업
석면 지붕, 발암 물질 나와 사용 전면 금지
정부 지원에도 전국 64만동 주택 교체 못해

사회복지협의회·주택도시보증공사 ‘민관 협력’
진안군, 새뜰마을 산업 선정… 마을활성화 진행

지난 17일 지붕 교체 공사를 하루 앞두고 김윤자 할머니 자택에서 만난 김 할머니와 담당 사회복지사 김희녀씨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진안사회복지협의회는 지난 10월부터 연구1동과 중앙1동 일대 네 곳의 노후 주택 지붕 교체 사업을 진행했다. ⓒ진안=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딸이지, 딸. 잘 지내나 들여다봐 주고, 집도 고쳐 주고. 이 사람이 안 도와줬으면 평생 이 슬레이트 지붕 밑에서 살았을 거야.”

지난 17일 전북 진안군. 김윤자(82) 할머니가 검게 녹슬어 버린 자택 지붕을 가리켰다. “뉴스에서 발암 물질이 나온다는 걸 듣기는 했지만 정부 보조금으로 먹고사는 형편이라 포기하고 살았는데, 고쳐 준다니 고마울 뿐”이라며 사회복지사 김희녀(55)씨의 손을 쓰다듬었다. 김 할머니는 최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지원을 받아 진안사회복지협의회가 진행하는 ‘노후 슬레이트 지붕 개량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됐다. 이튿날 시작된 지붕 공사는 사흘 만에 마무리됐다. 할머니는 “깨끗하고 예쁜 지붕도 덮었으니 100살까지 살아도 되겠다”며 웃었다.

농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슬레이트 지붕은 석면과 시멘트를 섞어 만든 얇은 판으로 제작됐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하나로 진행된 농촌주택 개량 사업을 통해 전국 농가에 보급됐다. 내구성과 단열성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데다 정부 지원금까지 나와 당시 너도나도 슬레이트 지붕을 설치했지만,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석면을 ‘1급 발암 물질’로 지정하면서 2009년부터 국내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이후 정부가 매년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슬레이트 교체 작업을 진행해 왔지만, 속도는 더디다. 2009년 당시 환경부 조사 결과 농가 주택의 37.9%가 슬레이트 지붕을 사용하는 것으로 발표할 정도로 널리 퍼져 있는 데다, 교체 대상 농가 거주민 대다수가 김 할머니와 같은 독거 노인이거나 저소득층이라 최소 수백만원이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 전국 각지에 남아있는 슬레이트 지붕은 약 64만2916동. 환경부는 2030년까지 모든 슬레이트 지붕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2020년부터 관련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내년 슬레이트 지붕 교체 예산은 671억원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농어촌에 미등록 건물이 많아 슬레이트 지붕 수를 파악하기 어렵고 동당 교체 비용이 커서 작업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와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슬레이트 지붕 철거에 직접 나선 것도 ‘민관 협력’으로 더딘 교체 작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교체가 시급한 주택을 선별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지붕 공사에 드는 농가 부담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 사업을 통해 지난 8월부터 전국적으로 120세대를 대상으로 슬레이트 지붕 교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총 예산은 10억원이다.

전북 진안의 경우 4가구를 선정해 지붕 교체를 완료했다. 송상모(75) 진안사회복지협의회장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나오는 지원금을 마을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며 “어떤 가정에 먼저 혜택을 줄지, 기존 지원금으로는 진행이 어렵지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어떻게 메울지 등을 세심히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슬레이트 지붕 개량 사업을 하면서도 수차례 주민간담회를 진행했고, 수혜 가정 선정에도 주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송 회장은 “전체 예산은 정해져 있지만 가정마다 집 연식이나 형태가 다양해 추가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서 “이때 우리 협의회 자체 예산을 매칭하거나, 주민이 추가 자재 비용만 내면 함께 공사를 진행하도록 업체와 협의하는 등 작은 부분까지 살폈다”고 설명했다.

진안사회복지협의회는 슬레이트 지붕 개량 사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마을 활성화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 8월 진안군 연구1동과 중앙1동 지역이 국토교통부의 주거 취약 지역 생활여건 개선사업인 ‘새뜰마을 사업’에 선정됐기때문이다. 지붕 교체도 마을활성화 사업이라는 큰 틀 안에서 진행 중이다. 이재덕(59) 진안사회복지협의회 주민돌봄센터장은 “한 사업이 마을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주민과 신뢰를 쌓는 게 먼저라는 생각으로 소통하고 있다”면서 “내년부터 새뜰마을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더 많은 사람이 마을의 변화를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안=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