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옷걸이 사업을 3년 했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B2B(기업 간 거래)로 주문을 받다보니, 일거리가 들쑥날쑥했습니다. 물량이 많을 때는 한 달에 노숙인분들이 100명가량 옷걸이 제작에 참여했지만, 없을 땐 또 하나도 없었어요. ‘얼마’를 버는지도 중요하지만, 꾸준한 일거리도 중요하거든요. 간간이 버는 돈으로 술을 드시거나, 경마장에 가기도 했고….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데는 임팩트가 없었습니다.”(박찬재 두손컴퍼니 대표)
2012년부터 연예인 옷걸이, 디즈니 캐릭터 옷걸이 등으로 주목받은 소셜벤처 두손컴퍼니는 주요 사업 분야를 ‘제조업’에서 ‘물류업’으로 바꿨다. 기업 홍보 문구나 홍보 모델 등을 새긴 옷걸이 판을 기업·단체로부터 주문받아 쉼터의 노숙인들에게 제작을 맡긴 게 기존 사업 모델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B2B 방식으로는 노숙인을 안정적으로 채용할 수도 없었다. 두손컴퍼니의 미션인 ‘일자리로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것’ 또한 실현이 어려워 보였다. 그러다 우연히 시작한 게 소셜벤처 ‘마리몬드’의 물류 대행 사업이었다. 마리몬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꽃 작품을 이용해 휴대폰 케이스, 가방, 노트, 텀블러 등을 만드는 패션 브랜드로 아이돌 ‘수지’가 든 휴대폰케이스로 유명해진 소셜벤처다.
박 대표는 “물류업은 거래가 일어나면 수작업이 무조건 발생하게 된다”면서 “옷걸이 회사가 아닌 일자리를 만드는 회사로서 적합한 모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텀블벅, 와디즈 등 크라우드펀딩 업체와 협약을 맺고 물류사업을 대행, 사업과 일자리 규모도 늘려나갔다. 18평짜리 창고에서 시작한 사업은 2년 만에 495㎡(150평) 규모 2곳, 231㎡(70평) 물류센터 1곳으로 확장됐다. 현재 두손컴퍼니에서는 23명의 노숙인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약 15억원, 두손물류센터를 이용하는 고객사는 50여 개가 넘는다.
“2년가량 3000종이 넘는 제품의 물류를 담당하다보니, 정보가 어마어마하게 누적됐어요. ‘어떤 색상이 어떤 유통 채널에서 잘 팔린다’ 등 고객사별로 맞춤화된 정보를 도출할 수 있죠. 작년 말에 ‘창고 대방출’이라는 쇼핑몰을 시범 버전으로 만들어봤는데, 한 고객사가 6개월에 걸쳐 판매했던 물량을 두 달 만에 다 팔았어요. 올해도 물류 스타트업으로서 혁신적인 모델들을 만들어낼 겁니다.”
◇제조업에서 물류, 모금 플랫폼에서 콘텐츠 회사로… 소셜벤처들의 변신
1세대 소셜벤처들이 제2의 도약을 하고 있다. 슛포러브라는 캠페인 이름으로 더 유명한 소셜벤처 ‘비카인드’도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4일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마라도나가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 앞에서 열린 슛포러브 챌린지에 참여했다.
슛포러브는 2014년 비카인드가 시작한 소아암 환자를 돕는 축구 기부 캠페인으로, 지금까지 참여한 국내외 유명 축구선수와 연예인은 80명이 넘는다. 박지성, 안정환, 이천수 등 국내 선수뿐 아니라 FC바르셀로나의 대표 수비수였던 카를레스 푸욜, 브라질의 유명 축구 스타 카카 등도 참가했다. 선수들은 축구공을 차 1점부터 10점까지인 10m 앞의 과녁을 10번 맞힌다. 축구공으로 양궁 과녁을 맞히는 것이다. 만점은 100점이고, 1점당 1만원의 기부금이 적립된다.
스타들이 슈팅을 하면 점수만큼 후원사가 기부금을 낸다. 지금까지 자생한방병원, 국내 게임회사 플레이독소프트 등 파트너사와 유명인들이 참여해 ‘슛포러브’ 챌린지로 2억원을 기부했다.
비카인드가 처음부터 축구 캠페인을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 2012년 창업 당시에는 ‘IT 기술로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겠다’며 모금 플랫폼을 개발했다. 비카인드 플랫폼은 누구나 펀드레이저가 될 수 있는 모델로, 온라인 생일 모금, 도전 모금, 기념일 모금 등 각종 프로젝트를 열어 모금할 수 있었다.
김동준 비카인드 대표는 “IT에 뛰어난 재능과 전문성이 없다보니, 굳이 이 방법을 고집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면서 “IT라는 대세론에서 벗어나 멤버들이 가장 재밌게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자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소아암 모금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알게된 아이들의 소원이 ‘축구를 하고 싶은 것’이라는 것에 착안, 2014년부터 슛포러브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
‘연예인 섭외의 귀재’라는 별칭을 들을 추진력 덕분에 비카인드는 페이스북에서 이미 유명스타다. ‘슛포러브’ 페이스북 구독자 수는 35만명이 넘고, 동영상 조회 수도 평균 60만회가 넘는다. 일종의 스포츠 콘텐츠 회사다. 운영비는 광고비로 충당하고, 기부금은 한국소아암재단,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백혈병소아암협회 등 파트너 비영리단체를 통해 100% 수혜자에게 전달된다.
“최근엔 후원사와 비카인드가 일대일 대결을 펼쳐서 이기는 쪽 소원을 들어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현재 최대 후원사인 자생한방병원이랑 저희 직원이 고삼차 마시기 대결을 했습니다. 저희가 14잔을 마셔서 이겼고, 그 대가로 자생한방병원한테 보약을 1000만원어치 받아서 소아암 환자 부모님들에게 나눠드렸어요. 이 과정을 동영상으로 담았죠. 재밌는 콘텐츠에다 공익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하면서 기부 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다고 봐요. 그게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요.”
◇빅워크, 걷기 앱에서 사회공헌 플랫폼으로 진화를 꿈꾸다
2012년 출시 당시 걸으면 기부되는 앱으로 주목받았던 빅워크도 지난해 리뉴얼을 했다. 한완희 빅워크 대표는 “초창기에는 보여주기식 미션에 매몰돼 서비스가 큰 발전이 없었다”고 그간 고민을 토로했다. 2014년 문을 닫을 뻔한 위기에 처했던 빅워크는 회사의 미션을 재정립했다. 워킹앱에 그저 ‘공익성’만 덧입힌 것은 지향하는 바가 아니었다. 약 1년 동안 정리한 것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쉽고, 재밌게, 사회공헌에 참여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였다. 미션을 바로 세우니, 구성원들이 같은 그림을 보게 됐다. ‘걸으면 기부가 되면 좋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걸음’이 가진 의미를 구체적으로 부여하기 시작했다.
“유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어요. 왜 다른 걷기 어플이 아닌 ‘빅워크’를 쓰는지 물어봤죠. 기존 서비스는 걸어서 기부금만 모이면 ‘끝’이었는데, 이제는 걸음이 쌓이면서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니 그 점을 유저들이 좋아하더라고요.”
단체나 기업만 후원사로 참여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개인이 ‘모음통’을 개설해 펀드레이징을 할 수 있다. 빅워크 유저들은 본인이 공감하는 ‘모음통’에 참여하며 걸음을 쌓고, 적립된 걸음은 10m당 1원이 적립돼 현금이나 물품을 기부하게 된다.
캠페인이 개인으로 확산되며, 한동안 시들했던 빅워크 어플도 되살아났다. 한 커플은 지난달에 결혼식 답례품으로 소셜벤처 ‘크래프트링크’의 수공예 팔찌 100개를 준비해 남미 원주민 여성들과 아이를 후원하겠다는 물품 기부형 모음통을 개설했고, 현재 560명이 참가해 1만4771㎞의 거리를 걸었다(3월 21일 기준).
어플 안에 사회문제를 알려주는 매거진 코너도 개설했다. 70만명 빅워크 사용자들에게 ‘당신들의 참여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문제들이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한완희 대표는 “서비스 성격이 헬스케어인지 사회공헌 플랫폼인지 헷갈렸는데, 이제 후자를 집중하고 있다”면서 “올해 목표는 개인이 기부나 사회 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방법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