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는 공공기관.’

문재인 정부가 선정한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국정자문위원회는 인권ㆍ안전ㆍ환경 및 양질의 일자리 등 사회적 가치를 적극 실현하도록 공공기관을 운영하며, 2019년부터는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공공기관 경영평가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국회도 움직이고 있다. 지난 10월 26일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이하 사회적가치기본법)’이 1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있다. 

사회적가치기본법은 총 20개조로 사회적 가치의 실현에 필요한 기본적 사항을 담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사회·경제·환경·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로 정의하고(제3조 제1호), 공공기관이 정책 등을 수행할 때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제4조)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 소속의 ‘사회적 가치위원회’ 설치나 공공기관 내 ‘사회적 가치성과평가’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사회적가치기본법 속 '사회적 가치' 의 13가지 세부 조항은?

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기본권리로서 인권의 보호

나. 재난과 사고로부터 안전한 근로 생활환경의 유지

다. 건강한 생활이 가능한 보건복지의 제공

라. 노동권의 보장과 근로조건의 향상

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회제공과 사회통합

바. 대기업, 중소기업간의 상생과 협력

사. 품위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

아. 지역사회 활성화와 공동체 복원

자. 경제활동을 통한 이익이 지역에 순환되는 지역경제 공헌

차. 윤리적 생산과 유통을 포함한 기업의 자발적인 사회적 책임 이행

카. 환경의 지속가능성 보전

타. 시민적 권리로서 민주적 의사결정과 참여의 실현

파. 그 밖에 공동체의 이익 실현과 공공성 강화

사회적경제기본법, 사회적경제활성화를 위한 구매촉진 및 판로 지원법(공공기관 판로지원법) 등 관련 법안들의 제정 움직임도 활발한 상황. 이에 지난 20일,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국정어젠다의 의미와 향후 과제 및 사회적경제조직과의 상생방안에 대한 토론의 장이 열렸다. 사단법인 스파크가 주최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 어떻게 할 것인가-사회적경제와 상생방안을 중심으로’ 포럼에서다. 

이날 행복나래에서 개최된 행사는 학계, 공공기관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양동수 변호사(사회적경제법센터 더함 대표)가 주제 발표로 포문을 열었다. 양 변호사는 “사회적 가치와 관련한 다양한 입법이 진행될 예정이고, 공공을 넘어 민간과 사회적경제조직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관련 논의 현황과 개선방안 등을 자세히 논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행복나래에서 열린 포럼 현장. ⓒ스파크

 

 

◇사회적가치기본법 발의…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실현 방안은?

 

“국제사회에서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는 기존에도 있었고 제도화돼 정착했습니다. 유럽연합(EU)은 ‘사회책임조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행 중이고, 독일의 ‘경쟁제한법’, 영국의 ‘사회적 가치법’ 등 조달 측면에서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양동수 변호사는 “지난 10년간 공공부문에서 사회적 가치나 공공성에 대한 논의는 굉장히 잠잠했고 지체됐다”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이 가장 먼저 공공성과 연대성, 사회적 가치 지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사회적가치기본법이 그 첫 걸음이 될 수 있을까. 양 변호사는 “법 제4조는 공공기관이 정책을 수행할 때, 첫 단추부터 마지막 단추까지 13가지의 사회적 가치 항목을 고려하며 사업을 수행하라고 한다”며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어마어마한 법”이라고 말했다. 중앙부처부터 지자체 출연기관까지 공공부문의 거의 모든 기관을 공공기관으로 규정(제3조 제2호)한 것도, 기관장이 정책 수행 과정에서 조달 관련, 국가계약, 지방계약, 민간위탁, 투자 등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민간부문의 수주 기회를 우대할 수 있다고 명시(제5조)한 것도 그렇다. 

이어 양 변호사는 구체적인 사회적 가치의 실현 방식과 작동구조, 사회적경제와의 연계방안도 소개했다. 그는 “공공-사회-민간이 협력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PSPP(Public Social Private Partnership) 협치형 프로세스가 만들어져야 하고, 예산, 인사, 조직, 공공기관 운영 등에 사회적 가치를 내재화할 수 있는 조직문화 및 운영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사회적경제기본법, 공공기관 판로지원법이 반드시 같이 통과돼야 하며, 평가를 비롯한 공공 부문의 제도 일반이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국가계약, 지방계약, 공유재산 및 민간위탁 등에 관한 정부 제도들은 개선안이 만들어지고 있고, 실질적으로 사회적 경제 조직들에 가산점이나 이익을 주는 내용이 굉장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달을 포함한 공공부문 영역이 민간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에, 공공이 사회적가치를 표방하면 결국 사회적 경제 조직에게도 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주제 발표 중인 양동수 변호사. ⓒ스파크

 

 

◇학계·현장·기업 목소리 등…참가 패널들 토론 이어져

 

2부 토론에는 김재구 스파크 대표를 좌장으로, 윤태범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와 라영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박사가 공공기관의 사회적가치 실현방안의 방향과 평가를, 사회적 경제 입장에서는 김영식 서울사회적경제네트워크 사무국장과 이철종 함께일하는세상 대표가 패널로 나섰다. 최근 사회적가치 실현을 경영전략으로 수립·추진하고 있는 SK그룹의 정현천 SUPEX추구협의회 사회공헌팀 전무도 토론 세션에서 SK의 사회적가치 추진전략을 공유했다. 토론 현장에서 나온 주요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윤태범 교수= 새 정부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회복’이다. 공공기관이 사회적 가치 실현으로 ‘공공성’의 가치를 복원하고자 나선 배경이다.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100점 만점에 40~50점대를 벗어나지 못 할 정도로 낮은 것도 한 몫 했다.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복원하고, 공공기관의 설립 이유인 ‘경제 발전 기여’와 ‘공공 서비스 제공’을 사회적 가치와 연계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불과 얼마전까지 공공기관들은 ‘우리 존재 자체가 사회적 가치의 실현 아니냐”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하지만 여전히 파견근로자가 많고 ‘을의 직원은 갑에 소속된 직원들에게 모두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등 상상할 수 없는 계약서 조항도 있다. 미래에는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사회적 가치에 기여하지 못해 사라지는 공공기관이 많을 것이다. 존속을 가르는 중요 기준으로서, 얼마나 사회적가치에 충실한 경영이 이뤄지는가로 평가 받게 될 것이다.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정부 정책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공공기관은 정부 정책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무부처의 정책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공공기관의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다. 사회적가치 관련 기본법 13가지 조항 하나하나도 중요하나, ‘공공기관이 시행하는 주요 핵심 사업의 방향전환’ 이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이것이 전환되지 않으면, 13가지 조항은 피상적일 수 있다.

 

라영재 박사=공공기관이 경제적 가치나 수익성 중심의 효율적인 운영은 잘 해왔으나, 조직 내 사회적 약자, 지역 사회 발전 등에 기여를 소홀히 했다는데 대해서는 반성과 성찰의 여지가 있다. 이번 사회적가치기본법은 다소 효율성을 침해할지라도, 공공성과 조화로운 내용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협력업체와의 관계나, 사회적 경제 조직 등과의 관계 등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만 모든 것을 평가로 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평가는 관리수단의 마지막 수단일뿐, 공공기관의 설립목적이나 정책 전환이 훨씬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주제 발표 때 나온 입법 과제와 정책 과제들이 일차적 급선무다. 다만 정부의 일방적 추진이 아닌, 상호작용할 때 국가와 사회공동체 내에 사회적 가치가 더 잘 반영될 것이다. 위에서부터 실제 현장에 있는 공무원까지도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기본법 제정에는 동의하나 기본법을 바꿔도 다른 법에 들어 있는 ‘사회적 가치’들의 변화를 모두 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들의 개정이나 정책적 변화도 같이 가야 한다. 개별입법에서 독소조항이 가지는 문제점이나 사회공동체를 중시하지 않는 효율성·경제성 중심의 운영을 개정하고 연계된 많은 사업들도 연동돼 함께 바뀌어야 한다.

 

김영식 사무국장=공공기관이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길이 열리면 사회적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사회적 가치가 경제운용의 중요 기준이 될 때, 사회적 경제의 운영 원리인 호혜, 상생, 협동 등이 전면에 나올 수 있다. 내용이나 방향, 방식은 다를 수 있으나, 공공영역과 사회적 경제 조직은 가치지향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면이 있다. 

사회 책임 조달이 본격화되면 사회적 경제 조직들에 기회가 열릴 것이라 본다. 사회적 가치의 평가를 위해서는 가치가 무엇인지 규정하고 이를 평가하는 규정 등도 개발돼야 할텐데, 이것이 활성화되면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각자 만든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고 알릴 수 있기에 조직에게도 보탬이 되리라 본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경제 영역이 만들고 있다고 ‘주장’해온 사회적가치에 대해 평가를 받게 되기 때문에 큰 도전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가치를 더 건강하게 실천할 수 있도록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도 많이 노력해야 한다. 

사회적가치의 정의와 범위는 다양하고, 적용하는 맥락에 따라 굉장히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에, 이를 정책과정에서 구현하고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 민관협치도 중요할 것이다. 정부 주도로 가치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시민사회 및 민간과 계속 소통해가며 어떤 가치가 구현돼야 하는지 끊임없이 파악하고 이를 장기간 과제로 실천해야한다고 본다. 공공기관의 기본법이다보니, 사회적 가치 실현이 ‘사회적 경제 조직들과 협력 사업하면 된다’고 보는 곳도 있는데 그것은 ‘아니다’. 

 

이철종 대표= ‘공공과 사회적 경제 영역이 콜라보해야한다’는 이야기는 계속 나오는데, 현장에서는 녹록지 않다. 작은영화관협동조합의 ‘작은영화관은 20여개로 늘어나며 자립 가능한 사업이 됐지만, 가능성을 본 영리에서 뛰어들고 있다. 서울여성프라자의 ‘오요리아시아’는 유기농 식자재를 활용하고, 다문화 여성들에 직업기회를 제공해왔는데, 정부의 ‘최고가 입찰’ 지침에 의해 영리와의 가격 경쟁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우누리 사회적협동조합은 요양보호사들에게 공공시설에 비해 높은 처우 수준을 제공하다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간신히 재위탁 이사회를 통과했다.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공공사업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 걸림돌을 만드는 것은 기존 공공의 제도나 지침들이다. 특히, 집행하는 말단 공무원들은 시·도·중앙정부의 감사에 치여 어떤 것도 벌이려고 하지 않는다. 막상 일을 벌인 공무원이 감사에서 지적 대상이 되고 방어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회적 경제 수의계약 제도’를 이야기하나, 감사제도에 대한 세부지침이나 규정 전환 없이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지침만으로는 담당 하위 공무원들이 사회적 경제 조직들과 계약할 수 없을 것이다.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각 부처에서 가진 예규, 지침, 집행기준 등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고선 어떤 것도 작동 안된다. 하위 관료들이 마음 놓고 적극성을 발휘하도록 장려, 칭찬해주는 제도와 지침들은 물론, 패널티를 작동시키는 감사기준도 변화해야 한다. 기본법뿐 아니라 국가계약법, 지방계약법,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등을 정비해 간다면 공공부문 사회적 가치 실현이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서 성과를 보일 것이다.

 

정현천 전무= ‘민간 영리 기업이 왜 사회적 가치에 관심을 가지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각종 기술의 발전과 정보 공개로 기업도 고유하고 대체불가능한 영역이 줄고 있다. 기업이 계속 변화하고 새로운 영역과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단순히 ‘좋은 일 하겠다’로 설명하긴 부족하고, 결국 기업의 존속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SK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사회적기업들이 창출하는 가치를 측정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더 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제도다. 사회적 가치의 측정을 중요하게 본다. 결국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측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가치는 범위의 폭이 넓고, 정의하기 어려운데다 한 가지 수단으로 측정했을 때는 우리 시야를 좁힐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그럼에도 측정하려는 시도는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대해서도, 합의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 측정 수단을 만드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공론화의 장과 정보 인프라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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