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소셜벤처 공모전 봇물… 창업가 갈증 제대로 풀어주나

바야흐로 소셜벤처 창업 열풍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소셜벤처가 모인 서울 성수동을 방문한 데 이어 최근에는 소셜벤처 지원으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부 방안까지 나왔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5월 일자리위원회에서 1200억원 규모의 ‘임팩트 투자 펀드’를 조성해 우수 소셜벤처들의 창업자금을 최대 1억원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높아진 관심을 반영하듯 소셜벤처·사회적경제 조직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과 지원사업도 많아졌다. 현재 운영 중인 주요 공모전 및 지원사업만 18개, 이 중 올해부터 시작된 공모전만 무려 5개다. 지원 사업의 수도, 지원금의 규모도 역대 최고치다. 더나은미래는 ‘소셜벤처 창업 공모전 전성시대’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짚어봤다.

◇소셜벤처 공모전 모아보니…올해 신규 사업만 5개

현재 소셜벤처 공모전의 양대 산맥은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정몽구재단의 ‘H-온드림 사회적기업 창업 오디션(이하 H-온드림 오디션)’과 LG전자·LG화학의 ‘LG 소셜캠퍼스(이전 ‘LG소셜펀드’)’다. 지원 규모만 기업당 각각 1억원, 5000만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 공모전이다. 2012년 시작된 ‘H-온드림 오디션’은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참가하는 창업팀 또는 창업 3년 이내 초기 단계의 기업과 성장·성숙기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이다. 수익금의 일부를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데 기부하는 디자인 브랜드 ‘마리몬드’,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두손컴퍼니’를 포함해 지금껏 총 150여 개 창업팀이 사업비 지원금과 심화 인큐베이팅 등을 받았다. 지난 5년간 현대차가 공모사업에 지원한 자금만 총 260억원에 이른다.

지난 2011년부터 LG전자와 LG화학은 매년 각각 10억원씩 출자해 친환경 분야 사회적경제 조직을 지원하는 ‘LG 소셜캠퍼스’를 운영한다. 설립 3년 미만, 연 매출 4억원 미만인 초기 단계 팀에 최대 5000만원을 지원하고, 액셀러레이팅 단계의 기업에는 기업당 최대 1억원을 무이자로 대출해준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100여 개 창업팀에 약 130억원을 지원했다.

10년 이상 자리를 지켜온 공모전계의 터줏대감도 있다. 2006년 시작된 최장수 공모전 ‘아시아 소셜벤처 경진대회(이하 SVCA)’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소셜벤처 경연대회’다. 특히 SVCA는 올해부터 하나금융그룹의 ‘하나 파워 온 챌린지 앙트프러너 프로그램’과 협력하며 약 4개월간 총 20팀에 1억6000만원의 지원금과 맞춤형 자문, 유통 판로 연계 등을 지원한다. 올해로 10년차를 맞은 소셜벤처 경연대회는 수상팀에 총 2억원의 규모의 상금과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참가권을 부여하며 사회적기업 창업 입문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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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15년 이후로는 공모전과 지원사업이 눈에 띄게 늘었다. 조사 대상 공모전 18개 중 13개가 2015년 이후에 생긴 공모전이었고, 매년 2~3개씩 공모전이 새로 생겨났다. 특히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이 2013년 ‘사회적기업 We star 발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IBK기업은행(‘소셜UP! 희망UP! 프로젝트’), KB국민은행(‘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회 혁신 프로젝트’), 하나금융그룹(‘하나 파워 온 챌린지 앙트프러너 프로그램’) 등이 연이어 뛰어든 모양새다.

지난해부터는 공기업·공공기관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CTS(Creative Technology Solution)’,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LH 소셜벤처 창업지원·성장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CTS는 개발도상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사업을 대상으로 최대 3억~5억원의 사업비를 지원한다. 지금껏 총 33개 사업이 베트남, 케냐 등 세계 각지에서 론칭됐다. LH는 3년 이내 창업팀 및 청년 사회적기업가를 대상으로 최대 5000만원의 창업 자금을 지원해 성장을 돕는다.

올해는 무려 5개의 공모전이 첫발을 뗐다. 초기 또는 예비 창업팀으로 포괄해 지원했던 이때까지와 달리 분야별로 특성화된 것이 특징이다. 메트라이프(Metlife)의 ‘인클루전 플러스(Inclusion Plus)’, HSBC은행의 ‘HSB(Helping Sustainable Business)’, GS홈쇼핑의 ‘소셜 임팩트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메트라이프 ‘인클루전 플러스’는 금융 및 경제 솔루션 경진대회로 창업 5년 이내의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경제 조직 등에 최대 5만달러를 지원한다. HSB는 패션 분야의 소셜벤처를 대상으로 기업별 최대 300만원의 프로젝트 지원비와 자원 연계 등을 제공하며, 소셜 임팩트 프로젝트는 미디어·커머스 분야의 소셜벤처 발굴을 위해 7개월간 창업 교육과 최대 6500만원의 사업 지원비를 차등 제공한다. 공기업 중에서는 한국수자원공사가 댐 매점 임대료의 일부인 3억원을 사회적기업 성장기금으로 마련, ‘사회적기업 지원 공모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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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최다 수상자들 “도움 되지만 무작위 지원은 경계해야”

도전의 기회가 늘어난 만큼 소셜벤처 및 예비 창업자들 사이에서도 공모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모전 방식이 실제로 소셜벤처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느냐는 의문도 있다. 필요와 무관하게 상금만을 좇는 ‘공모전 헌터(사냥꾼)’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과연 어떨까. 더나은미래는 최근 3년(2015~2017)간 주요 공모전·지원사업(총 13개) 가운데 다수의 공모전에서 입상한 기업들을 조사했다. 최다 수상(네 번) 기업은 ㈜루미르㈜케이오에이, ㈜프로젝트노아(닥터노아) 총 3곳이었고, 이어 ㈜동구밭, ㈜두손컴퍼니, ㈜모어댄, ㈜이지앤모어, ㈜코끼리공장 5개 기업이 총 세 번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 이상 선정된 기업은 총 30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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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 기업의 대표자들은 “공모전이 창업 아이템이나 사업 모델을 평가받고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방탄소년단 RM백으로 유명세를 탄 모어댄의 최이현 대표는 “2016년 100개를 생산했던 첫 제품이 3일 만에 품절되면서 당장 대량생산보다도 사업 모델을 재정비하고 평가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면서 “공모전에 도전하면서 사업 모델을 정교화했고 제품을 알려 오리지널리티(독창성)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원금은 사업 초기에는 시드 머니(seed money) 역할을, 이후에는 성장 단계마다 필요한 동력이 됐다. 대나무 친환경 칫솔을 만드는 닥터노아의 박근우 대표는 “현존하는 대나무 칫솔을 만드는 기술이 저열한 수준이라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며 “창업 후 매출 없이 2년을 버텨야 했는데 외부 지원금이 없었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기업들의 공모전은 관(官)의 지원에 비해 유연하고 인적·물적 자원도 풍부하다. 생리컵 등 월경 제품을 제작·판매하는 소셜벤처 이지앤모어의 안지혜 대표는 “사업 특성상 제품 촬영이나 영상 콘텐츠 등을 만들 기자재가 필요했는데, 지원금을 필요한 영역에 쓸 수 있고 서류 절차도 비교적 유연해 좋았다”면서 “원하는 컨설팅을 이야기했더니 기업에서 어떻게든 알맞은 전문가를 찾아 붙여준 것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반면에 우려와 아쉬움도 존재했다. 공모전 방식이 일회성에 그쳐 기업의 성장과는 괴리되는 부분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공모전 헌터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장난감을 수리·소독하는 사회적기업 코끼리공장의 이채진 대표는 “간혹 상금을 노리고 잘 포장된 사업 계획서로 상을 받는 기업도 있다”면서 “기업들의 ‘사회적 가치’ 성과를 제출하거나 증명 자료를 받는 식으로 검증 과정이 강화되고 투명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셜벤처의 대표는 “최소한의 목적성 없이 상금만을 보고 무작위로 지원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며 “먼저 공모전이나 지원사업을 통해 사회적 자본을 받은 팀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성과를 내야 창업 생태계도 건강하게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혜연·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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